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공원 초록색 잎 통해 노란색 별과 연결되다

전유안 기자, ‘1마일 속의 우주’ 손에 들고 개통 1년 지난 서리풀 터널 주변을 걷다

등록 : 2020-05-21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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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광장’ 등 생기며 1년간 빠른 변신

박새 등 도시 텃새 지저귐 숲을 채울 때

코로나 탓 ‘온난화와 인류 멸망’ 연상돼

숲 벤치에서 아마존 삼림벌채 떠올려

동네 숲길 속에서도 우주를 느끼게 돼

햇살 보며 걷는 행위가 이토록 반가운 요즘. 이 또한 코로나19가 가져다준 ‘포스트 코로나-서울 관광’의 재발견이다. ‘동네 산책의 달인’ 천문학자 쳇 레이모는 자신의 책 <1마일 속의 우주>에서 “돌멩이와 들꽃 하나하나가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다”고 누차 말했다. “내가 폐로 들이마신 산소는 죽은 별 속에서 만들어졌다”와 같은 읊조림이 동네 산책 중 터져나왔음을 상기해보자. 멀리 가지 않아도 좋다. 주변 길에서 이야기를 길어 올려 보는 5월의 끝자락이다.


서리풀 터널에서 몽마르트 공원까지 한 길

서초역 4번 출구에서 약속이 잡힌 지난 16일 점심. 두 시간 일찍 나서 ‘서리풀 터널’ 일대를 돌아보기로 했다.

지난해 4월 서리풀 터널 개통 뒤 1년이 지났다. 정부·지방자치단체가 전전긍긍해온 국군정보사령부 터 이전 문제가 2015년 해결되면서, 강남 도심 간선도로인 서초대로가 단절 없이 곧장 뻗게 됐다. 40여 년 동안 인적 드물었던 일대는 ‘서리풀 문화광장’ 등 문화·편의시설이 들어서며 지난 사계절 빠르게 변했는데, 선으로 연결된 동네들이 사람과 자동차로 부풀면서 개발 욕망들도 모였다. 바람은 잠시 잦아든 눈치다. 잘 닦인 길가마다 직장인들이 서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

서리풀 터널 개통 뒤 터널 위로 산책길이 정비됐다. 강남 도심과 테헤란로 일대가 보인다.

서초역 4번 출구(대법원 방향)나 내방역 1, 8번 출구(서리풀 공원 방향), 방배역 4번 출구에서 나온 길은 모두 서리풀 공원으로 향한다. 나무 데크로 정비한 산책로를 따라가면 테헤란로가 한눈에 담기는 정자가 금방이다. 한 발자국씩 더 들어가면 숲 천지다. 내방역~서초역을 연결하는 서리풀 터널 위로 숲길이 정비됐다. 인간을 위한 생태길 같은 모습이다.

몽마르트 공원.

몽마르트 공원의 토끼

길은 단순하다. 서리풀 터널을 중심으로 위로 오른다면 ‘몽마트르’ 공원을 거쳐 고속터미널역까지 30여분 걸린다. 만약 아래로 내려간다면 완만한 산책길 따라서 청권사 쉼터까지 역시 30여분이다. 청명한 날엔 우면산 둘레길까지 2~3시간 걸으며 체력을 길러본다.


‘청권사’ 산책길은 동네 사람들이 아끼는 길

한편 방배역 4번 출구와 가까운 ‘청권사’와 ‘효령대군 이보 묘역’에서 걷기 시작해 새로 정비한 길 따라 오르는 길은 서초구 동네 주민들이 추천하는 ‘걷기 좋은’ 산책길이다. 터의 기운이 좋단다. 관광객이 적어 번잡스럽지 않은 덕도 있다. 고요한 주말 이른 아침엔 잿빛 직박구리나 박새 같은 참새목 도시 텃새들 지저귐이 숲을 채운다.

청권사.

청권사(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2호)는 1736년(영조 12) 왕명으로 지은 사당이다. 태종 이방원의 둘째 아들이자 세종대왕의 형님인 효령대군과 그의 부인 예성부부인 해주 정씨의 위패를 모신다. 관악산 연주봉(632m)이 남태령 고개를 느긋하게 타고 내려와 우면산(293m)을 세우고, 우면산에서 다시 뻗어간 능선 모퉁이에 청권사가 있다. 풍수에 일가견 있는 노학자들은 “산줄기가 마치 거대한 용이 꿈틀거리는 모습”이라 상찬하는데, 범인이 직접 밟아보니 용틀임의 경건한 위용보단 용쓰지 않아도 편안한 길이란 감상이다. 조상을 모시는 묘역이라지만 사실 후대가 편하게 설계한 디자인인데다, 남의 조상님이지만 같은 민족인 나를 돌봐주리란 기대가 섞인 것 같다.

일대 능선은 모두 서리풀 공원 봉우리로 가닿는다. 숲으로 들어선다. 어느 지점 놓인 벤치에 앉아 다시 쳇 레이모의 전언을 읽어봤다. 우리가 폐로 호흡할 때 발생하는 ‘당 연소작용’은 몸의 온기를 유지시킨다고 한다. 스스로 당을 만들 수 없는 인간은 식물이 필요하다.

서울 도심 숲에 앉아 아마존의 삼림 벌채를 떠올린다. 지구 온난화가 인류를 멸종시킬 수 있다는 교과서 같은 얘기가 살갗으로 파고든 건 ‘감염병’이란 사회적 재난 경험 때문이다. 동네 산책의 달인이 다시 말한다. “당신과 내가 우리 조상들 속에 ‘광합성자’를 갖고 있었을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생명의 나무는 상호 의존망이다. 초록색 잎들은 우리와 우리의 노란색 별을 이어 주는 연결 고리다.”(<1마일 속의 우주> 53쪽)

가까운 숲에서의 적절한 한 걸음이 종내에는 지구를 가로지를 수 있다는 그의 이야기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생각하는 지금도 통용될 논리 아닐까? 지구촌 거주자들이라면, 주기적으로 우리 동네 숲길 먼저 발바닥으로 느껴볼 이유다. 주말 숲길로 떠나보자. 바람이 좋다.

글·사진 전유안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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