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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단녀 위한 전국 첫 지자체 일자리 회사…서초구 여성 ‘밝게 웃다’

서초여성일자리주식회사, 1년 만에 직원 66명으로 늘어 공공업무대행과 수익 사업 진행…영역 활발히 넓혀가

등록 : 2022-08-1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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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서초구 서초동 카페 다임에서 주인 신승인(60)씨와 아트테리어 작가 김미정(48)씨가 가게 인테리어 개선 작업을 하면서 줄자로 치수를 재고 있다. 서초여성일자리주식회사는 서초구의 소상공인 가게 개선 사업인 아트테리어 사업을 대행하고 있다.

“경력단절 극복하고, 다시 일 통해 ‘삶의 여유’ 찾아 기뻐요”

자치구 차원 ‘새 여성 일자리 접근법’

아트테리어·재능플랫폼 사업 등 펼쳐

곳곳에서 ‘롤모델’로 인식해 벤치마킹

“글씨체를 간판 위로 튀어나오게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요.”(아트테리어 작가 김미정) “그냥 밋밋하게 해도 되지 않나요.”(가게 주인 신승인) “작은 포인트를 주는 게 완성도를 더 높일 수 있어요. 입체감 있게 하면 고급스럽죠.”(김미정) “그럼 그렇게 해보세요. (전문가의 시각으로) 알아서 예쁘게 해주신다니까.”(신승인)

지난 12일 서초구 서초동 카페 다임에서는 주인 신승인(60)씨와 아트테리어 작가 김미정(48)씨가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가게 인테리어 개선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지난번 첫 만남 때 가게 밖 간판, 가게 안 색상과 가구, 소품을 바꾸기로 했다. 이날은 두 번째 만남으로, 김씨가 만들어 온 디자인 견본을 함께 보면서 의견을 나눴다.

가게 밖 간판은 기역 모양으로 가게 문을 감싸는 형태로, 연한 베이지색 계열의 색상을 적용하기로 했다. 로고는 간결하게 커피잔과 함께 ‘카페 다임’이라고 넣은 것을 선택했다. 여기에 더해 신씨가 원하는 것을 말하면 김씨가 어떻게 잘 구현할지 대안을 내놓았다. 두 사람은 가게 밖으로 나와 실제 가게 간판이 걸릴 입구를 점검한 뒤 논의를 끝마쳤다.


김미정씨는 3년 동안의 경력단절을 딛고 서초여성일자리주식회사 아트테리어 사업에 참여했다. 김씨는 “이 상황이 너무 감사하고,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정용일 선임기자

“남편도 쉬고, 벌이가 없으니까 불안하고 많이 힘들었죠.” 아트테리어 사업에 참여한 김씨는 남편과 문구·액세서리 디자인 사업을 10년 넘게 해오다 2019년 사업을 접었다. 김씨는 일을 그만둔 이후 3년 동안 심리적 안정을 찾기 위해 평소 관심을 두던 아트 작업과 그림을 그리면서 힘든 상황을 이겨냈다.

“새로운 일을 계속 알아보고 있었어요.” 마침 올해 서초일자리주식회사에서 아트테리어 작가로 활동할 지역 예술가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응모해 7월부터 아트테리어 사업을 맡게 됐다. 김씨가 맡은 곳은 카페다임을 비롯해 미용실, 수입품 판매점 등 3곳이다.

“카페 다임 사장님은 모던한 것을 좋아하고 저는 컬러풀한 것을 좋아해요. 제가 하는 아트 작업이 매장에서 원하는 분위기와 잘 어울리면 효과가 극대화할 것으로 생각해요.”

김씨는 “가게 안 쿠폰판을 내 느낌대로 만들고, 그 옆 작은 공간에 카페 분위기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릴 예정”이라며 “예술적인 부분을 좀 첨가하려고 한다”고 했다.

“경력단절 기간은 ‘나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시간들이었죠. 다시 일을 하고 삶의 여유를 찾을 수 있게 돼 기뻐요.” 김씨는 “이 일은 가게 주인과 소통하면서 가게에 필요한 것을 아트 작업을 통해 보여줄 수 있어 매력적”이라며 “이 상황이 너무 감사하고,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김씨가 참여하고 있는 아트테리어&디지털전환 사업은 서초구가 코로나19로 위축된 소상공인 가게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진행하는 사업이다. 서초여성일자리주식회사가 지난 7월부터 대행하고 있는데, 가게 60곳을 선정해 개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초구는 지난해 9월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서초여성일자리주식회사를 만들었다. 구가 자본금 2억9천만원을 투자해 만든 회사다. 현재 대표와 사무국 직원 3명을 포함해 총 66명이 근무하는데, 공공업무대행 부문에 46명, 수익 사업부문에 16명이 근무한다.

