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고 바르게, 앞서 맞이하는 디지털 세상

등록 : 2022-09-2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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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서울 장안중학교에서 진행된 중학교 1학년 수학수업 모습. 서울특별시교육청 제공

예전에 출근 가방에 컴퓨터의 전원선과 모니터 연결선을 넣어 다니던 지인이 있었다. 하교하자마자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는 중학생 아들과의 씨름 끝에 찾아낸 나름의 묘수였다. 그러나 이 묘안은 일주일을 가지 못했다. 아들은 오락실로 하교해서 밤늦도록 집에 올 생각하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차라리 안전하고 편하게 집에서 해라, 가족이 보는 데서 해라, 엄마는 두 손을 들어야 했다. 세월이 흘러도 많은 부모는 여전히 컴퓨터와 긴 전쟁 중이다.

서울시교육청은 모든 학생이 스마트기기를 학습도구로 활용하게 하겠다는 ‘디벗’(디지털기기는 학습 친구)이라는 야심찬 정책을 내놓았다. 이미 세계는 디지털 역량이 경쟁력의 주요 척도가 됐고, 우리 정부도 디지털 인재 육성을 주요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그런데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주관하는 국제 학업성취도 비교연구(PISA)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수업 시간에 교사와 학생이 함께 디지털기기를 활용하는 비율이 평균보다 한참 아래였다. 특히 디지털기기에 대한 자율성, 역량, 사회적 상호작용과 관련한 인식은 최하위권이었다.

이런 상태로 아이들을 디지털 세상으로 내보낼 수는 없지 않겠는가. 디지털 세상으로 나갈 역량을 학교에서 준비시켜야 한다. ‘디벗’은 공책과 칠판에 스마트기기와 전자칠판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더해 학습 방법을 확장하려는 것이다.

그 필요성을 알면서도 학부모는 걱정이 앞선다. 지금도 스마트폰을 통제하기 어려운데 학교에서 준 기기를 집에까지 가지고 온다니 말이다. 게다가 어떤 학생들은 보안프로그램을 뚫기도 한단다. 학부모의 이런 우려에 깊이 공감하기 때문에, 서울시교육청은 더 안전한 디지털 도구 사용 교육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우선 학생들의 교육용 기기에 모바일 디바이스 매니지먼트(MDM) 프로그램을 설치했다. 또 유해정보 차단뿐 아니라 보호자의 스마트기기와 연동해 관리하는 방안, 효율적인 시간 제어 기능 등을 추가하기 위해 연구기관과 협업하고 있다.

기술적 장치 외에도, 학생·교사·학부모가 교육적으로 공조할 수 있도록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과 디지털 중독 예방 교육, 수천 명 규모의 학부모 연수도 진행 중이다. 앞서 이 정책을 시행한 오스트레일리아·일본 등 여러 국가와 화상회의로 사례를 공유하며 더욱 정교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디벗은 올해 중1부터 시작해서 2025년까지 모든 중·고등학생에게 확대할 계획이다. 초등학생은 발달단계를 고려해 몇 학년부터 시작하는 것이 적절할지 아직 논의 중이다.

이미 많은 학생이 스마트기기를 가지고 있는데 굳이 나눠 줄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도 받는다. 첨단 영역일수록 어려운 계층이 소외되기 쉽기 때문에 도입 초기에는 여건의 격차를 없애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또 한 교실에서 다른 기종으로 수업을 구현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초기 5년은 학교별로 동일 기종과 운영체계(OS)로 학습기반을 닦아나가려고 한다.

지금 중1 교실에서는 ‘디벗’을 활용한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스마트기기가 협력 수업에 대단히 최적화된 도구라는 점이 눈에 띈다. 교육에서 디지털기기는 훌륭한 소통 도구이자 협력 도구로 빛을 발한다. 협업용 교육 앱을 사용하면서 실시간으로 교사의 피드백을 받고 자기 속도대로 과제를 수행하기도 하며,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학생도 학습플랫폼에 자기 주장을 조용히 글로 올리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교사로부터 학생에게 지식이 전달되던 구조는 변화한다.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때로는 학생에게서 교사에게로 학습정보가 공유되고, 새로운 콘텐츠가 생산된다. 학생은 콘텐츠의 소비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가 되기도 한다. 어떤 학교는 전체 학생 회의를 유튜브와 전자투표로 진행하기도 하는 등 학교에서 디지털 도구는 참여와 민주주의 경험을 넓히는 데도 유용하게 사용된다.

세상의 변화 속도가 빨라질수록 미래에 대한 준비는 점점 복잡하고 어려워진다. 서울시교육청은 우리 학생들이 ‘디벗’과 함께 폭넓은 디지털 학습 경험을 쌓으며 미래사회의 능력 있는 주인공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힘쓸 것이다.

고효선ㅣ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정책국장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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