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전망 좋은 서울

‘한양도성’이 다 내려다보이는 그곳

선바위~인왕산 정상~윤동주 시인 언덕길 따라 본 서울

등록 : 2017-06-15 15:03 수정 : 2017-06-15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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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정상
조선 시대 한양도성의 서쪽에 우뚝 솟은 인왕산, 벌거숭이 바위산에 쌓은 성곽을 따라 걸으며 서울을 바라본다. 태조 이성계의 발길이 닿은 인왕산 선바위부터 인왕산 정상을 지나 윤동주 시인의 언덕까지 이어지는 인왕산 능선은 광해군도 사랑했던 곳이다.

선바위
기이한 바위, 선바위

독립문역 2번 출구로 나와 조금 가다 보면 선바위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만난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 걷는다. 선바위로 가는 길, 아파트 단지를 지나 비탈길을 오르다 보면 인왕사 일주문이 보인다. 일주문을 지나면 이른바 ‘절골’이다. 일반 주택 같은 집에 절 이름이 붙었다. 가게 앞에 종이 있다. 인왕사 종이다. 인왕사 뒤 바위산에는 무속인들의 기도처도 있다. 절과 무속신앙 기도처와 일반 주택이 인왕산 한 골짜기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다.

인왕사 일주문
인왕사 종을 지나면 국사당이 나온다. 국사당은 남산을 신격화한 목멱대왕에게 제사를 올렸던 곳이다. 원래는 남산 팔각정 자리에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일제가 남산에 신궁을 지으면서 1925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중요민속자료 제28호로 지정됐다. 지금도 국사당에서 내림굿, 치병굿, 재수굿 같은 굿판을 연다.

국사당
국사당에서 선바위로 올라가다 돌아본 풍경
국사당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선바위가 나온다. 조선의 문을 연 이성계가 인왕사에서 조생 선사를 만났다. 조선은 유학의 나라였지만 불교를 버리지는 않았다. 조생 선사는 호국인왕금강바라밀경을 설파하면서 조선의 번창을 기원했다. 이성계의 뜻이었다. 선바위는 수도승의 모습을 닮았다. 신라 시대 말기 도선 국사는 인왕산과 선바위를 보고 ‘왕기가 서린 길지’라고 말했다.

선바위 뒤 바위산으로 올라간다. 이곳이 인왕산의 첫번째 전망 좋은 곳이다. 조선의 도읍지를 한양으로 정한 이성계는 그 경계를 정하는 데 정도전과 무학대사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무학대사는 인왕사와 선바위를 도성 안에 넣으려고 했고, 정도전은 성 밖에 두려고 했다. 이성계는 정도전의 뜻을 따랐다. 선바위는 지금도 수도승의 모습을 한 채 한양도성 성곽 밖에서 경복궁 쪽을 바라보고 서 있다.


인왕산 정상에서 본 풍경. 경복궁과 서촌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범바위 지나 인왕산 정상에 서다

선바위에서 인왕산 정상 쪽으로 가다 보면 한양도성 성곽을 만난다. 성곽을 왼쪽에 두고 가파른 계단길을 올라간다. 범바위에 서면 사방이 트이고 인왕산 정상으로 가는 성곽길과 함께 인왕산 정상도 보인다. 산 자체가 규모가 작아서 바위산 길이라도, 웅장하다거나 사람을 압도할 정도의 풍경은 아니다. 바위산 특유의 아름다움이 빛나고 굴곡진 바위 능선을 오르고 내리는 아기자기한 산행의 맛도 즐길 수 있다. 정상을 앞두고 두 다리와 두 팔을 써서 올라야 하는 바위가 나온다. 인왕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범바위에서 바라보는 그것과 느낌이 또 다르다.

조선 15대 임금 광해군은 인왕산을 사랑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며 경복궁과 창덕궁이 폐허가 됐다. 선조는 경운궁(덕수궁)에 머물렀지만, 광해군은 새 궁궐을 짓기로 하고 그 터를 찾았다. 그곳이 바로 인왕산 아래였다.

당시 성지라는 스님이 광해에게 인왕산 아래 왕기가 서렸다는 이야기를 전했고, 광해는 성지 스님이 말하는 곳에 궁궐을 지었다. 그 궁궐이 인경궁이었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현재 사직동 북부, 필운동, 누하동, 누상동 서부, 옥인동 서남부 일대에 있었다고 추정된다.

인경궁을 짓던 중 광해군은 또 다른 궁궐인 경희궁도 지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술인(術人) 김일룡이 또 이궁(離宮, 태자가 사는 궁전)을 새문동에다 건립하기를 청하였는데, 바로 정원군(定遠君)의 옛집이다’라고 나온다. 광해군은 그 집에 왕기가 서렸다고 보았다. 그곳이 바로 경희궁이다. 지금 인경궁은 흔적도 없고 경희궁만 남았다. 광해가 좋아했던 인왕산 정상에 서면 흔적 없이 사라진 인경궁 자리는 물론이고 인왕산, 남산, 낙산,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성곽 안 조선 시대 한양도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보이는 풍경. 자하문이 보인다. 자하문에서 북악산으로 한양도성 성곽이 이어진다.
윤동주 언덕에서 바라보는 자하문과 북악산

인왕산 전망 좋은 곳 중 한곳인 인왕산 정상에서 자하문 쪽으로 내려간다. 기차바위 방향과 자하문 방향으로 길이 갈라지는 곳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에 담긴 바위산을 볼 수 있다. 겸재는 다른 곳에서 인왕산을 보고 그림을 그렸지만, 그림에 담긴 인왕산의 느낌은 고스란히 살아 있다.

한양도성 성곽을 왼쪽에 두고 내리막길을 걷는다. 그 길 끝에서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를 만나면 도로를 건너 자하문 방향으로 걷는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 나온다. 소나무 한 그루 성곽 앞에 서 있는 풍경이 운치 있다. 이미 두 사람이 그 소나무 아래 성곽에 걸터앉아 있다.

목책을 따라 소나무가 있는 곳으로 간다. 목책에는 윤동주의 시가 적혀 있다. 소나무와 성곽 그리고 성곽에 걸터앉은 사람을 사진 한장에 담는다. 인사를 하고 말을 붙였다. 소나무 아래 성곽에 걸터앉은 그 자리가 결혼 전 데이트 장소이자 둘만의 아지트였다고 한다.

그들 옆에 서서 바라보는 풍경에 한양도성의 자하문이 담겼다. 성곽은 자하문에서 북악산으로 이어진다. 조선 시대 사람들은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으로 이어지는 한양도성 성곽길을 걸으며 산세와 도성이 어울린 풍경을 즐겼다. 그것을 ‘순성’이라고 했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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