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우리’

중국 신장의 신단수, 신채호의 위대함 떠올리게 해

길 위에서 만난 ‘우리’ ②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 ‘톈산산맥’에서 만난 천지와 신단수

등록 : 2021-01-21 16:18 수정 : 2021-04-15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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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독립 운동으로 긴장된 우루무치

톈산에 있는 또다른 천지에 도착하니

키 큰 가문비나무들의 이름이 ‘신단수’

‘단군신화와 어떤 관계?’ 궁금증 일어


단군을 샤머니즘 관점에서 본 신채호

‘소도’와 흉노왕 ‘휴도’의 관련성도 짚어

모두 ‘하늘 제사’와 관련된 용어 지적


21세기 톈산에서 신채호 정신 만난 듯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성도 우루무치 시내에서 북동쪽으로 1시간 정도 자동차를 타고 달려서 도착한 ‘톈산톈츠’(천산천지)

2017년 여름 찌는 듯한 더위에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성도 우루무치에 도착했다. 위구르족을 만난다. 지난겨울 터키인을 만난 이후 6개월 만에 같은 튀르크계가 사는 위구르 지역을 찾았다. 신장은 20세기 전반기에 중국에서 분리독립하여 동투르키스탄공화국을 선포하기도 했다. 동투르키스탄공화국의 임시정부는 터키에 있다. 깃발도 터기 국기와 동일한데 바탕색만 파란색일 뿐이다.

우루무치에서 이틀을 묵고 투르판으로, 그리고 하미를 거쳐 간쑤성의 둔황까지 일정을 잡았다.

우루무치역에서부터 긴장이 감돌았다. 중국 공안들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주인 없는 여행가방이 보이면 공안이 즉시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폭발물 여부를 검사할 정도였다. 우루무치는 어디를 가도 가방 검문이 필수였다. 신장의 분리독립 활동을 중국이 얼마나 민감하게 느끼는지 피부로 다가왔다.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성도 우루무치 시내

그러나 필자가 신장위구르자치구를 방문하는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무엇보다 ‘백두산 천지’와 이름이 같은 ‘톈산톈츠’(천산천지)라는 호수를 보고 싶었다. 또한 톈산(천산)산맥 보거다산(박격달산)은 과거 이름이 백산(白山)이며 눈 덮인 설산이다. 어떤 이는 이곳이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온 태백산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주장의 배경이 된 현장을 직접 살펴보고 싶었다.

우루무치에서 북동쪽으로 1시간 정도 자동차를 타고 달리면 톈산산맥의 톈산톈츠 입구에 다다른다. 해발고도가 높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견딜 만하다. 우루무치의 시장인 ‘바자르’를 방문하고 톈산톈츠 1일 투어에 합류했다. 대부분이 중국인 관광객이고 가이드조차 중국인이었다.

톈산톈츠에 도착하니 커다란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호수 주변에 카자흐족이 텐트형 주거지 유르트에서 살고 있었다. 제법 날씨가 쌀쌀해서 카자흐족 마을에 들어가 양꼬치와 말젖 술인 마유주를 먹으며 몸을 녹였다. 톈산톈츠 주변에는 높이가 수십m에 달하는 나무들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중국 국경 내에 있어 빨간색 한자가 많이 눈에 띄고 위구르어 글자도 보인다. 풍경만큼은 로키산맥이나 북유럽의 어딘가에 온 느낌이었다. 큰 나무들을 보고 감탄하며 서 있는 필자에게, 중국인 가이드가 말했다.

“이 나무들이 바로 ‘선탄수’(神壇樹·신단수)입니다.”

갑자기 정신이 바짝 들었다. ‘신단수’라니? 그래서 가이드가 말한 ‘선탄수’의 글자를 확인해보았다.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나무라는 뜻으로 신단수라고 말한 겁니까?” 가이드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서 “도대체 어떤 나무가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신단수입니까?” “여기 있는 모든 나무가 다 신단수입니다.”

호수를 둘러싼 산에 빽빽이 자라난 가문비나무의 이름은 한국인에게 익숙한 ‘신단수’(선탄수)였다.

