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고향에서 ‘자기파괴’ 통한 혁신을 고민하다

손관승의 공감재생 골목여행 ⑳ 독특한 ‘섬 문화’ 지닌 여의도

등록 : 2020-09-24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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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는 여의도의 ‘섹시한 문화’와 관련

“베를린이 가난하지만 섹시”한 것처럼

파격 스타일과 도전정신 갖추었던 곳


지금은 그 역동성 잃어버린 듯하지만

코로나 이후 르네상스 진원지 되길…

책상에서 밤낮없는 중노동을 하다가 관능적인 날씨의 유혹을 못 이겨 여의도행 지하철을 탔다.


여의도를 흔히 미국 뉴욕의 맨해튼에 비유한다. 증권거래소와 금융감독원을 비롯해 크고 작은 금융기관들이 자리 잡고 있고, 방송사가 있으며, 아름다운 강물이 흐르고 두 개의 매력적인 공원이 있는 것까지 비슷하다. 맨해튼이 센트럴파크와 브라이언트공원을 자랑하는 것처럼 여의도에도 여의도공원과 앙카라공원이 있다.

여의도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섬사람’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여의도는 그곳 특유의 문화와 정서, 분위기 같은 것이 있다. 그 ‘섬 문화’와 30년 인연을 맺었던 나는 두 개의 공원을 중심으로 여의도를 다시 만나기로 했다. 이 섬에는 지하철역이 네 곳이나 되는데, 그 가운데 국회의사당역에서 내려 4번 출구로 나왔다. 국회를 등지고 직진하면 넓은 여의도공원을 만나게 되지만 먼저 우측 <케이비에스>(KBS) 쪽으로 향한다. 정문 앞에 열혈팬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대중음악 방송이 있는 날이다. 방송 시간이 임박하면 할리스커피를 비롯한 정문 앞의 커피숍은 매니저들의 ‘만남의 광장’으로 변한다.

KBS 본관

여의도는 한류의 고향이다. 한때 이곳에는 지상파 3사가 몰려 있었고, 이병훈 감독의 <대장금>, ‘욘사마’의 <겨울연가>를 비롯한 수많은 한류 드라마가 제작되었다. 일부에서는 한류를 ‘운칠복삼’(運七福三)의 결과라고 평가절하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한류는 여의도의 섹시한 문화와 관련이 높다. 오해하지 말자. 여기서 섹시함이란 단순히 육감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베를린은 가난하지만 섹시하다”고 했던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전 독일 베를린 시장의 표현처럼,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색다르게 표현하며 자기만의 고유한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것을 뜻한다. 뇌가 섹시하고, 스타일이 파격적이며, 도전정신이 넘치던 곳이 바로 전성기 시절의 여의도였다.

동영상 콘텐츠는 섹시하지 않으면 외면받는다. 구태의연한 전개 방식, 진부한 내용이면 단 1분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젓가락 문화와 가족 의식이라는 공통의 동방 유전자를 토대로 김치로 대변되는 한국적 감수성에 버무려 현대인들이 좋아하는 성공 스토리로 표현해낸 결과물이 한류 드라마였다. 단순한 3색이 지배하던 사극 화면을 과감히 40가지 색으로 바꾼 것이나 느려터진 대사를 속도감 있는 현대적 말투로 바꿨다. 이처럼 전통적 소재를 과감한 자기파괴 과정을 거쳐서 감각적인 영상 언어로 갈아입혔기에 한류 사극은 세상에 이름을 떨칠 수 있었다. 자기파괴야말로 한류 태동의 일등 공신이며, 여의도가 자랑하던 섹시한 섬 문화의 요체라 내가 말하는 것이다. 아쉽게도 여의도는 그 주도권을 강남에 빼앗기고 말았다.

