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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위해 쓰레기 줍는 MZ세대 “내 손으로 환경 지켜요”

등록 : 2023-03-1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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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오전 노원구 중랑천환경센터가 진행한 플로깅 프로그램 ‘쓰레기몽땅줍깅’에 참여한 봉사자들 단체 사진.

중랑천환경센터가 매주 진행하는 ‘쓰레기몽땅줍깅’

다양한 연령층 참여한 가운데 젊은층 참가 눈에 띄어

#1. 회사원 유찬란(27·가명)씨는 최근 유명 환경운동가의 사진전을 보고 환경 문제를 고민하게 됐다. 텀블러 사용하기 등 작은 실천을 넘어 직접 몸을 움직여 할 수 있는 활동을 해보고 싶었던 유씨는 3월 첫 주말 경기도 성남시에서 진행된 청년 플로깅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유씨는 “다른 잡생각 없이 쓰레기 줍는 행위가 복잡한 삶에서 평화로운 감정을 느끼게 했다”며 “플로깅 하는 걸 보고 칭찬해주시는 주민분이 있었는데, 큰일을 한 것도 아니지만 뿌듯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2. 청년사회혁신가 심성훈(29)씨는 코로나19로 일회용품 등 쓰레기 문제가 대두됐던 2020년 말부터 청년 플로깅 크루 ‘쓰레커’(쓰레기를 줍는 트래커)를 운영해왔다. 지금까지 약 200번 플로깅을 해오는 동안 회원수는 200여 명으로 늘어났고 현재도 매 활동 20~30명은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친환경 활동을 재미있게 풀어보자’는 생각으로 단체를 설립했다는 심씨는 “앞으로 미래 세대에 남겨줄 수 있는 것 중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치가 환경이라고 생각했다”며 “봉사의 개념보다는 환경 보전을 위한 하나의 즐거운 문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플로깅 프로그램 시작 전 센터에서 사전 교육을 받고 있는 봉사자들.

전세계적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의식이 높아지면서 환경 이슈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고 있다. 특히 청년층의 관심이 뜨겁다. 영국 컨설팅그룹 딜로이트가 지난해 전세계 엠제트(MZ)세대 2만여 명을 조사한 결과 기후변화가 생활비에 이어 걱정거리 2위로 나타났고, 인스타그램이 지난해 미국 제트(Z)세대 1200명을 대상으로 했던 ‘2023 트렌드 리포트’ 조사에서는 ‘기후변화’와 ‘지속가능성’이 주요 트렌드로 꼽혔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 청년들도 88.5%가 ‘환경 문제가 심각하다’고 인지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환경보호를 주요 가치로 삼는 세대’라며 엠제코(MZ+ECO)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실천을 중시하는 엠제코는 친환경 소비는 물론 각종 환경 캠페인을 주도하면서 친환경 활동을 하나의 문화로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플로깅(Plogging)이다. 플로깅은 ‘이삭을 줍는다’는 뜻의 스웨덴어 ‘플로카 우프’(Plocka upp)와 달리기를 뜻하는 영어 ‘조깅’(Jogging)의 합성어로, 걷거나 달리면서 쓰레기를 줍는 행동을 말한다. 지역생활 커뮤니티 당근마켓에는 같이 플로깅할 사람을 구하는 모집 글이 수시로 올라오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각국의 인증사진이 넘쳐난다.


봉사자들이 하천 부근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다.

토요일인 지난 4일 오전 10시, 기자가 찾은 서울 노원구 중랑천환경센터 1층 로비는 센터가 지난 1월부터 매주 진행 중인 플로깅 프로그램 ‘쓰레기몽땅줍깅’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자원봉사자들로 북적였다. 주말 이른 시각인데도 중학생부터 연로한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스물다섯이나 모였다. 이들은 간단한 교육을 받은 뒤 센터가 준비한 파란 조끼를 입고 집게와 쓰레기봉투, 면장갑 등을 챙겨 밖으로 나섰다. 4~5명씩 조별로 나뉜 봉사자들은 약 1시간 동안 중랑천 녹천교 일대를 돌며 묵묵히 쓰레기를 주웠다.

3주간 꾸준히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김현조(23)씨는 “매주 하는데도 쓰레기가 계속 나온다”며 “필요한 활동이라고 생각해서 하고 있다. 내가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무리와 떨어져 쓰레기 줍기에 여념이 없던 강진희(25)씨는 “지난해에 한번 해봤는데, 원래 걷는 걸 좋아해서 또 참여하게 됐다”며 “활동하면서 이렇게 쓰레기가 많이 버려진다는 것도 알게 됐고, 환경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취지가 좋은 것 같다”고 했다.

