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1970년대 라디오 문화, 집콕 생활에 아련한 향수를 보태다

서울생활사박물관, ‘1978, 우리 가족의 라디오’전 개최…당시 서울 한 가족 통해 라디오 문화 재연

등록 : 2020-09-10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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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방송과 드라마 등 당시 방송 듣고

최초 국산 라디오, 청취자 사연집 보며

‘라디오 시대 서울의 소리’ 되돌아볼 기회

누리집 온라인 전시관에서 무료 운영중

코로나19 사태로 ’집콕 생활’이 이어지면서 라디오가 재조명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직접 대면을 통한 대화가 줄어든 대신, 라디오를 들으며 세상과 소통하는 이들이 늘었다고 한다. 이에 서울역사박물관 분관인 서울생활사박물관은 1970년대 라디오 문화를 되돌아볼 수 있는 ‘1978, 우리 가족의 라디오’ 기획전을 오는 11월15일까지 연다. 이번 기획전은 1970년대까지의 우리나라 라디오 문화를 살펴볼 기회다.

라디오는 1927년 경성방송국에서 처음 방송을 탄 이후 1970년대 티브이(TV)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TV보다 인기가 떨어질 때까지 교통정보와 드라마, 음악 등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 시민들의 가장 ‘친숙한 벗’이었다. 배현숙 서울역사박물관 관장은 “그 시절 라디오는 세상 소식을 듣는 통로이자 가족이 즐기는 대중문화 매체였다”며 “코로나19로 소통이 줄어든 현대인에게 라디오를 다시금 의미 있게 소개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라디오 사연 엽서


전시 방식도 독특하다. 1978년 미아동에 살았던 가상의 영희네 가족을 통해 1970년대 일상과 라디오 문화를 생생하게 조명해 눈길을 끈다. 택시기사 아빠의 차 안 라디오, 안방에 있는 엄마의 라디오, 오빠가 듣는 휴대용 라디오, 영희 방의 카세트 라디오를 통해서다. 가설 주택 안에서 당시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진행했던 유명 디제이(DJ) 황인용의 목소리를 통해 영희네 가족의 사연을 들을 수 있도록 연출해 재미를 더했다.

영희 가족과 미아동 주택

구체적으로 택시기사인 아빠의 택시 내부를 그래픽과 영상으로 재현했으며, 아빠가 주로 듣던 교통방송 ‘명랑교차로’ 등을 통해 78년 사회상을 짚어볼 수 있다. 이때 흘러나오는 ‘명랑교차로’는 실제로 78년 12월30일 동아방송(TBC)에서 방송됐던 내용이다. 연말을 맞아 유명 진행자 뽀빠이 이상용의 진행에 따라 택시기사, 버스기사와 버스 안내양의 노래 대결이 펼쳐진다.

라디오가 처음 장착된 국산 차는 62년 생산된 ‘새나라’ 자동차였다. 그러나 라디오는 기본 사양이 아닌 선택 사양이었다. 자동차에 라디오가 기본 사양으로 달려 나온 것은 75년 ‘포니’부터였다. 70년대에는 차량이 증가하면서 교통방송 프로그램이 늘었다. 주로 아침 교통체증 시간대에 편성된 ‘오늘도 명랑하게’(KBS), ‘푸른 신호등’(MBC), ‘명랑교차로’(DBS), ‘가로수를 누비며’(TBC), ‘명랑하이웨이’(CBS) 등이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각 방송국에서는 버스와 택시 운전자에게 교통 통신원 자격을 수여했으며, 교통 통신원들은 시내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방송국에 전하는 역할을 했다. 또 방송국에서는 교통 통신원과 가족을 초대해 노래자랑이나 운동회 등 다양한 문화 행사를 열기도 했다.

동아방송 교통통 신원 표찰

영희 엄마 라디오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79년 1월1일 엄마의 안방, 동아방송에서는 라디오 드라마 인생극장 ‘창밖의 여자: 제1부 전시장에서의 첫 만남’ 편이 시작됐다. ‘창밖의 여자’는 후에 영화로 제작될 정도로 많은 인기를 얻은 프로그램이다. 특히 이 드라마의 주제곡은 가수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로, 당시 침체기에 빠져 있던 그가 이 곡으로 재기하게 된다.

갓 대학생이 된 오빠는 어학방송과 주한미군방송(AFKN), 고교야구 중계방송을 즐긴다. 프로야구 출범 전 인기를 끌던 고교야구를 통해 스포츠 방송의 변화에 대해 짚어본다.

당시 유명 DJ의 음반이 궁금하다면 영희의 방을 들여다보면 된다.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심야 DJ 음악방송과 사연 엽서 등을 통해 그때의 문화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한 예로 78년 11월23일 동아방송 ‘0시의 다이얼’의 주파수 변경 특집이 울려 퍼진다. ‘0시의 다이얼’은 동아방송의 심야 음악방송으로 국내 최초 라디오 DJ인 최동욱을 비롯해 박원웅, 이종환, 윤형주 등이 차례로 진행을 맡았다.

홍현도 서울생활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생생한 체험을 돕기 위해 가상의 영희네 가족을 등장시키고, 국내 최초의 국산 라디오인 ‘금성 A-501 라디오’와 60~70년대 라디오 편성표, 라디오 드라마 ‘전설 따라 삼천리’ 엘피(LP), ‘별이 빛나는 밤에 사연집’ 등 다양한 기록물을 준비했다”며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과 표정을 그려보면서 라디오 시대의 서울 소리를 듣는 기회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애초 이 전시는 박물관에서 선보일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현장 관람이 어렵게 돼 가상현실(VR) 온라인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www.museum.seoul.go.kr)를 통해 전시를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박물관 쪽은 시민의 안전한 전시 관람을 위해 향후 방역 조치 시행 추이에 따라 현장 운영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1964년 <주간방송>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사진 서울생활사박물관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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