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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남자의 역설, 지독한 외로움

지인의 뜻밖의 자살 소식을 듣고

등록 : 2017-03-2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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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햇살이 화사한 며칠 전, 뜻밖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지인의 자살 소식이었습니다. 그는 성공한 중년 남자의 전형이었습니다. 미국 박사 학위에 세련된 감각, 능숙한 영어 실력을 갖춰서 남들이 넘보기 힘들 정도의 고급 해외 네트워크를 구축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사업체를 운영하던 최고경영자였습니다. 유머 감각도 뛰어났습니다. 그의 얼굴에서는 그늘이라곤 발견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가 자살했다는 소식은 저에게 너무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잘나가던 사람이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요?”

“얼마 전부터 국제 정세가 바뀌어 고전했는데, 그렇다고 자살할 정도로 경영 상황이 안 좋은 것은 아니었어요. 다만 최근에 외롭다는 말을 자주 했대요. 무척 외롭다고….”

전화로 그 소식을 전해준 사람은 한때 그의 사업 파트너였습니다. 남들보다 몇 배 더 큰 충격을 받았음은 물론입니다. 누구보다 그 파트너의 상황과 마음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러하지 못했다고 자탄하였습니다. 한마디로 흉금을 털어놓고 의논할 진정한 친구가 없었던 겁니다.

우리는 뉴스를 통해 종종 유사한 사건을 듣습니다. 전도유망하던 정치인, 성공 가도를 달리던 기업인이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식입니다. 유심히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여성보다는 압도적으로 남성이 많으며, 젊은 사람보다 중년, 그리고 소위 ‘성공 방정식’을 잘 수행하던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다른 나라 사정도 비슷합니다. 2005년 미국의 자살 통계를 보면 그해 자살한 미국인 3만2637명 가운데 약 80%인 2만5907명이 남성이었다고 합니다.

“남자들만 외로운가요? 여자들도 외롭습니다. 혹시나 필자가 남성이라고 남성들의 시각만 대변하는 것은 아닐까요?”

제가 이 칼럼을 쓰기 시작한 지 1년이 된 즈음에 남자들의 외로움을 주제로 글을 쓰겠다고 하자 주변 여성들의 즉각적인 반론이었습니다. 일리 있습니다. 당연히 여성들도 외롭고 힘듭니다.(여성들의 외로움은 다음 기회에 따로 쓸 예정입니다.) 아마도 홍상수 김민희 커플을 연상하였던 듯합니다. 외롭다는 것은 너무도 광의적 의미이기도 합니다만, 여기서는 사회관계와 정서적 고립감을 말하고자 합니다.

오랫동안 구조적인 사회제도 때문에 돈을 버는 역할은 남성이었고, 여성들에 비해 높은 자리, 고수입, 영향력을 누려온 것도 사실입니다. 남자들의 인생을 단순화하면 돈과 권력, 지위를 얻기 위한 치열한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힘들고 고된 과정을 거쳐서 정상에 섰지만 어느 날 갑자기 지독히 외로운 자신을 발견한 겁니다. 성공의 역설입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남자들은 나이 들수록 여성들에 비해 친구가 현저하게 줄어듭니다. 마치 머리카락이 우수수 빠져나가듯이 진정한 친구는 사라집니다. 가끔 이렇게 항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아는 사람이 많은데 그래요? 관리하는 명함만 해도 수천 장입니다!”

유감스럽지만 그 명함은 일의 관계일 뿐, 그 관계가 소멸되는 순간 가치도 끝입니다. 많은 남자들이 그것을 착각합니다. 직장에서 퇴사하는 순간 인간관계도 수직낙하하게 된다는 것을 저 역시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우울증 전문가인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 심리학부 토머스 조이너 교수는 <남자, 외롭다>라는 책에서 이렇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남성들의 관심사는 직장에 쏠려 있었고 일자리 불안과 직장 내 경쟁, 심지어 동료 간의 적대감 등을 걱정했다. 남성들이 타인들에 아무 관심이 없다는 점에 주목하자. 이와 반대로 여성들은 직장과 가정생활 간의 갈등을 우려했고, 직장 내의 책임 증대가 가족에 미치는 악영향에 괴로워했다.”

직장을 잃거나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쳤을 때, 사람들과의 유대가 피난처 구실을 하게 되어 여성들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도움을 주고받는 유대관계를 맺고 싶다는 것으로 마음을 전환하지만, 남성들은 여성들에 비해 이 전환을 매우 힘들어합니다. 자존심 때문이지요. 친구들이 떠나고 정신적으로 위축되어 있을 때에도 남성들은 여성들에 비해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경향이 매우 높다는 것이 조이너 교수의 분석입니다. 그의 부친도 56살에 자살했다는 사연을 털어놓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남자가 50을 넘으면 평등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볼품없는 체형으로 변한다는 말입니다. 어깨에 오십견이 오는 것처럼 마음의 근육도 뭉치고 기분도 자주 상합니다. 감정의 소통에 대해 경험하고 배울 기회가 별로 없어서 나이 들수록 가족들로부터 소외되어가지요. 사소한 일에 복수를 결심합니다. 정서적 고립감과 사회관계의 외로움이 늘어나지만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촉각이 무뎌져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기껏해야 인터넷 글에 감동받았다며 꼭두새벽부터 카톡을 보내와 잠을 깨우거나 갑자기 악기 배우기에 빠진 나머지 자기가 배운 악기 소리를 들어보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한두 사람이 아니어서 듣는 처지로서는 여간 고역이 아닙니다. 모두 외롭다는 증거입니다.

고대 로마의 언어로 ‘살다’는 말은 원래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다’라는 뜻이었다고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말했습니다. 반대로 ‘죽다’는 말은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지 않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 하겠지요. 최고의 치료는 가족, 친척, 오래된 친구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먼저 나의 마음을 보여줘야 합니다. 문제가 아니라 치료의 시작입니다. 어둠도 빛처럼 너무 강하면 안 보입니다. ‘남자이니까’라는 허세에서 벗어날 때입니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손관승 CEO·언론인 출신의 라이프 코치, 저서 ‘투아레그 직장인 학교’ 등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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