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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피해' 닫힌 마음 2개월 방문 두드려 열다

성북구 안암동주민센터 아동청소년복지플래너 김에덴 주무관

등록 : 2017-01-12 11:44 수정 : 2017-01-1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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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 안암동 주민센터 아동청소년복지플래너 김에덴 주무관(오른쪽)이 3일 오후, 이정민 양이 만든 바느질 제품들을 바라보며 흐뭇해하고 있다.

2015년 8월 말 서울 성북구 안암동의 한 낡은 아파트에서 방문을 사이에 두고 작은 승강이가 벌어졌다. 문이 열리기를 바라며 열심히 설득하는 쪽과 한사코 대화를 거부하는 쪽의 부닥침이었다.

성북구 안암동 주민센터의 아동청소년복지플래너로 일하고 있는 김에덴(34) 주무관은 “사실 막막했어요”라며 당시 심정을 말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폭력을 경험한 이정민(17) 양은 중학교 2학년 때 “잘난 척한다”는 이유로 동급생들에게 이른바 무차별 폭력과 집단따돌림을 당했으나, 학교 쪽이 제대로 대처해주지 않은 데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자퇴했다. 이후 “‘히키코모리’ 상태로 집 밖에 거의 나가지 않은 암울한 아이였어요. 저 자신의 머릿속 생각을 남에게 이야기하는 게 쉽지 않았죠. 지금도 쉽지 않지만 그때는 훨씬 어려웠어요.”

지난 3일 김 주무관과 만난 이양은 1년 반 전 방 안에 틀어박혀 세상과 담을 쌓고 살던 소녀라 하기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활달했다. 학교폭력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은 시기였다고 이양은 말했다. 김 주무관은 학교폭력과 관련한 상담 과정에서도 “정민이가 ‘사회의 낙오자’라거나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또다시 상처를 받아서 마음의 문을 더욱 굳게 닫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주무관은 거부당한 뒤 아이의 동태를 줄곧 살폈다고 한다. 이양의 엄마와 언니를 통해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2개월 뒤 드디어 이양의 방문이 열렸다. 그리고 이양은 김 주무관을 붙잡고 펑펑 울었다. “들어오세요, 하는 말에 들어가자 아이가 울고불고 난리가 났어요. 그날 자기 마음속 힘든 이야기를 다 털어놓았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에덴 선생님은 주민센터 직원 특유의 딱딱함이나 서먹서먹함이 전혀 없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어서 좋아요. 그리고 선생님은 항상 저와 관련된 일이 생기면 제 의사를 묻고 존중해주는 게 고맙습니다.” 이양은 김 주무관에 대해 신뢰를 표시했다.

2015년 6월 서울시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의 1차 사업 지역으로 선정된 성북구의 복지플래너로 채용된 김 주무관은 아동복지시설 복지기획팀과 복지관 사업팀에서 각각 7년, 3년씩 아동청소년 상담과 사업을 운영한 아동청소년 전문가이다. 특히 소년법에 따라 처분받은 비행청소년의 상담을 오래해서 이들의 심리 상태를 잘 알고 있는 편이다.


김 주무관은 2015년 3/4분기 ‘한부모 가족’ 학비 지원을 위한 교육급여 대상자의 학적 조회 과정에서 이양이 장기간 결석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당시 이양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0만원을 내며 낡은 아파트에서, 고혈압 있고 파산 신청할 정도로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은 엄마와 언니와 살고 있었다.

이양이 마음의 문을 살짝 연 뒤에도 고비는 있었다. 김 주무관은 “2016년 초, 학교 친구 관계의 소중함이나 수학여행과 학교에 관한 추억 만들기를 위해서라도 학교는 다니는 게 좋겠다”고 넌지시 권했으나, 이양은 발칵 화를 내고 “다시는 오지 말라”며 엄청난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양은 “학교에서 좋았던 기억이 없다. 학교폭력을 당한 뒤 학교 쪽의 처리가 안 좋았다. 무조건 제가 참고 이해해주고 네가 감싸주라는 식이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 듯한 말씀들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에덴 선생님은 참아라, 이해해라, 그런 말을 안 했어요. 대신 저를 많이 배려해주었어요.”

학교교육을 한사코 거부하던 이양이 지난해 8월 중졸 검정고시에 전 과목 합격한 데 이어, 올 3월 서울디자인고등학교 패션디자인과에 입학한다. 김 주무관의 도움으로 학교밖 청소년지원센터인 ‘꿈드림’에서 검정고시 학습 지원과 동아리 지원을 받던 이양은 우연히 자신이 바느질 수업 도중 재봉 쪽에 취미와 재능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고 한다. 김 주무관과 만난 날에도 각종 천으로 만든 가방 등 바느질 제품 10여 점을 꺼내놓았다. 언뜻 보기에도 상당한 솜씨로 보였다. 이양의 어머니는 “성북구의 바자회에 물건을 내놓았는데, 상당히 비싼 값에 팔렸다”며 딸의 솜씨를 대견스러워했다.

뿐만 아니라 이양은 성북아동청소년센터 어린이청소년 운영위원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사회자를 맡아 행사를 진행하는가 하면, 마을협동조합 ‘착한바느질’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재봉 기술 재능기부 활동도 하며 대외활동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과거의 아픔과 상처에 대해서도 “나이 들어서 방황하는 것보다 일찍 방황했던 것이 좋은 것 같다”며 웃으며 이야기할 정도로 씩씩하게 변했다.

성북구와 동 주민센터는 이양 가족들에게 주택바우처(월 6만원)와 서울형 긴급지원(의료비 50만원) 등 직접 지원뿐 아니라 인근 경동감리교회 후원금도 받을 수 있도록 연계 지원을 펼치고 있다.

글 김도형 기자 aip209@hani.co.kr

사진 장수선 기자 grimlik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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