KBS를 지나 여의도공원에 도착했다. 때마침 점심시간이어서 도시락이나 샌드위치를 지참한 사람들, 산책 나온 근처 직장인들로 붐볐다. 1969년 여의도에 국회의사당을 건설하면서 2년 뒤 함께 조성된 것이 ‘5·16광장’이다. 집회나 자전거 타는 장소로 애용되던 아스팔트 광장이 오늘날의 녹색 공간으로 바뀐 것은 초대 민선 조순 서울시장 때. 마침내 1999년 여의도공원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공원 외곽을 둘러싸고 조성된 3.9㎞의 산책로와 2.4㎞의 자전거도로가 인기다.

여의도공원으로 향하는 직장인

공원 중간에 보이는 큼직한 프로펠러 비행기는 해방 직후인 1945년 8월18일 새벽 광복군 대원 4명이 미국 전략정보국(OSS) 대원과 함께 여의도광장에 착륙했던 C-47이다. 같은 해 11월23일에는 김구 선생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 15명이 이 비행기를 타고 김포비행장으로 입국하였으니 현대사의 극적인 순간을 함께한 증인이다. 앞서 1916년, 일본군이 여의도에 활주로와 격납고를 건설한 뒤 경성 제2 비행장으로 활용하고, 해방 뒤에는 민간공항으로 이용되기도 했던 장소다. 이처럼 여의도는 태생적으로 해외와 가까운 인연을 맺어왔다.

C-45 비행기와 여의도광장

여의도공원 산책을 끝내고 광장 건너 전경련 빌딩 쪽으로 건너갔다. 51층으로 재건축한 뒤 새로운 랜드마크로 등장했다. 1979년 원래 건물이 준공됐을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참석하기로 되었지만 직전에 발생한 10·26사태로 무산됐고, ‘창조, 협동, 번영’이라는 박 전 대통령의 친필 휘호가 새겨진 표석만이 빌딩 뒤편에 광장아파트를 배경으로 세워져 있을 뿐이다. 수많은 재건축 붐에도 불구하고 여의도에는 옛 모습을 고집하는 아파트가 많다. 삼부, 수정, 미성, 공작, 서울아파트 등 이름도 정겹다. 갈수록 인구는 줄어들지만, 이 섬에는 여의도고등학교를 비롯한 초·중·고등학교가 다 있다.

걷다 보니 여의도역을 거쳐 어느새 샛강역이다. 3번 출구에서 나오면 앙카라공원이 있는데, 언젠가부터 ‘자매공원’이라는 푯말로 바뀌어 있었다. 공원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건물은 1977년에 앙카라시가 기증한 터키의 전통 포도원 주택이다. 공원 앞으로는 KBS 별관, 옆으로는 지식문화 재충전 커뮤니티 공공기관인 ‘영등포50플러스센터’가 있어서 지식과 의미, 그리고 재미의 갈증을 동시에 채울 수 있는 여의도의 보석 같은 공간이다.

앙카라공원 안의 터키 전통 포도원 주택

반나절 걸었으니 이제 육체의 허기를 채울 시간, 삭막한 것 같지만 여의도에는 의외로 맛집이 많다. 화교가 직영하는 중국식당 신동양과 서궁, 진주 콩국수, 추어탕과 갈비로 유명한 구마산, 차돌박이 전문점 고려정, 만둣집 산하, 신송 대구탕 등이 유명하지만, 내 발길은 오륜빌딩 1층에 있는 생선구이 전문점 다미로 향한다. 30년 이상 나와 인연을 맺어온 소박한 곳이다. 때마침 전어구이 계절이어서 해마다 이때쯤이면 가을에 대한 의식을 치르듯 방문하곤 한다.

흑사병의 암울함을 걷어낸 뒤 중세는 끝났고, 보티첼리로 대표되는 화려하고도 섹시한 예술이 펼쳐졌다. 코로나19가 지나고 나면 이 땅에도 새로운 르네상스가 열릴 것이다. 그 전에 할 일이란 진부함과 구태의연한 방식을 버리는 것, 즉 과감한 자기혁신이다. 그렇다. 살아남으려면 섹시해야 한다.

다미의 전어구이

글·사진 손관승 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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