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곳

공원 속 전통정자, 마음의 쉼표 찍는 곳

한옥 폐자재 활용한 종로구 와룡공원 전통정자

등록 : 2020-11-19 14:53 수정 : 2020-12-04 17:34

크게 작게

코로나19에도 어김없이 이 계절은 무르익고, 마스크 속 뿜어내는 뜨거운 입김과 달리 마음은 한없이 서늘하다. 바야흐로 11월, 한 해가 다시금 저무는 때이다.

엄마가 말씀하시길 인생의 속도는 나이와 비례한다고. 엄마 앞에선 영원히 어린아이 모습을 한 내가 답한다. “내 인생은 올해 시속 30킬로로 흘렀어. 지난해보다, 지지난해보다 조금 더 빠르게.” 그렇게 한양도성 성곽길을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도착한 이곳. 와룡공원 제일 꼭대기에 자리한 고풍스러운 모습의 전통정자다.

이곳 정자에 앉아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은 아파트도, 옹기종기 모인 붉은 벽돌집도 손안에 쉽게 잡힐 듯하다. 픽셀처럼 작은 눈앞의 모든 것들이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닐 일들일 수 있다. 그것에 마음 졸이고 전전긍긍하며 살지 말라는 깨달음을 준다.

멀리 있는 것들을 눈에 충분히 담고 난 뒤에야 가까운 데로 시선이 향한다. 그제야 하하 호호 배드민턴 하는 단란한 가족이, 연로한 어머니를 부축하며 발걸음을 맞춰 느린 걸음을 옮기는 아주머니가, 홀로 벤치에 앉아 음악에 젖어 풍경에 젖어 계신 할아버지가 보인다. 찰나의 여유가 깃들자 내 모든 쓸쓸함도, 어지럽던 마음도 그 영원 같은 일상 속에선 전부 까닭 모를 것들이 된다. 가슴을 저릿하게 했던 찬 공기는 어느덧 시원한 바람이, 이 넓은 세상에 혼자인 것 같던 마음은 지난한 삶도 얼마든지 잘 헤쳐갈 수 있다는 용기가 되어 돌아오고 마침내 깨닫는다. 이것을 위해 여기 정자가 있는 거구나 하고.

종로구는 2018년 와룡공원 전통정자를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혜화동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과 궁정동 무궁화동산에 전통건축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녹여낸 정자 두 곳을 지었다. 올해는 연말까지 청진공원, 평창동 주민센터 뒤 쉼터, 도렴공원 등 세 군데에 전통정자를 조성한다.

와룡공원 전통정자는 종로구가 전국 최초로 세운 한옥자재은행 시스템을 도입해 특별함을 더한다. 개발 또는 건물 신축으로 불가피하게 철거되는 한옥 부재를 40%가량 사용해 지었기 때문이다. 한옥 폐자재를 활용한 종로 곳곳의 전통정자는 오가는 시민이 휴식을 취하고 인근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삶의 여유를 되찾는 곳이 되고 있다.

쉼표가 필요한 건 문장만이 아니다. 두 다리뿐 아니라 때론 마음에도 쉬어가는 순간이 절실하다. 기차나 비행기를 타고 지금 있는 곳에서 멀리 벗어나 위로를 받는 것도 근사하겠지만 가끔은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익숙한 풍경을 지긋이 바라보길 추천한다. 가난한 마음에 스며든 온기가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희망을 주고, 그 기억으로 다시 또 몇 날을 살 테니.


이혜민 종로구청 홍보전산과 주무관, 사진 종로구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