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400년 살아도, 푸르름으로 사람을 위로한다

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3 안산, 백련산, 고은산, 인왕산의 숲과 나무

등록 : 2020-08-06 17:14

크게 작게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앞 미루나무는

독립지사 400명의 처형 지켜보았고

봉원사 앞에 선 450년 된 느티나무는

이끼 낀 밑동에서 자란 줄기 제멋대로

그래도 여전히 인간들을 껴안아준다


안산, 백련산, 고은산, 인왕산은 서대문구의 녹색 지붕이다. 그 산에 깃든 숲과 오래된 나무들이 사람들 몸과 마음을 씻어준다. 골목길 지붕 위로 솟은 고목이 집을 보호하는 수호신 같다. 힘차게 뻗은 나뭇가지를 위해 지붕에 구멍을 내고 난간에 홈을 팠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살고 나무는 푸른 생명력으로 사람들을 위로한다. 마을 뒷동산에 꾸민 숲속 놀이터에는 사람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사형장 앞 미루나무

봉원사 쪽 450년 된 느티나무.

안산 동쪽 자락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너른 마당 구석에 미루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 굵은 줄기 하늘로 뻗은 기세가 늠름하다. 예사롭지 않은 그 나무를 지나면 옛 사형장이다.

1908년부터 1987년 폐쇄될 때까지 경성감옥, 서대문감옥, 서대문형무소, 서울형무소, 서울교도소, 서울구치소로 이름을 바꾸었던 옛 서대문형무소의 사형장 앞에 미루나무 한 그루가 그렇게 서 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많은 항일 독립운동가가 서대문형무소에 갇혔다. 3·1 만세운동에 앞장섰던 유관순 열사가 수감됐던 방도 있다. 모진 고문에도 독립 의지는 더 시퍼렇게 살아나 감옥에서도 독립만세를 외쳤던 독립투사들이었다. 그런 독립애국지사 400여 명이 이곳 사형장에서 처형됐다. 사형장 앞 미루나무는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 했던 독립투사들의 마지막 소원, ‘조국의 광복’ 염원처럼 우뚝 서 있다. 이 나무는 1916년 전후에 심었다고 알려졌다.

사형장 안에는 1923년 전후에 심은 미루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2017년 봄부터 잎이 나지 않았고, 점점 말라 죽어갔다. 끝내 그해 8월15일 오전 9시께 쓰러졌다고 한다. 사형장 담장 안 모퉁이에 그 나무가 있던 자리를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두 그루 미루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품고 안산을 넘어 봉원사에 도착했다. 봉원사에서 마을로 내려서는 길목에 오래된 나무 네 그루가 있다. 그중 느티나무 세 그루는 봉원사가 이곳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부터 있었다. 다른 한 그루는 200년 정도 된 회화나무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사형장. 담장 밖에 미루나무가 보인다.

네 그루 고목 중 절에서 마을로 내려가는 길 오른쪽에 있는 450년 가까이 된 느티나무 앞에서 가장 많이 머물렀다. 비스듬히 누운 이끼 낀 거대한 줄기 밑동에서 네 갈래로 자란 굵은 줄기가 제멋대로 휘어져 감기며 자란 모습이 신비스럽다. 이 나무 주변에 두 그루의 느티나무 고목이 더 있다.

내려가는 길 왼쪽 집 위로 자란 나무가 200년 정도 된 회화나무다. 나무를 위해 지붕에 홈을 냈다. 사람은 나무를 그렇게 보호하고 나무는 푸른 생명력으로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 같았다.


숲속의 꽃밭과 산기슭 시냇물이 있는 풍경

연희숲속쉼터에 피어난 맨드라미.

봉원사를 둘러보고 안산자락길로 올라섰다. 메타세쿼이아 숲 방향으로 걸었다. 메타세쿼이아 숲길은 언제 걸어도 상큼하다. 숲속 넓은 쉼터 중앙 난간에서 바라보는 숲이 싱그럽다. 굵은 빗줄기처럼 나무줄기가 빼곡하다. 푸른 잎의 생명력은 몸과 마음을 씻어준다.

가던 방향으로 조금 더 가면 안산방죽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온다. 그 길로 접어들어서 왼쪽 오솔길로 가다보면 숲속 꽃동산이 나온다. ‘연희숲속쉼터’의 꽃동산이다. 비탈진 너른 밭에 꽃들이 피었다. 피튜니아, 무늬억새, 얘로, 에키네시아, 블루세이지, 레몬제라늄, 헬리오트로프, 안젤로니아, 사계소국, 알리움, 민트, 제라늄, 맨드라미…. 꽃들이 어울린 꽃밭에서 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무 그늘 의자에 앉아 꽃을 보고 있었다.