‘기후위기 우려’ 커지면서 행동 나서는 MZ세대 늘어

봉사자들이 하천 부근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다.

“스몰 액션으로 큰 자기효능감 느껴”

친환경 중시해 ‘엠제코’라 불리기도

중랑천 쓰레기 랭킹 1위는 ‘담배꽁초’

“최대한 주워 ‘쓰레기 바다 유입’ 막아야”

회사 동료들과 함께 참여한 황옥영(47)씨는 “오늘이 두 번째”라며 “요즘 다들 운동에 관심이 많은데 환경에 대한 관심도 높은 것 같다”며 “겸사겸사 좋으니 많이들 참여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환경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유일한 외국인 참가자였던 붉은 머리의 크리스티나 와샴(35)도 “운동과 환경보호를 같이 할 수 있어서 좋다”며 “환경은 모든 인간에게 소중하기 때문에, 내가 시간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봉사자들은 보행로는 물론 차도 옆 길가, 하천 주변까지 발 닿는 곳곳마다 몸 사리지 않고 쓰레기를 수거하는 데 열중했다. 이미 다른 봉사자가 지나간 자리라도 숨어 있는 쓰레기가 없는지 재차 확인했다. 몇 번 플로깅을 해본 봉사자들은 다리 위 배수관 뚜껑을 열고 수로를 막고 있는 오염물을 꼼꼼히 청소하는 노련함을 보이기도 했다. 한 시간이 지나 쓰레기봉투 다섯 개가 채워지자 주운 쓰레기를 다시 분류해 분리수거함에 버리는 작업을 거치고야 활동이 끝났다.

중랑천 일대 플로깅을 끝낸 봉사자들이 주운 쓰레기를 바닥에 쏟아놓고 분리수거 중이다.

중랑천환경센터는 플로깅 활동 때 단순히 쓰레기를 줍는 데서 그치지 않고 쓰레기 체크리스트를 작성해 통계를 내고 있다. 한 봉사자가 쓰레기를 주워 오면, 다른 봉사자가 쓰레기 종류를 확인해 체크하는 식이다. 중랑천환경센터 손진숙 운영팀장은 “체크리스트를 실시하면 의식변화가 있을 거라는 확신으로 시작했다”며 “같은 지역에서 매주 플로깅을 하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보고 싶었다. 쓰레기를 줍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쓰레기가 많고 어떻게 처리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중랑천환경센터가 집계한 지난해 중랑천 쓰레기 배출 순위 1위는 담배꽁초였는데, 이날 역시 담배꽁초가 1위를 차지했다. 5개 조 중 4개 조가 110개 이상 수거했고, 230개나 수거한 조도 있었다. 친언니를 따라 프로그램에 처음 참여한 최유리(19)양은 “평소에 다니면서 쓰레기가 많은 걸 보고 ‘이참에 해보자’는 생각으로 왔는데, 담배꽁초가 생각보다 너무 많아서 놀랐다”고 말했다. 언니 최유진(21)씨는 “여기서 플로깅을 세 번 이상 한 것 같다”며 “재밌기도 하고 쓰레기가 치워지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다. 많은 사람이 이런 활동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난 4일 플로깅 프로그램 ‘쓰레기몽땅줍깅’에 참여한 5개 조가 작성한 쓰레기 체크리스트.

센터 직원들이 인정한 활동 단골 멤버 심순정(53)씨는 “쉬는 날에 중랑천을 자주 걷는다. 내가 사는 동네인데, 우리가 서로 잘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학생들이 되게 많더라. 아직은 춥고 주말에 쉬고 싶을 텐데 매번 이렇게 참여해주는 게 감사하다”고 했다. 심씨는 “매주 와서 할 계획”이라며 “다음주도 이미 신청해놨고, 물의 날 행사 때는 회사 직원들과 함께 오려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날 활동을 인솔한 이효경 강사는 “센터에서는 쓰레기가 많이 줄었다고 느끼지만, 처음 본 사람들은 이 정도도 많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쓰레기를 그냥 버리는 사람이 없어지진 않을 것”이라며 “쓰레기가 하천을 타고 바다로 흘러가기 전까지 최대한 주워서, 놓치는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글·사진 이화랑 객원기자 hwarang_lee@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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