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 사람

“공무원이여! 영혼을 가져야 국민이 행복해집니다”

마포구청에서만 33년 세월 책으로 펴낸 구본수 전 마포구청 복지교육국장

등록 : 2017-06-15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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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구 서강도서관에 선 구본수씨. 공무원이 공무원다운 세상, 공무원이란 말이 신뢰라는 말과 동의어가 될 수 있는 세상을 보는 게 구씨의 바람이다.
“나는 썼습니다. 나는 나를 썼습니다. 나는 공무원 33년을 썼습니다….” 지난해 12월30일 정년을 맞은 구본수(61·전 마포구청 복지교육국장)씨가 펴낸 <공무원 33년의 이야기> 첫 문장이다.

“한 공무원이 삶을 깨닫는 과정이자 올바른 공직자로 거듭나는 과정으로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지난 9일 마포구 합정 동주민센터에서 만난 구씨는 쑥스러워하며 명함을 건넸다. 33년 동안 이름 석자와 함께했던 마포구청 로고와 직책 대신, 책 표지가 새겨진 명함이 아직은 익숙지 않은 듯했다.

‘공직자의 기도문’까지 만들어 보람 찾아

“참 많이 망설였는데 결국 나오더군요. 어제(6월8일)는 합정동 교보문고에서 저자 사인회도 했어요. 후배 공무원들이 많이 와줘서 체면치레는 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양계장과 농장, 공장을 전전했던 구씨는 남보다 늦은 스물아홉살에 공무원이 됐다. “학력을 따지지 않는 직업”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33년간 오직 마포구에서만 공무원 생활을 했다.

“대단하지 않은 나 같은 이가 책을 써도 되는 걸까? 내 책이 과연 독자들이 돈을 치를 만한 가치가 있을까?” 구씨는 책을 쓰는 내내 떠나지 않았던 주저함을 “기억되기 위해선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겼다고 했다. 책에는 그 마음을 “‘평생을 바친 일이기에 나 여기 있소!’라고 존재를 알리고 싶은 욕망 또한 있는 것이다”라고 적어놓았다. “시민들의 공직사회 이해를 높이고, 후배 공무원들이 더 나은 공직사회를 만드는 도구로 쓰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는 게 그의 소망이다.

직원들은 구씨를 바위 위의 소나무 같은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급여가 생각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구씨가 기억해낸 공무원이 되고 나서 가진 첫 느낌이다. 직전 직업이었던 무역회사 급여의 절반 수준이었다. 실망을 희망으로 바꾸기 위해 구씨는 보람을 선택했다. 공무원 업무는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제대로 해야 한다고 자신을 추슬렀다. 청렴과 친절을 가슴에 새겼다. “…공과 사의 생활에 분명한 선을 긋고 매사를 공명정대하게….” 오천석 선생의 ‘교사의 기도’를 흉내내 직접 쓴 ‘공직자의 기도문’을 등대 삼아 33년을 살았다.


9급으로 시작해 국장으로 정년을 맞았다. 오직 마포구에서만 일했다. 둘 다 쉽지 않은 일이다. 짧지 않은 세월, 특진을 경험했고 징계도 받았다. 8급 공무원 신분으로 행정고시 합격자와 4급 공무원 연수에 강사로 참여하기도 했다. 한 언론의 보도로 인해 겪어야 했던 곤혹, 공무원이기에 감당해야 했던 억울함도 되도록 숨김없이 기록했다.

“제 삶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마포구 공직사회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구씨가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동안 민주화가 이뤄졌고 지방자치제도도 시행됐다. 책에는 역사의 변화 속에서 흔들리면서도 ‘국민을 섬기는 것을 공직자의 의무’로 여기는 공무원들의 이야기도 들어 있다. “누군가 또 자신의 33년을 기록하고 또 누군가가 되풀이하다 보면 그게 역사가 되겠지요.”

구씨는 누군가 자신과 같은 일을 되풀이할 것을 믿는다. 정년퇴임 기념패에 적힌 ‘당신의 마음과 행동을 닮아가겠습니다’라는 문장은 공무원 생활 33년에 대한 보답이자 책을 쓴 이유이고 희망이다.

“기록돼야 기억됩니다.” 구씨는 한 사람의 삶은 아무리 하찮아도 그 자체로 장대한 드라마이면서 역사라고 말한다. 특히 공직사회의 경험은 많은 사람들과 역사에 영향을 주기에 기록해야 할 가치가 있다는 게 구씨의 생각이다.

잘 쓰기 위해선 무엇보다 많이 읽어야

구씨는 후배들에게 쓰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문서 작업이 중요한 공무원에게 쓰기란 꼭 갖춰야 할 기본이기도 하다. 구씨는 쓰기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먼저 읽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늘 책을 가까이해왔어요. 많이 읽으면 식견이 넓어지고 사고가 깊어져요. 논리도 분명해지고요.” 많이 읽고 많이 써왔던 덕에 유명 가수를 지역 축제에 초대하고, 한국방송공사(KBS) 드라마 <목민심서> 세트장을 무상으로 받을 수 있었던 일화도 책에 담았다. “유명 가수 초대와 세트장 인수를 위해 전자우편 한통을 보냈어요. 진솔함과 간절함이 담긴 글은 세상을 움직이는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구씨는 다시 새로운 책을 쓸 준비를 한다. 이번에는 찬찬히 삶을 관찰해보려고 한다. “내 삶이 나만의 것은 아닙니다. 함께한 사람들과 나눠야지요.” 기회가 된다면 신입 공무원을 대상으로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는 강연 기회도 가지려 한다.

“공무원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행복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영혼을 가져야 합니다.”

책으로 강연으로 구씨가 나누고 싶은, 33년 공무원 생활에서 얻은 깨달음이다.

글·사진 윤승일 기자 nagneyoon@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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