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 사람

“공공장소에서 당당히 모유 수유하는 날이 어서 오길…”

지난 7일 국내 첫 모유 수유 플래시몹에 참가한 세 아이 엄마 이지원씨

등록 : 2017-08-10 15:25

크게 작게

세 아이의 엄마인 이지원씨가 지난 7일 오전 서울 강동구 천호역 만남의 광장에서 열린 모유 수유 플래시몹에 참가했다. 6살, 5살, 3살짜리 아이를 둔 이씨는 막내가 젖을 뗐기 때문에 인형을 대신 안고 플래시몹에 참여했다. 지자체 최초로 열린 이번 행사는 모유 수유 인식 개선을 위해 마련됐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공공장소에서 눈치 보지 않고 모유 수유를 할 수 있다면, 아이나 엄마 모두에게 ‘축복’입니다.”

강동구 공동육아단체 ‘하이사랑’ 회원인 이지원(34)씨는 지난 7일 강동구 천호역 만남의 광장에서 열린 ‘모유 수유 플래시몹’에 참여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국내 지자체 최초로 열린 이번 플래시몹은 젖먹이 엄마 20여명이 모여서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는 행사였다. 이번 플래시몹은 강동구보건소가 주최하고, 이씨가 속한 하이사랑 등이 주관하여 이루어졌다. 강동 경희대병원, 강동 미즈여성병원, 시월애산후조리원도 주관단체로 참여했다. 플래시몹이 열린 7일은 세계 모유 수유 주간(8월1~7일)의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이씨는 현재 6살, 5살, 3살짜리 세 아이를 모두 하이사랑에 보내고 있다. 3주 전 강동구보건소에서 공공장소에서 모유 수유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하이사랑의 다른 회원 엄마들과 함께 플래시몹에 참여하게 됐다. 이날 플래시몹에는 하이사랑 회원 엄마들과 함께 강동구보건소에서 운용하는 ‘영양 플러스’ 사업 회원들도 다수 참여했다. 영양 플러스 사업은 보건소에서 유아기 아이들의 영양과 관련해 교육도 하고 식품 정보도 알려주는 사업이다.

대학 졸업 뒤 지리과 임용시험을 준비하다 결혼한 이씨에게, 연년생인 첫아이와 둘째 아이를 모유 수유로 키우는 것은 “너무 힘든 경험이었다”고 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공공장소에 나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거의 집 안에 갇힌 듯이” 지냈다. 오죽하면 언젠가 아이들과 함께 외출했을 때 맑은 하늘을 보고는 ‘감격스럽다’고 느낄 정도였을까? 이씨는 당시 아이들도 말은 못 했지만 외출할 때 얼마나 시원함을 느꼈을까 싶었단다.

이렇게 외출이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가 공공장소에서 모유 수유를 제대로 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공공장소에 나가면 모유 수유를 할 만한 장소가 없거나, 있더라도 깔끔하지 않고 꿉꿉한 곳인 경우가 많아요.”

식당 등을 찾아 모유를 먹이려 해도 괜찮은 패밀리 레스토랑 정도를 빼놓고는 수유실을 찾기 어렵다. 어렵사리 천 같은 것으로 덮고 모유 수유를 하려 하면 주변 손님들이 주책맞다는 듯 힐끔힐끔 보는 시선을 견뎌내야 했다.

이씨는 우리 사회에서 모유 수유가 어려운 이유를 크게 두 가지 그릇된 인식에서 찾았다. 첫째는 여성의 가슴을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이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모유를 먹이는 엄마의 젖가슴에 대해서도 왜곡된 눈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 회원은 “몇해 전 인터넷에 크게 떠돌았던 오스트레일리아의 글래머 모델 미란다 커가 모유 수유를 하는 사진들도 엄마가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는 사진으로 봐줘야 하는데 우리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예를 들었다. 이런 시각이 팽배하다 보니, 엄마들이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에게 젖을 주는 것조차 ‘숨겨야 할 일’로 인식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두번째 큰 원인은 “엄마들이 유모차 끌고 다니면서 커피 마시는 것 등을 호사로 여기는 시각”이다. 이씨가 보기에 이는 ‘아이 엄마는 집에 있어야 하는데 어딜 나다니느냐’는 그릇된 인식과 연관돼 있다. 이런 잘못된 시각들이 일부 네티즌들이 만들어낸 ‘맘충’(엄마를 뜻하는 ‘맘’과 벌레를 뜻하는 ‘충’자를 합친 말)이라는 말에 그대로 투영돼 있다고 이씨는 말한다. 엄마를 벌레에 비유하는 ‘맘충’은 우리 사회 일부 계층의 여혐을 엄마 버전으로 바꿔놓은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이씨는 무엇보다 “엄마들이 당당해지는 것”을 그 출발점으로 꼽았다. 당사자인 엄마들이 먼저 모유 수유에 대해 당당해져야 사회의 그릇된 인식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강동구의 이번 모유 수유 플래시몹은 어쩌면 그런 당당한 엄마들이 되자는 참가자들의 자기 선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날 플래시몹에서는 엄마들이 모유 수유를 할 때 가슴이 드러나지 않는 ‘모유 수유티’를 입고 있었다. 그렇더라도 ‘모유 수유는 엄마와 아이의 권리’라고 선언하며 공공장소에서 함께 행동하는 것은 참가자 모두에게 상당한 자기 다짐이 필요한 일이었다고 한다.

이번 모유 수유 플래시몹을 기획하고 진행한 김진영 강동구보건소 모유 수유 담당 주무관은 “앞으로도 이렇게 엄마들의 당당한 자기 선언이 늘어날 수 있도록 구 차원에서 지원 계획을 계속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간호사 출신인 김 주무관은 “모유 수유는 아기와 엄마에게 ‘최고의 선물’”이라며 “모유 수유는 아이의 면역력을 높여주고 정서적 안정과 애착 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하며, 엄마에게도 산후 출혈과 난소암·유방암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김 주무관은 “그럼에도 국내 완전 모유 수유율은 2016년 기준 18.3%로 세계 평균의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앞으로 모유 수유가 가능한 카페나 식당을 발굴해 ‘모유 수유 가능 카페’ 등의 팻말을 다는 등 모유 수유가 우리나라에서 하나의 문화 규범으로 자리 잡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