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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는 하나” 아시아 여성끼리 연대

아시아 여성을 돕는 ‘3인 3색’ 여성 사회적기업가들

등록 : 2017-04-27 15:48 수정 : 2017-05-02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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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관악구청 별관 7층 강의실에서 열린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취·창업 프로젝트’ 참가자들과 함께 최진희 아시안허브 대표(맨 앞쪽)가 기념촬영을 했다.
“저는 중국에서 온 류홍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마흔다섯 살이에요. 아들 하나 있고, 한국에 온 지 11년 됐어요. 주위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돕는 활동을 많이 했어요. 활동하면서 부족한 점을 많이 느꼈어요. 같이 공부하고 싶어서 남양주에서 뛰어봤어요. 관악구청은 처음이라 한참 헤맸는데, 결국 잘 찾았습니다. 반갑습니다.”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한국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정성을 들인 자기소개가 끝나자 박수가 쏟아졌다. 지난 17일 관악구청 별관 7층 강의실에는 중국, 몽골, 미얀마, 베트남, 캄보디아, 네팔 등에서 온 이주여성 20여명이 앉아 있었다. 관악구와 사회적기업 아시안허브가 마련한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취·창업 프로젝트’ 가운데 통·번역가와 이중언어 강사 양성 과정에 참가한 이들이었다.

몽골어 통·번역 활동을 하고 있는 어던치맥(39)은 “경찰서 통·번역이나 수출입 선단의 통·번역을 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활동으로는 한계를 느끼고 있었는데, 마침 이 과정을 알게 돼 신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진희 아시안허브 대표는 “혼자 하면 일이 계속 이어지기 힘들다. 영업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면 1년에 몇 번 못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소속을 원하는 분들이 많다. 그렇다면 마음 맞는 분들끼리 협동조합을 만들면 좋지 않을까 싶어 올해부터 협동조합 창업 컨설팅을 교육과정에 포함했다”고 말했다.

아시안허브는 2013년부터 통·번역가, 이중언어 강사, 다문화강사, 동화책 저자, 글로벌 소셜큐레이터 등을 양성하는 교육과정을 진행해 지난해까지 400여명을 배출했다. 회사로 강의나 통·번역 요청이 들어오면 수료생을 소개하지만 일감이 모두에게 돌아가기엔 한계가 있다. 대신 뜻 맞는 사람들끼리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기로 전략을 바꾼 것이다. 최 대표는 “혼자일 때보다 협동조합으로 영업하면 신뢰감을 더 줄 수 있고, 다양한 언어를 제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자 가운데에도 이미 협동조합을 만든 이주여성이 있었다. 미얀마에서 온 마킨 메이타(52)는 중국, 몽골, 미얀마, 타이, 베트남 등 5개 나라 이주여성 11명과 함께 지난해 4월 ‘다모 글로벌교육문화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이 협동조합은 각 나라의 전통무용을 공연하고 다문화를 강의하고 있다. 수원이주민센터 이주민 대표도 맡고 있는 마킨은 “최진희 대표는 다문화사회를 위해 제일 앞에서 나아가는 분”이라며 “나의 롤모델”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에서 홍보와 사회공헌 업무를 담당하던 최 대표는 2004년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국제협력단 소속 해외봉사단원으로 캄보디아에 갔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은 시엠립의 한 대학에서 2년6개월 동안 한국어를 가르쳤고, 귀국한 뒤에도 이주여성의 부부 상담 등을 통역하는 자원봉사를 계속했다. 더 이상 회사 일과 자원봉사를 병행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최 대표는 2013년 이주여성의 재능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아시안허브를 창업했다.

“외국인이 많아지면서 이중언어 강사나 통·번역가처럼 글로벌한 일자리가 늘어나고 있어요. 경찰서와 가정상담소에서도 통역이 필수가 됐어요. 기계번역이 좋아졌지만, 말에 고유한 문화와 예의까지 담을 수 있는 건 결국 사람입니다. 이주여성의 역할은 계속 커질 것입니다.”