키가 큰 나무들은 가문비나무였다. 한국인에게 신단수는 바로 단군신화(사화)를 떠올리게 한다. 환웅이 하늘에서 풍백·우사·운사를 거느리고 300명의 무리를 이끌고 땅으로 내려온 곳이 바로 ‘신단수’ 아래였다고 삼국유사에 기록돼 있다. 그래서 혹시 단군 이야기와 관련된 것을 아는지 확인하기 위해 물었다.

“그럼 왜 이걸 신단수라고 부르죠?”

이때 함께 투어를 하던 중국인 여성 4명(이들은 난징에서 온 친구들이다)이 갑자기 끼어들며 말했다 “왜 신단수냐니? 신단수니까 신단수지, 그럼 뭐라고 불러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태백산 천지에 있다는 신단수’와 ‘톈산톈츠에 있는 신단수’에 대한 고민으로 계속 생각하며 걷기만 했다. 옆에 있는 다른 한국인은 “그냥 신단수를 보통명사로 사용한 것이고, 단군과는 관련 없이 말한 것일 거”라고 해석했다.

우루무치 인근 벽화에 신단수라고 할 만한 벽화가 있는데 그걸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톈산톈츠 둘레길에 ‘성수제단’이라는 글자가 쓰인 돌이 있다. 사진 찍는 곳이다. 서왕모(西王母) 이야기를 적어 놓은 듯하다. 중국 신화에 나오는 여신 서왕모가 주나라 무왕과 만나 놀던 호수는 기록에 따르면 쿤룬(곤륜)산맥이다. 서쪽의 여신이라 이곳 서북지역인 톈산톈츠에 서왕모 동상과 기념물들을 만들어 놓은 듯하다. 쿤룬산의 서왕모도 톈산톈츠에 와 있고 태백산의 신단수도 톈산톈츠에서 듣는다. 뒤죽박죽이다.

그래서 여전히 의문은 가시지 않았다. 어쨌든 신단수는 성스러운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신채호는 <조선상고문화사>에서 ‘수두’라는 우리말 고어로 이를 설명한다. ‘수두’란 삼한시대 ‘소도’(蘇塗)라는 한자의 우리말 발음이다. 소도는 종교적 성지로 범죄자조차 이 소도에 들어가면 용서해준다고 배웠다. 베이징어 발음은 ‘쑤투’(sutu)다. 수두라는 단어가 지금의 우리에게는 낯설어 보이지만, 신채호에 따르면 흉노의 왕인 휴도왕의 휴도(休屠)도 수두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 신채호는 흉노의 휴도왕을 곧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기능을 주관하는 왕으로 수두와 같은 것이라 했다.

휴도왕의 아들인 김일제라는 인물이 한국에 알려져 있다. 한나라에서 투후라는 벼슬을 하다 그 후손이 망명하게 되는데, 그 김일제의 후손이 신라 왕족 경주 김씨의 선조라는 내용이 신라 문무왕 비문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휴도의 베이징어 발음은 ‘슈투’(xiutu)이다. 튀르크어 계통인 우즈베크어에서 후더(xudo)는 신(神)을 뜻하는 단어였다. 몽골어나 터키어에서 하늘이나 신을 뜻하는 단어는 텡그리(tengri)나 텡글(tengl)이지만, 우즈베크어에서는 하늘과 신을 뜻하는 단어는 ‘탄그리’와 ‘후더’가 함께 남아 있었다.

‘수두’와 ‘소도’ ‘쑤투’ ‘휴도’ ‘슈투’ ‘후더’ 등이 한국어·중국어·튀르크어 계통에서 신이나 제사와 관련한 뜻으로 쓰이는 셈이다.

신채호는 단군과 관련해 샤머니즘 관점으로 접근했다. 북만주나 시베리아에 거주하는 예벤크족의 언어에서 샤먼은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샤먼인 단군에게는 하늘에 제사 지내는 신단수가 핵심적 개념의 하나일 것이다.

20세기 초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점령시기에 신채호는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폭넓게 사료를 읽고 휴도와 소도, 수두를 연결했다. 그리고 단군으로 시작하는 우리의 상고사를 체계화했다. 대학자의 모습에 탄복을 금할 수 없었다.

21세기에 나는 신장위구르에서 그 신단수를 중국인들로부터 들었고, 우즈베크어와 예벤키어에서 관련된 어휘들을 발견한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게 하는 톈산톈츠였다.

중국 신장/글·사진 장운 자발적 ‘우리 흔적’ 답사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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