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 농사짓자

고구마 줄거리도 훌륭한 겨울 반찬

등록 : 2016-09-29 14:12 수정 : 2016-09-29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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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은 나들이에 최고의 계절이지만, 농부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서리 내리는 상강 이전에 작물을 갈무리하지 않으면 한 해 농사는 헛수고가 되고 만다. 하지만 갈무리만 잘하면, 길고 긴 겨울철 풍성한 밥상을 기약할 수 있다.

갈무리는, 호박이 막바지 꽃을 피우고 조·수수가 대궁이를 숙일 때부터 들어가야 한다. 이때부터 바람이 좋고 가을볕이 따가워 잘 마르기 때문이다. 호박, 가지, 토란 줄거리, 고구마 줄거리, 고추, 고춧잎, 깻잎 등이 갈무리할 것들이다.

잘 익은 호박은 통풍이 잘되는 곳에서 말린다. 팥 넣고 끓인 호박죽은 겨울 최고의 별미다. 고구마 줄거리 역시 말려 두었다 겨울에 묵나물로 쓴다. 된장찌개에 쫑쫑 썰어 넣으면 신선한 채소 못지않다. 생선찜 할 때 깔면 맛이 구수해진다.

덜 익은 호박은 채반에 바짝 말려 두었다가 겨울에 들깻가루 넣고 자작하게 볶아 놓으면 고기반찬 부럽지 않다. 가지도 말려 두었다가 나물도 하고 전도 부쳐 먹는다. 가지전은 쫄깃한 식감이 고기전과 비슷하다.

고추는 버릴 게 없다. 열매는 모두 따서 저장해 놓으면 이듬해 고추가 나올 때까지 양념이나 밑반찬으로 먹을 수 있다. 풋고추는 장아찌를 담그고, 작은 고추는 밀가루를 묻히고 쪄서 말려 두었다가 기름 두르고 튀기면, 밑반찬은 물론 술안주로도 제격이다. 바삭한 것이 아이들에게는 군것질거리다. 고춧잎은 깨끗한 것만 따서 일부는 말리고, 일부는 간간한 소금물에 절이면 이듬해 여름까지 쓸 수 있다. 물에 담갔다가 무말랭이와 무치면 여름 밑반찬으로 좋다.

잎이 누렇게 되면 들깨도 따야 한다. 잎은 간장 양념을 한 뒤 되직한 된장물을 부어 잠기게 한다. 가끔 뒤적여 간이 배면, 숙성된 들깻잎장아찌를 겨울부터 밑반찬으로 먹을 수 있다.

일전 돌아가신 시어머니는 해마다 이렇게 해놓고 들기름 한 수저 넣고 자작하게 쪄서 주셨다. 그냥 먹는 것보다 훨씬 더 구수하고 감칠맛이 났다. 들깻잎장아찌를 보면, 형제들이 한자리에 둘러앉아 밥 먹는 모습에 그렇게 행복해하셨던 어머님 생각이 날 것 같다.


글·사진 유광숙 도시농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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