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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보다 재밌는 수업, 숲 교실

등록 : 2019-06-13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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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전일중 교실에 작은 숲 ‘마음풀’ 조성

학생들 “눈 돌아가는 게 많아 폰 안 보게 돼”

지난 5월24일 오후 동대문구 전일중학교의 마음풀에서 중학생들(왼쪽)과 시립대학 학생 멘토들(오른쪽)이 함께 자유학기제와 연계한 ‘마음풀 식물교실’을 진행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지난해 말 서울시는 동대문구 전일중학교의 빈 교실 2개를 터서 창밖으로만 보던 식물을 안으로 들였다. 학생들이 둘러앉아 수업하는 큰 탁자 한가운데는 작은 정원을 놓았다. 한쪽에는 씨앗을 새싹으로 키우고 분갈이를 할 수 있는 시설도 만들었다. 교실 뒤에는 열대식물이 자라는 작은 숲을 만들고, 자유롭게 낙서할 수 있는 큰 거울을 벽에 붙였다.

숲이 있는 교실 ‘마음풀’에 5월24일 오후 서울시립대 학생들이 들어섰다. 자유학기제와 연계한 ‘마음풀 식물교실’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시립대 마음풀 서포터즈’를 결성한 조경학과 학생 14명은 지난 4월 말부터 매주 자유학기제 수업에 멘토로 참여한다. 이날은 마음풀과 연결된 텃밭에 먹을거리로 쓸 채소, 허브, 꽃 등을 심어 정원(키친 가든)을 꾸미기로 했다.

지난 시간 대학생 멘토들과 중학생 10명은 3개 팀으로 나눠 만들고 싶은 정원의 형태를 논의했다. 한 팀은 만화영화 <포켓몬>에 나오는 캐릭터 ‘에나비’가 마법의 정원에 꽃을 심는 모습을 여러 종류의 과자로 형상화했다. 시립대 3학년 이지우씨는 “처음 하는 정원 모델링을 어려워할 것 같아 학생들이 친숙한 재료인 과자로 재미있게 디자인하도록 도왔다”고 말했다.

지난번 수업이 끝나고 각 팀 멘토는 초안을 실제로 형상화할 수 있는 시공안으로 발전시켰다. ‘에나비’팀 멘토들은 캐릭터의 얼굴 윤곽이 더 뚜렷해지고 오래 유지되도록 테두리에 흰 자갈을 깔기로 했다. 심을 식물로 흰색과 분홍색 계열의 강낭콩, 바질, 방울토마토, 옥수수, 초롱꽃, 천일홍, 꿀풀, 라벤더 등을 골랐다.

멘토들은 시공안 발표를 마친 뒤 탁자 위에 모종을 올려놓으며 학생들에게 “오늘 심을 꽃들 가운데 향기 나는 것도 있고 질감이 신기한 것도 있다”며 “자기 팀 정원에 어떤 게 들어가는지 각자 만져보고 냄새도 맡아보라”고 안내했다. 탁자 위에 진열된 모종을 보고 학생들이 반가운 듯 외쳤다. “이거 토마토다!” “어떻게 알았어요?” “예전에 키워봤거든요.” “이건 머위죠?” “머위도 알아요?” “먹는 거 아녜요?” 학생들이 모르는 식물에 대해서는 멘토들이 설명했다. “이 상추는 일반 상추와 조금 달라. 잎이 뾰족하잖아. 오크 상추라고, 이거 맛있어. 너희 먹일 거야.” “이 해바라기는 특이해요. 씨는 못 먹는데, 노란색과 갈색이 섞여서 더 예쁜 꽃이 피는 해바라기예요.” 그러자 한 학생이 “꽃이 예뻐서 못 먹는구나”라고 하자 옆에 있던 친구가 “원래 화려한 게 독이 있는 거야. 사람도 화려한 사람 만나면 안 돼”라며 거들었다.


왁자지껄 떠드는 학생들 가운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스마트폰이 없냐”고 묻자 2학년 이세현 양은 “지금 스마트폰 갖고 있는데 이 수업이 더 재미있어서 안 보게 된다”고 했다. 1학년 이유빈 양도 “여기 있을 때는 스마트폰 안 하게 된다”고 했다. 2학년 한효정 양은 “마음풀에 눈 돌아가는 게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교실이나 집보다 새로운 게 많고, 할 게 많잖아요. 요즘 학생들도 자연 친화적인 거 좋아할걸요. 일단 저는 좋아요.”

