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우의 서울&

서울 복판에 1000평짜리 복합문화공간이 꿈

국내 최초 소규모 복합문화공간 연 ‘노원문고 문화플랫폼 더숲’ 탁무권 대표

등록 : 2017-02-23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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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숲’을 운영하는 탁무권 대표가 15일 오후 노원구 상계동에 있는 매장에서, 이익이 아닌 사람 중심의 대규모 문화공간을 설립하는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서울 북부에 특별한 문화 공간이 최근 문을 열었다. 노원구 상계동 문화의 거리에 있는 ‘노원문고 문화플랫폼 더숲’이 그것이다. 건물 지하 200여 평의 널찍한 공간에 북&CD카페, 영화관, 갤러리, 미디어룸, 세미나실 등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은 국내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15일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더숲’은 낮인데도 학생을 비롯한 손님들로 가득했다. 개관한 지 두 달밖에 안 된 이곳이 이미 지역 사람들에게는 꽤 익숙한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은 듯했다. 광화문 교보문고보다 규모는 작지만 내용은 더 커진 듯한 이런 공간을 과감하게(?) 연 사람이 누굴까 궁금했다.

그는 노원구에서 23년째 서점 ‘노원문고’를 운영하고 있는 탁무권(60)씨다. “좀 더 사람 중심으로 진화한 서점을 꿈꾸던 끝에” 이 ‘도발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저는 서점만큼 좋은 사업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종이책이 사양산업처럼 되면서 서점마저도 사람이 아니라 오로지 상품 중심이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서점의 진화를 꿈꾸었습니다. 이 문화공간만큼은 서점이 사람 중심으로 진화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더불어 함께 숲을 만들어나가자’라는 뜻의 ‘더숲’은 여러 형태의 문화 장르를 껴안고 있다. 노원문고 매장이 근처에 있어 아직 서점 형식을 다 갖추진 못했지만 엄선된 책들과 시디들이 진열대를 채우고 있다. 진열대 안쪽에는 최대 20여 명이 한자리에서 학습과 토론을 할 수 있는 세미나실이 있다. 중앙의 널따란 카페 공간은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는 공연장이기도 하다. 40여 석의 영화관은 더욱 특별하다. 휴머니즘과 역사, 문화 소재의 영화만을 상영하려고 한다. 팟캐스트 방송, 미디어 교육이 가능한 미디어룸은 지역의 영상문화 활동가에겐 소중한 아지트가 되어줄 듯하다.

하지만 이런 규모의 사업이 의미만큼이나 수익성이 따라줄지가 의문이다. 탁씨는 당연하다는 듯 “아직은 적자”라며 웃으며 답한다. 76학번인 탁씨는 대학 시절 시국사건으로 구속되기도 한 운동권 출신이다. 사회를 바꿔보겠다는 젊은 날의 이상은 이후 그의 인생을 규정지었다. 그냥 이익만 추구하는 사업가가 아니라 “자칭 민족주의자”로서 늘 더 좋은 나라,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산다.

30대 후반에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 1994년 문을 연 노원문고는 1년 차부터 흑자를 냈다. 그의 경영 능력이 소문 나자 폐업 위기에 몰린 서점 주인들이 책방 경영을 부탁했다. 그렇게 인수해서 정상화한 서점과 문구점이 7개나 된다. 그런 그가 지난 10여 년 동안 준비 끝에 내놓은 ‘야심 찬’ 아이템이 바로 이 복합문화공간이다.

그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책만 파는 장사꾼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경영 감각이 탁월한 이 ‘문화인’ 사업가는 뭔가 의미 있는 서점의 진화를 실현해보고 싶었다.

“일본 도쿄의 쓰타야 서점이 아주 유명하지만, 그래도 상품이 중심인 건 어쩔 수 없어요. 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상품으로서 문화가 아니라, 사람들의 이성이 지향하는, 인간의 정신과 감정을 고양하는 그런 콘텐츠들로 구성된 공간을 운영해보고 싶었어요.” 더숲이 지향하는 바가 ‘사람 중심의 공간’이라는 말이다.


탁씨가 더숲을 통해 꾸는 꿈이 하나 더 있었다. “사업체가 이익 창출의 수단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사회 환원이자 기여일 수는 없을까?” 하는 것이다. 그런 사업체가 의미 있으려면 경영상으로도 지속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지속가능한 경영은 돈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으로 되돌아왔다. “작더라도 백년 가는 기업, 백년 가는 가게의 비결이 멀리 있지 않았어요. 결국 사람이 답이었습니다.”

탁씨가 꾸는 ‘백년의 꿈’은 어떻게 영글 수 있을까? 그는 더숲을 성공시킨 다음에는 서울 중심에 1000평 이상의 대규모 복합문화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중앙에 허브가 되어주는 모델이 있어야 주변 지역이 그 모델을 따라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문제는 소자본으로는 그런 규모의 사업을 시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대자본의 상업주의가 아니라 아름다운 사회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손으로 이 일을 하게 할 수 있을까? 그는 요즘 그것을 궁리하고 있다.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너무나 부족한 우리 사회지만, 그래도 뜻을 모으고 협동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저는 그저 성공모델을 제시한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 영광이고요. 하하.”

<서울&> 콘텐츠디렉터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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