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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05 Courage. Mixed Media on Paper, 53.5×76.5㎝
오늘만 특별한 듯, 너도나도 법석 떤 한 해의 마지막과 첫날이 지나가고, 나는 벌써 무안하다. 용기를 내어보아요, 응원합니다, 여기저기 잘도 얘기했으면서 정작 나는 내가 벌인 일들에 더럭 겁난다. 남들 보기에 나는 용감해 보인단다. 잘도 해내는구나, 싶단다.
아주 오래전, 첫 직장이었던 컨설턴트 시절, 입사 후 첫 프로젝트 이틀째였나, 군기가 바짝 들어 그랬는지 아주 한참을 일찍 출근했다. 아는 게 없으니 주어진 일도 없어 누구든 출근하길 기다리는데, 클라이언트 한 분이 다가오더니 두리번거렸다.
우리 회사의 누군가를 찾으며 나에게 무얼 물었는데, 찾는 게 누구인지, 무슨 얘기인지도 몰랐지만 ‘나도 다 안다’는 표정으로 아직 출근 전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는 다시 복도를 지나 모퉁이 너머로 사라졌는데, 그냥 사라진 채 좀 있지 않고 자꾸 멀리서 내 쪽을 살피는 게 아닌가. 다시 와서 또 물으면 어쩐다, 걱정스럽다 못해 쿵쾅쿵쾅 겁마저 났고, 숨기에 적당해 보이는 책상 아래 공간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지금 같으면 옷이든 노트북이든 놔두고 출근한 티만 내놓고 한 바퀴 걷다 올 텐데, 그땐 그걸 몰랐다. 물론 진짜 기어들어 가진 않았는데, 가끔 ‘겁’이 올라올 때면 상상 속 그 장면이, 그 감정이 툭 떠오르곤 했다.
실제 한 일이 아닌데도 제법 생생한 게, 이건 겁이 장면을 부르는지 아니면 장면이 겁을 부르는지? 어느 게 먼저인지 아무래도 모르겠다, 결론지으면서도 일상 속 두려운 순간들은 경험에서 오는구나, 싶었다.
‘트라우마’라고까지 하기에는 사소하고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용기가 필요한 순간 망설이게 할 정도는 되는, 그런 ‘감정 섞인 기억’ 말이다. 이런 기억은 어찌 다뤄야 하는지 만지작거리다 머리 뒤편에 밀어두었는데, 지난가을 언제나처럼 길을 헤매다 마주친 경희궁이 반가워 둘러보던 중 실마리를 살짝 본 듯했다.
경희궁에 대해 점심 산책하기 좋다는 말을 어디선가 몇 번 들었지만 실제 가본 건 처음. 단풍놀이는 꿈도 못 꿀 시기에 단비처럼 만난 경희궁은, 내가 바삐 걷기도 했겠지만, 지닌 역사에 비해 규모가 사뭇 아담해서 전체를 한 번 훑은 후에도 나서기가 아쉬웠다. 돌아나가는 길에 괜히 벤치에 누워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끌어온 소나무와 눈 맞춤도 해보고, 제 자리를 빼앗겼나, 나를 노려보는 고양이와 눈싸움도 하다 결국 발걸음을 궁으로 되돌렸다. 궐내를 천천히 다시 걷자 좀 전에는 쓱 지나쳤던 건물 보수 현장에 적힌 설명이 눈에 들어왔다. ‘기둥 동바리 보수작업’ 중이란다. 기둥 동바리라는 단어가 재미있어 찾아보니 기둥 중간을 잘라내어 교체하는 걸 그렇게 부른다고. 어떻게 하는 작업인지 호기심에 기웃대며 까치발을 해도 보수 현장을 볼 수 없었는데, 가림판 너머로 사람들 소리가 들렸다. 일정하지는 않지만 뚱땅거리는 것도 같았는데 문득, 그러게, 인생도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스쳤다. 내 것 삼기 싫은 부분만 숭덩 잘라내어 세상에 드러내기 좋은 버젓한 새것으로 갈아 끼울 수 있다면…. 하지만 기둥 동바리가 아무리 부러워도 기둥 동바리처럼 수선할 수야 없는 게 삶. 그렇다면 초라한 감정이 뒤엉킨 기억을 품고도 내는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문득 궁금해 속에서 아웅다웅, 구시렁대는 생각들을 다독이기도 하며 곱씹었다. 언젠가 들은, 겁이 없는 게 용기가 아니라 무서워도 찔끔대며 나아가는 게 용기라는 설교 말씀이 불현듯 떠올랐다. 나 또한 그렇게 남 보기에만 용감했던 순간들을 가만히 짚어보니 어쩌면 용기는 바로 그 책상 아래에서 생겨난 건지도 모르겠다. 남몰래 우왕좌왕, 어쩔 줄 몰라 하는 내 모습을 보다 못해서 말이다. 글·그림 Jaye 지영 윤(‘나의 별로 가는 길’ 작가·화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경희궁에 대해 점심 산책하기 좋다는 말을 어디선가 몇 번 들었지만 실제 가본 건 처음. 단풍놀이는 꿈도 못 꿀 시기에 단비처럼 만난 경희궁은, 내가 바삐 걷기도 했겠지만, 지닌 역사에 비해 규모가 사뭇 아담해서 전체를 한 번 훑은 후에도 나서기가 아쉬웠다. 돌아나가는 길에 괜히 벤치에 누워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끌어온 소나무와 눈 맞춤도 해보고, 제 자리를 빼앗겼나, 나를 노려보는 고양이와 눈싸움도 하다 결국 발걸음을 궁으로 되돌렸다. 궐내를 천천히 다시 걷자 좀 전에는 쓱 지나쳤던 건물 보수 현장에 적힌 설명이 눈에 들어왔다. ‘기둥 동바리 보수작업’ 중이란다. 기둥 동바리라는 단어가 재미있어 찾아보니 기둥 중간을 잘라내어 교체하는 걸 그렇게 부른다고. 어떻게 하는 작업인지 호기심에 기웃대며 까치발을 해도 보수 현장을 볼 수 없었는데, 가림판 너머로 사람들 소리가 들렸다. 일정하지는 않지만 뚱땅거리는 것도 같았는데 문득, 그러게, 인생도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스쳤다. 내 것 삼기 싫은 부분만 숭덩 잘라내어 세상에 드러내기 좋은 버젓한 새것으로 갈아 끼울 수 있다면…. 하지만 기둥 동바리가 아무리 부러워도 기둥 동바리처럼 수선할 수야 없는 게 삶. 그렇다면 초라한 감정이 뒤엉킨 기억을 품고도 내는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문득 궁금해 속에서 아웅다웅, 구시렁대는 생각들을 다독이기도 하며 곱씹었다. 언젠가 들은, 겁이 없는 게 용기가 아니라 무서워도 찔끔대며 나아가는 게 용기라는 설교 말씀이 불현듯 떠올랐다. 나 또한 그렇게 남 보기에만 용감했던 순간들을 가만히 짚어보니 어쩌면 용기는 바로 그 책상 아래에서 생겨난 건지도 모르겠다. 남몰래 우왕좌왕, 어쩔 줄 몰라 하는 내 모습을 보다 못해서 말이다. 글·그림 Jaye 지영 윤(‘나의 별로 가는 길’ 작가·화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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