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들이 품은 옛이야기, 겨울 찬 바람을 막아주다

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⑮ 동대문구 오래된 나무와 숲

등록 : 2021-01-07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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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추위에 나뭇잎 모두 떨어져도

햇살 담은 나무 소리 마음 따뜻하게 해

아관파천, 을미사변, 마을 부군당까지

나무들 전해주는 옛이야기 들리는 듯

동대문구 답십리1동 장령당 공원 안에 있는 355년 된 느티나무.

옛이야기가 따듯해지는 겨울이다. 옛날이야기가 전해지는 나무와 숲을 찾아 나섰다. 순헌황귀비 엄씨가 묻힌 영휘원의 산사나무, 홍릉숲 겨울 숲길에서 만난 옛 홍릉 터, 전농동 부군당을 지키는 물푸레나무, 답십리 부군당을 지키는 느티나무, 옛 선농단과 전농동의 500년 넘은 향나무를 돌아보고 배봉산에 올랐다. 그곳에는 한국 특산종인 히어리나무가 있다. 배봉산 정상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상쾌하고 통쾌하다.


영휘원을 지키는 산사나무


1896년 2월11일 새벽을 틈타 지금의 중구 정동에 있었던 러시아 공사관으로 향하는 이들이 있었다. 제국주의 열강이 조선을 침탈하던 역사의 격동기, 1895년 명성황후를 살해한 일본과 친일파의 득세에 고종은 왕자(순종)와 함께 러시아 공사관으로 파천했다. 이른바 아관파천, 조선의 왕과 왕자가 조선 땅에서 새벽어둠에 숨어 숨죽이며 다른 나라의 공사관으로 몸을 피해야 했던 그 마음은 어땠을까? 그 파천의 새벽길을 도운 이가 순헌황귀비 엄씨였다.

‘엄비’로 더 잘 알려진 순헌황귀비 엄씨는 명성황후를 모시는 상궁이었다. 명성황후가 세상을 떠난 뒤 1897년에 영친왕(의민 황태자)을 낳았고 황귀비로 책봉된 인물이다. 순헌황귀비 엄씨의 이야기는 충북 청주에도 전해진다. 일곱 부처가 나타나 집을 지어달라는 꿈을 꾼 그는 1901년 꿈에서 본 곳을 찾아 청주의 무심천 일대를 조사하도록 했고, 묻혔던 불상들을 찾았다. 불상을 모시기 위해 지은 절이 용화사다. 용화사 삼불전에 일곱 불상이 있다.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국운이 기울던 환란의 시기에 나라를 걱정하던 그의 염원이 미륵불을 다시 일으킨 건 아닐까?

영휘원 산사나무.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고사해 2015년 지정해제 됐다.

순헌황귀비 엄씨가 묻힌 곳이 동대문구 청량리동에 있는 영휘원이다. 오전 햇살 가득한 영휘원은 한파의 날씨에도 아늑했다. 느티나무, 때죽나무, 자귀나무, 고욤나무, 두충나무, 잣나무, 소나무가 어우러진 그곳에 유달리 눈에 띄는 나무가 있었으니, 150년 넘은 산사나무다. ‘영휘원 산사나무’로 알려진 이 나무는 2009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당시 높이 9m, 가슴 높이 둘레 2m 정도였다. 2012년 태풍 볼라벤에 결정적인 피해를 보고 고사했다. 2015년에 천연기념물에서 지정 해제됐다. 지금은 줄기가 부러진 채 그대로 서 있다.

고사한 ‘영휘원 산사나무’의 자식 나무가 고사목 옆에서 자라고 있다. 영휘원 관리자에 따르면 누가 일부러 심은 것도 아닌데 그 자리에서 저절로 자라났다고 한다. 산사나무 고사목과 자식 나무 뒤로 순헌황귀비 엄씨의 원침(봉분)이 보인다. 두 나무가 고종 황제를 도와 국난을 극복하려 했고, 꿈에서 만난 미륵불을 세워 국운을 바로잡으려 했던 순헌황귀비 엄씨의 뜻을 기리는 것 같다.


명성황후의 흔적을 찾아 걷는 겨울나무 숲길

영휘원에서 국립산림과학원(홍릉숲)으로 가는 길에 세종대왕 기념관이 있다. 세종대왕과 왕비인 소헌왕후의 능은 처음에는 지금의 강남구 내곡동에 조성됐는데, 1469년에 지금의 자리인 경기도 여주로 옮겼다. 당시 석물을 운반하기 어려워 주변 땅에 묻었는데, 1970년대에 발굴했다. 그 석물들을 세종대왕 기념관 마당에 전시했다. 세종 영릉 신도비와 조선시대 청계천 수위를 재기 위해 수표교 서쪽에 세웠던 수표도 볼 수 있다.