‘눈 돌아가는 것’ 가운데 가장 인기가 많은 게 교실 뒷벽 전체에 붙어 있는 ‘거울벽’이다. 속내를 글과 그림으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남기고 싶지 않은 내용은 물을 뿌리면 깨끗이 지워진다. 그 물은 버려지지 않고 정원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과자로 정원 디자인…씨앗종이에 속마음 표현

시립대 조경학과 학생들, ‘마음풀’서 자유학기 수업

‘빗소리’ 듣고 ‘허브 모히토’ 마시며 잠든 오감 깨워

이미 거울벽은 학생들의 낙서로 빼곡해 빈자리가 없었다. 남녀 학생의 이름을 함께 적어놓은 하트 문양이 유독 많았다. ㈜라이브스케이프와 함께 마음풀을 시공한 ㈜마이너스플러스백의 고성현 대리는 “본격적인 공간 디자인에 앞서 아이들에게 설문조사했더니 가장 하고 싶은 활동이 ‘잠자는 것’이었고, 그다음이 자유롭게 그리기였다”며 “아이들이 그리거나 표현하는 걸 좋아해서 거울벽이 가장 인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2학년 김하연 양은 “다른 친구들도 여기 오는 거 좋아한다. 신기한 게 많고 물을 틀어 놓으면 빗소리 같은 게 난다”고 말했다. 바나나 나무, 피닉스야자, 떡갈고무나무 등 열대식물이 자라는 ‘초록정원’ 위아래에 자동 관수 시설이 설치돼 있어 정해놓은 시간에 일정한 양의 물이 자동으로 나온다. 천장에서 물이 떨어질 때는 비가 오는 숲 속에 있는 듯한 분위기다.

시립대 4학년 한민아씨는 “잘 자란 식물을 교실에서 본다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마음풀에는 열대식물처럼 밖에서 보기 힘든 식물이 참 많다”고 말했다. 고 대리는 “마음풀을 디자인할 때 아이들의 새로운 감각을 깨우기 위해 교실에서 가장 보기 힘든 것, 교실과 가장 먼 것들을 들이려고 했다”고 말했다.

시립대 3학년 문선아씨는 가장 인상 깊은 시설로 흙과 물, 씨앗을 만지며 발아시킬 수 있는 ‘씨앗정원’을 꼽았다. “조경학을 전공하고 있지만, 발아시킬 수 있는 곳은 처음 봤거든요. 식물을 직접 키우기도 하고 물 주고 관리도 하며 아이들이 체험할 수 있는 공간 위주로 잘 디자인한 것 같아요.” 시립대 3학년 김은솔씨는 “도시에서 식물을 키우는 게 쉽지 않은데, 여기는 흙과 씨를 쉽게 만질 수 있어 정말 좋다”며 “학교에 마음풀이 있었다면 맨날 왔을 것 같다”고 말했다.

씨앗정원에는 글과 그림이 그려진 흰 종이가 몇 장 놓여 있었다. 흙에 심으면 새싹이 자라는 ‘씨앗종이’다. 2학년 이세현 양은 “지난 수업 때 종이를 갈아 물에 넣고 씨앗을 붙여 씨앗종이를 만들었는데, 종이를 물에 섞을 때 느낌이 재미있었지만, 뒷정리는 힘들었다”고 말했다. 고 대리는 “거울벽처럼 학생들이 자기를 표현하도록 종이를 재활용해 씨앗 종이를 만들었다. 종이를 갈아서 물이랑 1 : 1로 섞을 때 질감 자체가 호불호가 있는데, 학생들이 재미있어해 다행”이라고 했다.

‘마음풀 식물교실’에는 이처럼 오감을 깨우기 위한 활동이 많다. 스마트폰에 매몰된 아이들의 잃어버린 여러 감각을 되살리기 위해서다. 키우는 허브 잎으로 모히토, 카나페 같은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전일중학교는 마음풀에서 자유학기제수업뿐 아니라 동대문종합사회복지관과 함께 ‘다가치 다같이’라는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서현 상담 교사는 “온도와 습도가 쾌적한 환경에서 아이들이 강사님과 함께 화분을 만들면서 정말 즐거워했다. 지난해 상담실에서 진행했는데, 올해 마음풀에서 하니까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박숙희 서울시 디자인정책과장은 “아이들이 감각의 다양성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일상 공간인 교실에 식물을 들여와 사계절 내내 누릴 수 있도록 했다”며 “다양한 정서적 문제와 사회적 갈등을 경험하는 청소년들에게 시각 위주의 도시 환경에서 벗어나 자연을 매개로 좀더 고른 감각 발달을 촉진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디자인을 적용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전일중학교에 이어 금천구 동일여고와 도봉구 정의여고에도 올해 안에 마음풀을 만들 계획이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서울시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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