꽃밭 아래 물레방앗간이 있다. 연희숲속쉼터에서 흘러온 도랑물을 끌어와서 수차를 돌린다. 수차와 방아를 연결하지 않아 수차가 돌면서 방아를 찧는 광경은 못 봤지만 수차가 돌아가는 것만 봐도 시원했다. 이 물레방아는 강원도 정선군 백전리에 있는 100년 넘은 물레방아를 재현한 것이다.

물레방아를 지나면 홍제천을 건너는 돌다리를 만난다. 돌다리를 건너면 인공폭포가 있다. 안산 절벽을 타고 시원하게 부서지는 인공폭포와 물레방앗간을 한눈에 넣는다. 그 앞으로 흐르는 홍제천은 영락없는 옛 시골 마을 산기슭 아래 냇물이다. 냇물에서 노는 물고기와 오리들을 다리 위에서 구경한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그 풍경 그 모습이 보기 좋은 모양이다.

안산 북쪽에 고은산과 백련산이 있다. 고은산의 품에 안긴 떼굴떼굴 놀이터는 어린아이들이 놀기 좋은 곳이다. 마을 바로 위 숲 앞마당에 있는 놀이터에는 언덕 미끄럼대, 개울물 놀이대, 모래놀이 탁자, 모래채취 놀이대, 모래 굴삭기, 사방치기 등이 있다. 개울가 모래밭, 뒷동산 흙밭에 앉아 모래장난 흙장난을 하던 추억이 떠올랐다. 동네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놀이터 위 숲속에 또 다른 놀이터를 만들고 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지금은 잠시 쉬고 있다고 한다.

안산 인공폭포.


‘오동나무’ 정류장이 있는 인왕산 마을

백련산 백련사에 오래된 나무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마을 집들과 절이 백련산 자락 골목에 함께 있다. 골목과 절집들을 돌아보다가 150년 가까이 된 느티나무를 찾았다. 산비탈 골목길에 삐죽이 줄기를 내밀고 자란 나뭇가지가 넓게 퍼졌다. 그 아래로 도시 풍경이 먼 데까지 펼쳐진다.

산신각 앞 향나무도 예사롭지 않은 모습이다. 골목길 느티나무 앞에는 보호수 안내판이 있지만 향나무 앞에는 아무것도 없다. 향나무를 보며 쉬다가 절 마당을 거니는 스님을 보았다. 스님이 이 절에 머문 지 47년 됐는데, 처음 봤을 때 그 크기 그대로란다. 스님 말로는 적어도 100년은 넘은 것 같다고 하니 백련사에는 100년 나무가 두 그루 있는 것이다.

백련사를 뒤로하고 마을버스가 올라온 길을 되짚어 내려가다 만난 ‘백련산 매바위 유아 숲 체험장’은 꽤 넓은 숲속 놀이터다. 밧줄과 나무로 만든 여러 설치물이 없어도 신나게 놀 수 있는 숲속 마당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네도 있었다. 신나게 그네를 타는 아이들 웃음소리를 생각하며 마을버스를 타고 홍제역으로 돌아왔다.

홍제역에서 인왕산 개미마을로 가는 마을버스를 탔다. 산비탈 동네를 그르렁거리며 올라가는 마을버스 안에서 바라보는 동네가 비에 젖고 있었다. 마을 뒷동산이 인왕산이다. 마을 맨 꼭대기 집 위 숲은 아이들 놀이터다. 커다란 나무가 빼곡하게 자란 숲속에 통나무집이 보인다. 추억 속 뒷동산 숲속 나무집은 다른 세상으로 연결되는 통로였다. 마을 사람들이 빗속에서도 그 숲길을 걷고 있었다.

비에 젖은 숲에서 나와 돌아가는 길, 비탈길을 내려가는데 눈에 들어온 마을버스 정류장 이름, ‘오동나무’. 이 마을에는 오동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가 이정표였다. 버스도 그곳에서 머물렀고, 사람들도 그 아래서 쉬었다 마을길을 올랐다. 마을 사람들은 오래된 오동나무가 쓰러질까봐 걱정도 많이 했단다. 결국 나무를 베기로 했고, 지금은 정류장 이름에 오동나무의 추억이 남아 있다.

백련사 향나무.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