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는 어른이 돼도 오갈 데 없어…가족들이 나서는 이유

보호시설·복지관으로는 한계, 장애인작업시설 현실에 맞게 요건 개선 필요

등록 : 2016-04-14 19:26 수정 : 2016-04-28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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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웃는가게’에서 일하는 김혜원(왼쪽 사진 맨 오른쪽)씨가 강북구 수유동 매장에서 물건 값을 정산하고 있다. 세진플러스 직원 조병필, 신우철(오른쪽 사진 오른쪽부터)씨가 박준영 대표와 함께 원단 재단과 정리 작업을 하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서울시 성인 발달장애인 10명 가운데 6명은 일자리는커녕 갈 곳조차 없다. 함께가는서울장애인부모회에 따르면, 현재 서울시 성인 발달장애인 1만8600명 중 5000여명(27%)만이 주간보호시설이나 장애인복지관 등을 이용하고, 취업자를 뺀 61%가량의 성인 발달장애인은 오갈 데 없는 상태다. 발달장애인 가족들이 ‘작은 일터’를 만들어 이들이 사회 속에서 자립해 가도록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선배 가족들이 작은 일터를 만들어 걷고 있는 길은, 다른 발달장애인 가족에게 뜻있는 정보가 될 수 있다.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돕기 위해 가족들이 만든 작은 일터는 설립과 운영 과정에 5가지 특징을 보였다. 설립 과정에선 자녀의 재학 중 만들어진 학부모 네트워크를 활용한 경우가 많았다. 도봉구청 1층의 여성 건강 카페 ‘화음’을 운영하고 있는 ‘세상을움직이는힘(세움)’은, 특수학교 학부모로 10년 넘게 인연을 맺은 어머니 다섯 분이 이직 없고 퇴직 없는 따뜻한 일터를 지향하며 만든 사회적기업이다.
강북구에서 재사용 기증 물품을 팔며 발달장애인 교육을 하고 있는 ‘함께웃는가게(함께가게)’는 장애 아이들을 돌보면서 알게 된 부모들이 선후배 사이가 되어,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진로를 같이 고민해 만든 되살림 가게다. 마포구 성미산마을에서 통합교육을 지향해 만든 대안학교에서 만난 학부모들은, 성인기 발달장애인들이 일하며 이웃들과 같이 살 수 있도록 ‘성미산공방’(양모 펠트와 찜질 팩)과 ‘좋은 날’(더치커피)을 만들었다.  


일터 만드는 과정이 사회 적응 훈련  
부모가 자신의 일 경험을 연계해 독자적으로 만든 일터도 있다. 강남구 일원동에 있는 카페 ‘래그랜느’는 남기철(64) 대표가 자폐장애인 아들 범선(34) 씨와 장애인 친구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려고 무역회사와 복지재단의 보호작업장 운영 경험을 살려 만든 사회적기업이다. 박준영(52) 세진플러스 대표는 지적장애인인 딸 세진(20)씨를 돌보면서 발달장애인들이 사회구성원으로 살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그는 30년 가까이 봉제업계에서 일해 온 경험을 살려, 2010년 발달장애인의 경제적 사회적 자립을 돕는 의류 제조 기업을 세웠다.  
보호센터의 선생님들이 먼저 나서서 일거리를 만들고, 부모와 후원자들이 같이 일터를 만든 경우도 있다. 산울베리는 도봉구에서 발달장애인 자활 농사를 주요 사업으로 하는 사회적협동조합이다. 산울베리는 2013년 장애인 주간·단기 보호센터(주바라기 해피홈)를 이용하는 장애인 가족, 센터 직원들, 후원자 등 30명이 모여 만들었는데 현재 조합원은 70여명으로 늘었다. 센터 직원들은 발달장애인에게 일자리와 평생교육이 꼭 필요하기에 이들이 작업하기 좋은 블루베리 농사를 일거리로 정했다. 발달장애인 4명이 산울베리의 정식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장애인 가족은 작은 일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장애인 직업과 사회 적응을 위한 훈련과 교육을 활용했다. ‘세움’은 두레비전학교 장애인 직업훈련 프로그램에서 시작했다. 주중에는 각자 복지관이나 보호센터를 다니고, 주말에 부모와 발달장애인 친구들이 모여 직업 적응 훈련과 직무교육을 받았다. 개별적으로 직업을 갖기 어렵기에 애초부터 공동체 운영을 지향했다.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는 취지로 출발했다. 눈썰미 있고 힘 좋은 친구는 에스프레소 뽑기, 과일을 잘 깎는 친구는 과일주스 만들기, 손아귀 힘은 없지만 표정이 밝은 친구는 서빙을 반복해 연습했다.  
‘함께가게’는 부모들 스스로 직업훈련 기회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자녀들은 학교를 졸업한 뒤 정해진 시간에 일터에 나오며 출근 연습을 했다. 오전에는 교육을 받고 오후에는 시간제 근무를 했다. 교육 내용은 직업 준비, 의사소통에 도움을 주는 적정한 대화 기술, 연극을 통한 자기표현 등이었다.  
세진플러스는 발달장애인들이 꾸준히 문화 예술 활동으로 자기개발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한다. 얼마 전부터 사회적기업인 극단 ‘날으는 자동차’와 손잡고 장애 직원들에게 뮤지컬을 가르치고 있다. 박준영 대표는 “발달장애 직원들이 뮤지컬을 배우면서 자신감도 생겼고, 일 집중도도 이전보다 좋아졌다. 하루 일과 시간의 절반은 일하고, 나머진 교육과 운동으로 자기개발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게 내 꿈이다”라고 말했다.    