서울 자치구 중에서 일자리주식회사를 만든 곳은 동작구, 성동구, 금천구, 노원구에 이어 서초구가 다섯 번째다. 앞서 일자리주식회사를 만든 4곳의 자치구가 ‘어르신 일자리’ 중심이었던 데 비해 서초구는 경력단절여성을 비롯해 ‘여성 일자리’에 초점을 맞췄다. 고학력 경력단절 여성이 많은 서초구의 지역 특성을 반영해 이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지역경제도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최숙현 서초구 일자리경제과 일자리팀장은 “경력단절 여성이 다시 일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 필요성은 늘 제기돼왔지만, 일시적이고 단순한 형식의 일자리 제공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며 “서초여성일자리주식회사는 출산과 육아, 코로나19로 일을 그만둬야 했던 여성들이 적성과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자치구 차원의 새로운 일자리 접근법”이라고 설명했다.

서초여성일자리주식회사의 사업 영역은 크게 공공업무대행 사업과 수익 사업 두 부문으로 나뉜다. 공공업무대행 사업은 공공시설클린 사업과 아트테리어&디지털전환 사업이 있다.

공공시설클린 사업은 60살 이상 주민이 구내 18개 동 주민센터 등 공공시설의 환경정비를 맡아서 한다. 아트테리어&디지털전환사업은 지역 예술가와 컨설턴트가 소상공인점포를 개선하고, 청년 에스엔에스(SNS) 서포터즈가 온라인 마케팅을 지원한다. 최 팀장은 “무엇보다 사업 초기 안정적인 재정구조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며 “구와 지속적인 협력으로 대행 사업을 계속 확대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여성 일자리를 만들어가겠다”고 했다.

수익 사업으로 플랜테리어 ‘늘풀’, 늘봄카페, 재능플랫폼을 운영한다. 플렌테리어 사업은 식물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생활 방식에 착안해 사업화했다. 지난해 ‘늘풀’ 브랜드를 만들어 지역 화훼농가와 상생할 수 있는 수익모델을 만들고 있는데 크리스마스트리 설치, 실내조경, 옥상정원 개선 등으로 29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 상반기에도 6500만원의 매출을 일궜다. 올해는 반려식물 매칭 애플리케이션 개발과 반려식물 키트를 준비하고 있다. 또 원예치료수업 등 반려식물 교육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서초여성일자리주식회사가 플랜테리어 사업으로 만든 한 카페의 벽.

늘봄카페는 경력단절 여성 바리스타가 양재도서관, 내곡도서관, 반포3동 주민센터 등 공공시설에서 카페를 운영한다. 비건 메뉴 개발 등 기존 카페와 차별화된 운영 전략을 세웠다.

재능플랫폼은 여성들의 자녀 교육과 양육 등의 경험을 살려 콘텐츠를 만들고, 이를 토대로 지역 아동을 위한 재능교육 플랫폼을 만드는 사업이다. 콘텐츠 기획, 교육 설계, 크리에이터 등의 분야에 경력단절 여성을 채용해 어린이를 위한 재능 강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엄마표 교육 서비스’다. 9월께 플랫폼을 완성할 예정이다.

여성들의 자녀 교육과 양육 등의 경험을 살려 지역 아동을 위한 콘텐츠를 만드는 재능플랫폼 화면.

김지연 서초여성일자리주식회사 사업개발팀 주임은 “플랜테리어, 카페, 재능플랫폼 등의 사업은 섬세함이나 민감함 등 여성이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이라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며 “수익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고용을 창출해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고 했다.

재능교육 콘텐츠 제작 모습.

서초구는 앞으로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일자리를 지속해서 창출하고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만들기 위해 대행 사업을 적극적으로 확대해갈 계획이다. 카페, 반려식물 사업 등 자체 수익 사업도 확장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갈 계획이다. 또한 양재천 길 상권육성기구에도 참여해 소상공인과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안도 찾는다.

플랜테리어 사업을 통해 만든 양재천 크리스마스트리.

서초여성일자리주식회사는 여성 일자리의 롤모델을 찾는 많은 곳에서 주목하고 있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충남과 제주 여성정책개발원, 충북도청, 새일센터 등에서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서초여성일자리주식회사는 수익 사업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내년까지 여성 일자리를 80개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재은 서초여성일자리주식회사 대표는 “코로나19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1년 동안 모든 직원이 열심히 노력해서 매출을 늘리고, 일자리를 만들어냈다”며 “여성 일자리 하면 곧바로 이것이라고 떠올릴 수 있는 대표적인 사업을 만들어내겠다”고 다짐했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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