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짜 도봉순이다

은행나루마을방송국 팟캐스트 ‘내가 도봉순이다’, 살기 좋은 진짜 도봉구 알리며 인기몰이

등록 : 2017-04-06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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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쎈 여자 도봉순>(아래 사진) 방영을 계기로 시작한 은행나루마을방송국 팟캐스트 녹음 모습. 마을방송 교육을 수료한 참가자들이 매주 모여 진짜 도봉구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JTBC, 김미현 제공
“삶은 기다림의 연속. 행복, 사랑, 좋은 소식, 혹은 아픔의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인생의 아름다운 꽃이 피기를 기다리죠…. 기다림은 무기력으로 다가올 때가 종종 있죠. <힘쎈 여자 도봉순>에서 민혁과 봉순의 관계처럼, 국두와 지난날 봉순의 추억처럼 말이죠. 그들의 사랑은 요즘 흔한 사랑과는 다르잖아요. 성급하지 않고 가슴 가득한 감정을 살포시 내려놓으며 기다릴 줄 아는, 기다림의 순간을 불안과 초조함으로 채우기보다는 새로움과 설렘으로 채워나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새로움과 설렘 반으로 <힘쎈 여자 도봉순>과의 평행선 <내가 도봉순이다> 시작합니다.”

마을방송 교육 받은 주민들끼리 방송

지난달 29일 도봉구 방학3동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내 ‘은행나루마을방송국’ 스튜디오에서 팟캐스트 토크쇼 <내가 도봉순이다> 다섯 번째 녹음이 시작됐다.

봄바람을 연상하게 하는 배경음악과 함께 진행을 맡은 김홍연(쌍문동)씨의 소개말이 끝나자마자 마이크를 중심으로 빙 둘러앉은 참가자들의 안부 인사가 수다처럼 쏟아진다.

“잘 지냈어요?” “네, 저는 잘 지냈어요. 머리도 하고요, 화장도 했어요. 모집 첫날 신청자가 꽉 차서 대기번호를 받는답니다. 호호호.” “전 봄 바다 다녀왔어요. 요가도 시작하려고 합니다. 방학천도 걸어봐야겠죠. 조금 있으면 푸릇한 잎사귀도 피어날 거구요.”

<내가 도봉순이다>는 여성이 주인공인 종편 방송사 제이티비시(jtbc)의 드라마 <힘쎈 여자 도봉순> 방영을 계기로 기획됐다. 은행나루마을방송 교육 프로그램을 수료한 주민들끼리 모여 드라마를 소재로 소소한 수다를 떨어보자는 게 애초 목적이었다. 교육을 수료한 주민들이 방송 제작 경험을 해보자는 거였다. 그러나 애초 목적은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바뀔 수밖에 없었다.

도봉구가 인기 드라마의 배경으로 등장한 건 <응답하라 1988> 이후 두 번째다. 지역 주민들은 <힘쎈 여자 도봉순>의 배경인 도봉구가 <응답하라 1988>에서처럼 ‘골목에 옛정이 남아 있는 따뜻한 동네’일 것으로 기대했다. <응답하라 1988>이 쌍문동을 띄웠듯 <힘쎈 여자 도봉순>이 도봉동을 띄울 것이란 바람은 아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남은 방송에서는 어떻게 그려질지 모르지만 아직까지 드라마는 도봉동을 납치 사건이 일어나고 감시카메라(시시티브이)조차 설치 안 된 우범지대로 그리고 있다.


다시 한번 도봉구가 좋은 모습으로 그려지길 기대하던 주민들은 <힘쎈 여자 도봉순>을 보면서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 도봉구가 안 좋은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을 본 주민들은 구청장실로 항의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이동진 도봉구청장 또한 자신의 페이스북에 ‘힘쎈 드라마가 갖춰야 할 예의’라며 유감의 뜻을 표시하고, 도봉구청은 방송통신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하기까지 했다. 도봉구는 제이티비시가 ‘드라마의 내용은 허구이며 지역과 무관하다’는 자막을 드라마 앞에 내보내는 성의를 보여주자 심의 요청을 철회했다. 여러모로 도봉구는 <힘쎈 여자 도봉순>으로 인해 뒤숭숭한 모습이다.