자치구청이 나서 설립 돕기도  
작은 일터들 가운데 자치구청의 공간, 행정 지원, 교육 예산 등을 연계한 곳들도 있다. ‘세움’은 저렴한 임대 공간을 찾지 못해 1년 넘게 휴업하는 어려움을 겪다가, 도봉구청의 적극적인 협조로 서울시 사회적기업 유휴 공간 지원 사업에 선정됐다. 구청은 1층을 근린생활 공간으로 지목을 변경해 영업허가를 내줬다. 사회적기업의 공공기관 이용료 혜택을 받아 시설관리공단과 연 50만 원 임대료로 5년간 계약했다.  
지역 장애인부모모임으로 출발해 돌봄서비스 사업을 준비 중인 은평구 ‘다다름 협동조합’은 구청의 행정 지원, 회의 공간 제공 등의 도움을 받았다. ‘함께가게’는 강북구청이 장애인 부모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만든 발달장애인 자립생활 지원 프로그램의 예산(연간 300만 원)을 받아 성인기 발달장애인 직업교육에 쓰고 있다.  
대부분의 작은 일터들에게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지원 제도는 큰 도움이 되었다. 래그랜느, 세진플러스, 세움 등 사회적기업은 3년간 인건비 지원을 받았다. 고용부는 사회적 약자 고용에 대한 인건비와 더불어 전문인력 고용 지원도 한다. 세움은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기 전에는 행안부의 마을기업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매니저 인건비 지원을 받았다. ‘함께가게’도 협동조합을 만들기 전 마을기업으로 행안부의 사업비 지원을 받아 되살림 가게 사업과 발달장애인 교육비로 유용하게 사용했다.  
작은 일터를 운영하고 있는 장애인 가족들의 공통 관심사는 지원이 끝난 뒤 사업을 어떻게 지속할까이다. 래그랜느와 세진플러스는 일찍이 이런 고민을 했고, 어렵사리 기존 장애인 고용 지원 시설인 보호작업장, 표준작업장으로 지정을 받았다.
남기철 래그랜느 대표는 “보호작업장 요건을 갖추기 위해 몇 천만 원의 시설비를 써야 했다. 발달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작은 일터가 더 많이 생기기 위해선 장애인 작업장 시설 요건을 현실에 맞게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함께가게는 5년 뒤 보증금과 임대료 부담을 덜 수 있는 저리의 기금 대출을 기대하고 있다. 성미산공방은 지원이 끝난 뒤 상근자 규모는 줄이고 일감이 생길 때 모여 일하는 구조로 바꿔 운영하고 있다.  
장애인 사회적기업 전문가 장원봉 사회투자지원재단 소장은 “발달장애 가족들이 일터를 만들고 운영해 가는 건 의미 있는 일”이라며 “이들 일터가 복지와 일자리가 결합한 노동 통합형 사회적기업으로 인증 받아 지속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


발달장애인 작은 일터 5가지 특징
1. 부모 네트워크·일 경험 등이 기반
2. 직업·사회 적응 훈련 등 꾸준한 교육
3. 자치구청 공간·행정 지원·예산 연계
4. 사회적기업·마을기업 지원 활용
5. 지원 종료 뒤 지속적인 운영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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