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책방들, 인문학 배움터로 화려하게 변신하다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 서울시내 20곳에서 ‘우리동네 책방 배움터’ 진행

등록 : 2021-09-3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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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4일 저녁 8시 강동구 길동에 있는 동네 책방 아운트에서 ‘코로나, 변화 그리고 연결’을 주제로 독서 토론이 열렸다. 김형경 작가가 쓴 <사람풍경>을 읽고 온 참가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낭독회·북토크·리뷰 등 프로그램 다양

강동구 책방 아운트, 주민과 독서토론

동네 문화공간의 역할 충실히 해내

“책방은 안전·편안한 네트워크 구심점”

“저는 이 책을 읽고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웃음) 평소 분노를 잘 위장하고 사는데, 그게 스트레스와 우울증 원인이 된다는 거죠. 차라리 현명하게 화를 내고 남은 감정을 추리는 편이 좋겠더군요. 노년이 될수록 내 감정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장소나 행동을 찾아 루틴을 만들어야겠다 싶었어요.”

김희정(51)씨 말에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24일 금요일 저녁 8시, 강동구 길동에 있는 동네 책방 아운트에서 열린 독서토론 현장이었다. ‘코로나, 변화 그리고 연결’을 주제로 참가자 4명과 사회자 1명이 모였다. 모두 김형경 작가가 쓴 심리치유 에세이 <사람풍경>을 읽고 왔다.


아운트는 지난 3월 길동 주택가에 자리 잡은 동네 책방이다. 원래 예비사회적기업으로서 라이프스타일 관련 제품을 디자인·제조·판매하는 주식회사 엘엘엘프로젝트의 사무실 겸 쇼룸으로 문을 열었는데, 통유리창 너머로 공간에 배치된 많은 책을 보고 동네 주민들이 책방으로 오인했다. 나아가 ‘독서모임이나 책 구매를 원한다’는 요청을 꾸준히 해왔다. 이에 주말만이라도 책방으로 운영해본다는 시도가 확장돼 그대로 주말 책방(금~일) 겸업을 시작했다.

이날 북클럽에 참여한 이들은 투명한 칸막이를 두고 마스크를 다부지게 쓴 모습이었다.

코로나19로 한 차례 연기됐던 모임을 어렵게 열어서일까. 책엔 색깔별 형광 밑줄과 포스트잇, 단상을 적은 문구들이 빼곡했다. 어깨에 메고 온 묵직한 가방에선 연계해 읽어볼 만한 책이 서너 권씩 나왔다. 기자가 물었다. “이게 다 과제나 참여 조건이었나요?” 모두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리가요. 여기 와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 생각을 하니 자연스럽게 이렇게 되던걸요.” 병원에서 임상심리가로 활동한다는 신동빈(31)씨가 힘주어 답했다.

책방 아운트의 김은희 대표는 “이처럼 책방 찾는 분들 대부분이 이 근방 주민분”이라며 “동네에 문화공간이 드물어 주민분들이 참 좋아하신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최근에는 ‘우리동네 책방배움터’ 소식을 알고 알음알음 찾아오는 주민이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참여자들이 책을 정말 열심히 읽어요.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말씀해주셔서 매번 놀라고 감동을 받습니다. 90분에서 110분 정도 쉬지 않고 진행하는데도 대체로 시간이 금방 가버려서 아쉽다는 피드백도 많았습니다.”

‘우리동네 책방 배움터'는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에서 동네서점을 기반으로 마련한 인문학 대중화 사업이다. 인문학 평생학습 참여공간으로서 동네서점의 잠재력을 봤다.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은 시민 누구나 집과 가까운 서점에서 삶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인문학 도서 낭독회, 리뷰, 토론, 글쓰기, 인문학 작가 북토크, 필사, 독서클럽 등 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할 수 있는 보조금을 지원했다. 주로 인문학과 서점 콘텐츠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학습자 참여형 프로그램이다.

동네 책방 발굴과 콘텐츠 제작 지원을 위해 먼저 지난 4월부터 5월까지 서울시에 있는 동네서점(서적)을 대상으로 공모를 열었으며 심사기준을 바탕으로 서점 20곳을 선정해 동네서점당 최대 600만원 내외로 총 1억2천만원의 지원금을 보조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집콕’이 일상화되자 서점이 자연스레 ‘동네 사랑방’으로 변해, 서로 감정을 다독일 수 있는 자리가 된 것은 기대치 못한 소득이다.

북토크에 참여한 최혜정(41)씨는 “오히려 낯선 이들과 만나니 대화가 편하다. 코로나 겪으며 아이 둘과 많이 부딪쳤다. 때마다 밑바닥을 보듯 내 안에 몰랐던 감정을 많이 발견했다. 나의 심리와 ‘내면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나누며 많은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했다. 김승수(33)씨는 “책모임의 좋은 점은 바로 이거다. 오늘만 해도 네 분의 개개인 경험이나 의견을 듣지 않았는가. 인상 깊은 점을 말할 때 내가 놓친 부분을 다시 보게 되고 한 권의 책 너머 ‘알파’를 얻게 된다”고 덧붙였다.

아운트의 김 대표는 “이번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많은 분이 책방에서 도서 구매 외에 다양한 경험을 원하신다는 걸 현장에서 봤다. 독서모임이나 북토크 등 여러 배움과 참여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고민 중”이라며, “동네책방은 부담 없이 들러서 잠시 숨을 돌리고 기분을 환기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특히 요즘 1·2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지역 커뮤니티의 필요성이 더 높아졌는데, 책방은 안전하면서 편안한 구심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글 전유안 기자 fingerwhale@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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