이지혜 오요리아시아 대표(가운데 노란색 윗옷)가 네팔의 카페 미티니 직원들과 함께 웃고 있다. 사진 왼쪽 팔짱 낀 여성이 카페 미티니 2호점을 열 다와 세르파.
네팔 진출 4년 만에 현지 직원이 2호점 창업


아시아 여성을 돕기 위해 다른 나라에 진출한 사회적기업가도 있다. 북촌에서 스페인 레스토랑 ‘떼레노’를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오요리아시아의 이지혜 대표는 아시아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돕기 위해 2013년 5월부터 네팔 카트만두에서 ‘카페 미티니’를 운영하고 있다. 같은 해 9월에는 타이 치앙마이에서 ‘오요리 더 그릴’을 열었다. 그러나 한창 매출이 오르던 2015년 2월 건물주가 임대료를 터무니없이 올리면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부근 임대료가 일제히 올라 다른 건물로 옮길 수도 없었다. 바로 옆집이었던 타이 사회적기업 오픈드림도 비슷한 시기에 쫓겨났다. 전형적인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 현상이었다. 이 대표는 “갑자기 당한 일이라 매우 당황스러웠고, 전 세계가 부동산 문제를 겪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현지 사회의 흐름에 밝아야 한다는 교훈도 얻었다”고 말했다.

다행히 최근 네팔에서 기쁜 소식이 날아왔다. 카페 미티니 시작 때부터 함께했던 네팔 여성 다와 세르파가 카페 미티니 2호점을 열어 독립하기로 한 것이다. 카페 미티니에 오기 전까지 커피를 제대로 마셔본 적도 없었던 다와는 4년 만에 카트만두에서 독보적인 여성 바리스타로 성장했다. 이 대표는 “다와가 정직원으로 일하면서 새벽부터 대학을 다녀 졸업까지 해내는 걸 보고 먼저 창업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오요리아시아는 목돈이 없는 다와가 자신의 지분율을 차츰 높일 수 있도록 2호점의 창업자금 대부분을 장기 상환 조건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네팔 여성 생산자 단체인 케이티에스(KTS)와 함께 ‘윤리적 소비’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이미영 페어트레이드코리아 대표(왼쪽 둘째). 관악구, 오요리아시아, 페어트레이드코리아 제공
생활용품까지 공정무역 품목 다각화 나서

2004년 여성환경연대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던 이미영 페어트레이드코리아 대표는 여성 빈곤과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제3세계의 성공 사례를 찾다 공정무역에 매료됐다. 생산자의 70%가 여성이라는 사실에 특히 매력을 느꼈다. 2007년 시민주식회사로 문을 연 페어트레이드코리아는 방글라데시·인도·네팔·베트남·캄보디아 등 아시아 여성이 직접 만든 의류 등 패션용품을 ‘그루’라는 브랜드를 붙여 국내에서 판매하고 있다. 이 대표는 “옷과 소품은 생산 과정 전체를 여성이 주도하기 때문에 직접적 이익이 아시아 여성에게 돌아가는 반면, 같은 공정무역이라도 커피와 바나나 농장에서는 성별 분업이 뚜렷해 여성의 입지가 약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매출액 14억원을 기록한 사회적기업 페어트레이드코리아는 올해 10주년을 맞아 새로운 생활용품 브랜드 ‘꼬말핫’을 만들었다. 힌디어로 ‘좋은 손’을 뜻하는 꼬말핫의 첫 제품으로 방글라데시의 여성 장인이 만든 수공예 바구니를 이달 초 내놓았다. 원형, 사각형, 항아리형 등 다양한 모양의 바구니는 수초를 꼬아 만든 매듭이 독특한 문양과 색상을 연출해, 세상에 하나뿐인 공예품에 가깝다. 바구니에 이어 쿠션, 장식품도 곧 나온다. 이 대표는 “수공예 의류는 생산 과정이 복잡해 신상품 개발에 1년~1년 반이 걸린다. 다양한 생활용품으로 품목을 다각화해 더 많은 사람이 공정무역 상품을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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