5회째 녹음 주제도 자연스럽게 도봉구의 자랑에 초점이 맞춰졌다. “봉순이가 도봉구에 살잖아요. 봉순이에게 도봉구에서 살면서 어떤 점이 좋으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까요? 여러분이 도봉구에서 살면서 좋은 점, 안 좋은 점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좋겠어요.”

저는 방학3동에서 25년 살았어요. 범죄가 없고 안전해요. 지하철역과 거리가 있다는 게 불편하기도 하지만 덕분에 조용하고 산도 가까이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들도 애 키우면 여기서 키우겠다고 할 정도예요. 여기서 자란 아이들은 여기서 결혼하고 여기서 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고 하더라구요.”

“교육열도 높아요. 유치원도 줄을 서야 하니까. 여기 사립초등학교가 많잖아요. 방송국에서 취재 나올 정도로 다들 대학도 좋은 데 가는 거 같구요.”

“무엇보다 북한산국립공원이 있어 자연과 가깝다는 게 도봉구의 자랑 아닐까요?”

참가자들 대부분이 수십 년을 도봉구에서 살아온 이들이다. 5회째 방송 녹음이지만 도봉구의 자랑은 마치 마르지 않는 샘처럼 여전히 쏟아졌다. 시간을 제한하지 않으면 밤이라도 거뜬히 샐 기세였다.

방송으로 생긴 오해 방송으로 풀어

도봉구는 사실 생활안전과 관련된 여러 면에서 관리가 잘되고 있는 지역이다. 국민안전처에서 발표한 지자체별 안전지수 등급으로 보면, 서울에서 유일하게 범죄안전지구 1등급을 받은 곳이다. 2011년 서울시 최초의 여성친화도시로 지정되었고, 2016년에는 국내에서 다섯 번째로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기도 했다.

서울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낙후된 지역이고 베드타운이라는 도봉구에 대한 인식은 이미 과거의 이야기다. 지금은 자연 친화적인 환경과 민관이 함께 일으키고 있는 문화예술 바람이 불고 있다. 서울시에서 손꼽히는 대규모 텃밭들에서 나온 유기농 채소와 촘촘히 짜인 주민모임들이 서로 함께 식사하고 자연에서 쉬는 진정한 ‘킨포크 라이프’를 구현할 수 있는 지역이다.

골목에도 작은 갤러리들과 주민 공유 휴식 공간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어 천천히 산책하며 즐길 수 있는 ‘슬로 라이프’가 어울리는 마을이다. 대규모 대중예술 공연장인 아레나도 곧 들어설 예정이다. 복합문화시설인 ‘플랫폼 창동61’도 다양한 공연과 전시를 연일 마련해 각광받고 있다.

이런 도봉구의 자랑을 동네 주민들끼리 수다를 떨 듯 풀어내는, 팟캐스트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도 뜨겁다.

“편안한 일상처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수다방입니다. 출연진 모두 홧팅하세요(모놀).” “은행나루마을방송국 애청자인데요. <내가 도봉순이다> 4회 잘 들었습니다.”

<내가 도봉순이다>를 진행하는 김홍연, 백승영씨는 매주 방송을 진행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지만 좋은 반응을 얻어 보람을 느낀다며 “<힘쎈 여자 도봉순>의 시청률이 오를수록 <내가 도봉순이다>도 함께 청취율이 오르지 않을까요?”라며 기대했다. “방송으로 생긴 도봉구에 대한 오해를 민원이나 댓글이 아닌 주민의 목소리가 담긴 방송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더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박영록 제작 피디는 덧붙였다.

<힘쎈 여자 도봉순>은 중반을 넘어가고 있지만, 드라마 속 도봉구는 범죄로 아직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도봉순이다>가 전해주는 현실의 도봉구는 발랄하고 평화롭기 그지없다. 두 방송이 끝나는 이달 중순 무렵에는 이 간극이 점점 좁아지고, 도봉구는 평화로운 해피엔딩을 얻을 것이다. 도봉구 주민으로서 1988년의 도봉구뿐 아니라 2017년의 도봉구도 행복한 마을로 그려지는 드라마와 영화가 만들어지길 기대해본다.

김미현 마을콘텐츠제작단 엠블 대표

<내가 도봉순이다>는 팟캐스트(아이폰)나 팟빵에서 은행나루마을방송국을 검색하면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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