세종대왕 기념관 앞 도로를 건너면 국립산림과학원이다. 이곳은 일제에 의해 살해된 명성황후가 묻힌 홍릉이 있던 곳이다. 당시 능 자리가 풍수지리상 좋지 않다고 하여 1919년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지금의 홍릉 자리에 고종 황제와 합장했다. 1922년 옛 홍릉 자리에 임업시험장이 들어서면서 수목원이 조성됐다. 지금은 국립산림과학원이다.

정문으로 들어서서 바로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제2수목원 침엽수원이다. 솔송나무, 설악눈주목, 주목, 메타세쿼이아, 낙우송, 참개비자나무, 서양측백나무 등이 어우러진 숲에 데크길이 났다. 거대한 나무 아래 작은 나무들이 함께 자란다. 한겨울 상록수의 푸른 기운이 상쾌하다. 짧아서 아쉬운 그 길을 벗어나 벚나무 쉼터 앞 주차장 한쪽 빈 가지 둥그렇게 퍼진 상수리나무를 보고 홍릉 터를 찾아가는 길, ‘크리스마스트리’로 이름난 구상나무를 보며 아쉬움을 달랜다. 푸른 나무 사이 은빛으로 반짝이는 나무 한 그루, 은수원사시나무가 눈길을 끈다.

옛 홍릉 터로 가는 길에 어린 풍산가문비 나무를 보았다. 글라우카가문비, 향나무, 종비나무, 섬잣나무, 구상나무, 화백, 잣나무, 스트로브잣나무 등이 어우러진 제5수목원 침엽수원 숲을 지나면 황후의 능을 찾아가던 고종 황제가 목을 축이던 우물인 어정이 나온다. 어정을 지나 계단을 오른다. 홍릉이 있던 자리를 알리는 안내판과 홍릉 터가 그곳에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홍매.

부군당을 지키는 나무들

동대문구 제기동 선농단 역사공원에 500년 넘은 향나무가 있다. 197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왕이 직접 제사를 지내며 풍년을 기원했던 옛 선농단 터를 지키는 나무다. 제사가 끝난 뒤 마을 사람들과 술과 고기를 나누어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당시 선농단에서 나누어 먹은 고깃국을 ‘선농탕’이라 했고, ‘선농탕’이 설렁탕의 어원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500년 넘은 향나무는 동대문구 전농동 서울시립대 앞 교차로 부근 마을 마당에도 있다. 왕이 직접 농사짓던 땅(적전, 전농이라고도 함)에서 유래된 이름이 전농동이라고 하니, 이 나무가 왕이 농사짓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것은 아닐까?

향나무가 있는 곳에서 직선거리 530m 정도 되는 곳에 300년 가까이 된 물푸레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전농동 부군당을 지키는 나무다. 전농동 부군당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을 모시는 신당이다. 부군당 건물은 조선시대 세종 임금 때에 처음 지어졌다 한다. 여러 차례 중수했으며 지금 건물은 1999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조선 개국공신 조반을 모시며, 마을 주민들이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부군당 건물 앞 물푸레나무를 중심으로 주변에 백송과 홍단풍 등이 어울려 자란다.

동대문구 답십리에도 부군당과 부군당을 지키는 오래된 나무가 있다. 사가정로2길 답십리지구대에서 답십리초등학교 쪽으로 가다 보면 장령당 공원이 나오는데, 그곳에 답십리 부군당과 355년 된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예로부터 이 마을에서 ‘답십리 장령당 도당 문화제’를 열었다. 그 유래가 답십리 장령당 도당 유래비에 새겨졌다. 유래비에 따르면 718년 무렵부터 답십리 주민들이 매년 가을걷이를 끝내고 음력 시월 초에 이틀 동안 큰 제사를 지냈다. 궁안장군, 명마장군, 용마장군과 마을을 지키는 도당 할아버지와 도당 할머니 등을 모셨다. 마을의 풍요와 사람들의 안녕을 빌던 이곳을 지키는 느티나무가 한겨울에도 우뚝 섰다.

늦은 오후였지만 햇볕이 아까워 마지막으로 배봉산을 돌아보기로 했다. 시내버스를 타고 전동초등학교 정류장에서 내려 배봉산으로 향했다. 관리사무소에서 정상 전망대까지 약 400m, 오르막길이 끝나고 사방으로 전망이 트인 정상이 나왔다. 망우산, 용문산, 아차산, 대모산으로 이어지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반대편에는 청계산, 관악산, 남산, 안산, 인왕산, 백악산(북악산), 북한산, 도봉산 줄기가 펼쳐진다. 시원하고 통쾌한 전망을 즐긴 뒤 히어리 쉼터로 향했다. 겨울나무가 얼기설기 얽힌 숲길을 걸어 도착한 그곳에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한국 특산종인 히어리나무가 있다. 그곳에서 오래된 나무와 겨울 숲을 찾아 나선 하루를 마감했다.

배봉산 히어리 쉼터에 있는 히어리나무. 히어리나무는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한국 특산종이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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