아는 사람만 아는 나라

‘숨’ Jaye 지영 윤

등록 : 2026-04-09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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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12. The After, Mixed Media on Paper, 5476.5

한 사람이 살다 갔다는 ‘마땅한 소식’을 전하고 나면, 남은 이들은 아는 사람만 아는 나라로 들어선다. 나이를 헛먹었는지 그걸 지난해에야 깨달았다. 서울 올림픽대로, 엄마를 만나러 수없이 다녔던 길 위에서 말이다.

올림픽대로의 노량진·여의도로 나뉘는 구간에는 초록·분홍 색상 조합의 안내선이 있다. 거길 지날 때면 사방이 그와 같은 테마색인 프랑스 지베르니 ‘모네의 정원’이 떠올랐다. 간병하다 말고 간 ‘도망 여행’이었는데, 정작 정원을 둘러보면서는 봄마다 꽃 천지가 어디인지 잘도 알아 쫓아다녔던 엄마를 생각했다. 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의 전화를 받은 것도 바로 그 길 위였다. 호스피스 ‘생활’의 시작이었다.

집과 병실을 오간 두 달은, 십여 년 폐암 치료 여정 전체에 못지않은 무게였던 듯하다. 호스피스 완화의료팀과 함께하며 생의 모든 순간이 ‘삶’임을 배웠다. 한 인격체로서의 엄마를 알게 된 시간이었고, 사그라지는 과정에서도 사람이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음을 깨달았다. 한편으로는 죽음으로의 ‘진행’을 관조하며 울음을 참는 ‘일’을 수행한 기간이기도 했다.

말기암 환자의 건강은 계단식으로 떨어진다고 의료진에게 미리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막상 겪는 건 당혹스러웠다. 옛 시조 ‘탄로가’에서 ‘한 손에 가시 들고’도 노년을 막지 못했듯, 죽음은 끈질기고 성실하게 조금씩, 그러다가도 돌연 무서운 속도로 엄마를 제 방향으로 나아가게 했다. 우리의 노력은 단계마다 너무 쉽게 의미가 없어졌고, 몸부림쳐 한발 앞서 움직여도 매번 패했다.

그럼에도 패배의 좌절감을 딛고 곧바로 다음을 준비할 수 있었던 건, 우리 가족을 에워싸고 지지해준 호스피스팀 덕분이었다. 의료진, 사회복지사, 성직자, 자원봉사자가 우리를 코칭하고 응원해줬기에 해놓자마자 쓸모없어질 다음 단계를 할 힘을 낼 수 있었다. 어느 단계가 되자 죽음이 두려움만은 아니라는 게 이해되었던 성싶다. 돌이켜보면 ‘환대’에 가까운 따뜻한 경험이었는데, 그런 인도하는 손의 도움을 받았어도 내가 들어선 나라는 쉽지가 않다. 그래서인지 올해는 유독 예전에 삼청동에서 만났던 이름 모를 화가가 자꾸 눈에 밟힌다.

햇볕이 좋은 날이었다. 정처 없이 걷는데 하얀 통창을 한껏 열어젖힌 갤러리의 직원이 호객했다. 이끌려 들어가 살펴보니 세월호 유족들의 전시회. 짐작조차 어려운 마음이 담긴 작품들을 둘러보고 나가려는데, 들어설 때 스치듯 본 큰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호객했던 직원이 다가와 화가의 설명을 듣겠느냔다. 망설이는 사이 미소 띤 여인이 이미 내 앞에 와 있었다. 꼼짝없이 잡혀 아이들이 노는 학교 운동장 화면 중앙에 환하게 웃는 소년 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과 그 친구란다. 자리를 빨리 피하고 싶은 마음에 그림 기법에 관한 이야기라든지는 귀에 들어오지 않고 난처하게 구석의 다리 하나만 자꾸 신경이 쓰였다.


“이 다리는 그림 구성상 생략하는 게 나았을 텐데, 왜 이렇게 정성스레 그리셨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젖은 건 그때였던 듯하다. 생략하려고 했는데, 이 아이도 함께 있었을 걸 생각하니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단다. 그리고 그 다리가 그리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쏟은 부분이라고. 담담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그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는데, 갤러리 여자가 어느새 다가와 내게 갑 티슈를 건넸다.

여린 연둣빛 봄 잎, 노랑 개나리, 오래 피는 진분홍 영산홍, 그리고 가장 환한 정점에서 보드라운 꽃잎을 떨구고 마는 목련…. 봄이 되어 그런가. 엄마 생각과 함께 그날의 내 눈물이 자꾸 미안하다. 이제야 비로소 보게 된 ‘그 나라’의 풍경 한 조각. 나를 되레 위로하듯 단단하게 설명을 이어가던 그녀의 봄도 가만히 떠올려본다.

글·그림 Jaye 지영 윤(‘나의 별로 가는 길’ 작가·화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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