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의 탄생

‘공연의 시간’ 만드는 ‘공연 이전의 시간’ 따라가기

연극의 탄생 ① 국립극단의 새 작품개발 사업 ‘창작공감’과 떠나는 ‘창작 과정 여행’

등록 : 2021-04-08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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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연출가 6명 선정 뒤 9개월 동안

긴 호흡으로 작품 준비 돕는 프로그램

동시대 화두 ‘장애와 예술’ 연극화 지원


오는 12월의 ‘쇼케이스’ 발표할 때까지

특강·리서치·워크숍 등 준비과정 좇아

연극 탄생 과정의 ‘땀과 노력’ 소개 계획

지난 1일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 내 백성희장민호극장 로비에서 열린 ‘창작공감’ 연출 부문 오리엔테이션 현장. 국립극단은 이 새로운 작품개발 사업을 통해 대상자로선정된


연극은 ‘희곡’과 ‘배우’가 ‘관객’을 만나는 예술이다. 관객은 대부분 무대라는 제한된 공간 앞에서 1시간3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연극을 접하지만, 그 연극을 통해 얻는 감동의 깊이는 제각각 다르다. 왜 그럴까? 한 연극이 무대 위에서 진행되는 시간은 같더라도, 그 연극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극작가와 연출가, 그리고 배우가 쏟아부은 노력의 ‘시간과 깊이’가 저마다 다른 점도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한겨레 <서울&>은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 전에 투여되는 그 노력의 ‘시간과 깊이’를 살펴보는 새 기획을 진행한다. 국립극단이 지난 3월24일 작가 3명과 연출가 3명을 선정·발표한 ‘창작공감’ 프로그램의 진행을 좇아가보는 게 그것이다. ‘창작공감’은 국립극단이 처음 시도하는 맞춤형 작품 개발 사업이다. 이 사업은 선정된 작가와 연출가들에게 4월부터 12월까지 약 9개월 동안 활동비를 비롯해 특강·리서치·워크숍·자문 등 창작 전과정에 걸쳐 필요한 여러 활동을 맞춤 지원한다. 이를 통해 작품에 들어가는 노력의 ‘시간과 깊이’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서울&>은 이러한 ‘공연 전의 시간들’을, 선정 연출가들이 쇼케이스를 진행하는 오는 12월까지 월 1회 전할 예정이다. 편집자

“기존에 극단 ‘코끼리들이 웃는다’에서 시각장애 등을 다룬 작품을 만들어왔지만, 한 번도 예상했던 대로 작업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기존에 짧은 시간에 극을 준비해오는 것에 익숙해 있었는데, 이번에 한번 긴 시간 동안 준비해보자는 의미에서 ‘창작공감’ 프로그램에 지원했습니다.”

지난 1일 용산구 서계동에 있는 국립극단에서 진행된 창작공감 연출 부문 오리엔테이션 현장. 국립극단의 이 새로운 작품개발 사업에 선정된 이진엽 연출가는 자신의 참여 동기를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진엽 연출가와 함께 선정된 김미란·강보름 연출가도 이날 창작공감에 참여한 소감을 밝혔다. 이 세 연출가를 묶는 키워드는 ‘장애와 예술’이다. ‘장애와 예술’은 올해 창작공감 연출 부문에서 정한 공통주제이기도 하다.

강보름

김미란

이진엽 연출가를 국립극단 스태프 등이 오는 12월까지 지원해 극의 완성도를 높여갈 예정이다.

이 공통주제는 국립극단이 창작공감 사업을 진행하기에 앞서 연극 현장 관계자들과 많은 대화를 진행한 뒤 도출해낸 것이다. 국립극단은 연극계 관계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연극이 담아야 할 ‘동시대의 화두’로 장애와 예술과 함께 ‘기후변화와 예술’ ‘과학기술과 예술’ 등 세 가지를 선정했다. 국립극단은 올해를 포함해 앞으로 3년 동안 이 세 화두를 창작공감 연출 부문의 주제로 삼을 예정이다. 이에 따라 올해는 그 첫 번째 주제인 ‘장애와 예술’을 잘 소화해낼 수 있는 연출가들을 선발했다.

이진엽 연출가는 2016년 <몸의 윤리> 등 작품에서 시각장애 문제 등을 다뤄왔다. 또 김미란 연출가는 2020년 공연된 연극 <영지>에서 수화 노래를 극에 넣으려고 시도하기도 했으며, 강보름 연출가는 2017년부터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관심을 확장하며 청년, 여성 노동, 이주민, 장애에 관한 창작 공연을 만들어왔다.

이날 국립극단 내 ‘백성희장민호극장’ 로비에서 진행된 오리엔테이션은 이 세 연출가와 함께 김광보 예술감독 등 20여 명이 참여해 북적였다. 모두 세 명의 연출가가 긴 호흡으로 작품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함께 참석한 ‘관계자’들이다.

창작공감 연출 부문 진행에 참여하고 있는 전강희 운영위원(드라마투르그)은 “각 예술가가 장애와 예술에 대해 얼마나 오랫동안 고민하고 있는가, 동시에 자신이 기존에 하던 것과 다른 예술적 도전이 있는가를 중심으로 선정했다”며 “국립극단은 선정된 연출가들의 계획에 동참해 올 한 해 동안 장애 연극들을 통해 동시대적인 사유를 어디까지 넓힐 수 있는지를 실험해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조유림 작품개발 프로듀서 등 작품개발팀 스태프는 세 연출가가 작품개발을 하는데 필요한 특강 등을 챙기면서, 국립극단 시즌 단원들이 세 연출가의 공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일도 담당하게 된다. 올해 12월 쇼케이스까지 마친 작품은 공연기획팀으로 이관돼 내년 국립극단 정식 공연으로 제작된다.

오리엔테이션 현장에 참석한 이연경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기반팀장은 “주한영 국문화원 등과 함께 영국의 ‘장애와 예술’ 사례를 제공하는 등 창작자들이 작품개발 과정에 필요한 정보나 자원을 어려움 없이 습득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리엔테이션에서는 또 창작공감의 이러한 작품개발 과정을 사진·동영상·활자 등으로 담아낼 김신중 사진가 등 기록 활동 참여자들도 참석했다.

김광보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일반 관객도 최종 결과물인 공연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과정을 겪는지 궁금할 것”이라며 “국립극단과 현장의 작업자들이 터놓고 만날 수 있는 자리인 창작공감을 통해 시대와 호흡하는 신선한 작품들이 국립극단 무대에서 탄생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창작공감 작가 부문에 선정된 김도영·배해률·신해연 작가도 9일 국립극단에서 열리는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오는 12월까지 이어지는 창작 여행을 시작한다. 김도영 작가는 2020년 <왕서개 이야기>로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희곡상을 받았으며, 배해률 작가는 2019년 <7번국도>로 사회적 참사에서의 ‘피해자다움’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또 신해연 작가는 2020년 <악어 시> <체액> 등을 통해 인간 소외에 대한 독창적 시각을 보여줬다.

창작공감 작가 부문에 참여한 전영지 운영위원은 “세 극작가가 구상 중인 신작들은 주제적인 측면에서는 기후위기, 가상현실, 인공지능 등 현재가 되어가는 미래에 대한 다채로운 고민을 선보이고 있다”며 “주제에 다가서는 태도에서는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에서 한걸음 비켜나 있다는 공통점을 보인다”고 세사람을 선정한 이유를 밝혔다.

국립극단이 추진하는 이 새로운 작품개발방식이 오는 12월 어떤 성과물을 만들어낼지 기대된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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