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지람M9로 건배할 수 있다면 누구나 시진핑급”

이인우의 중국 바이주 기행 ⑥ 장쑤성 쑤첸시 양하대곡(洋河大曲)

등록 : 2020-03-26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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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이 꿈’ 의미 양하대곡 최고 브랜드

시진핑 국가주석이 “가장 사랑하는 술”

청나라부터 주창 존재 발효 최적 조건

주변 습지는 최초 자연주 발생지 추정

2003년 독자적 향형인 ‘면유형’ 규정

중국 술의 명성은 정치와 관련이 깊다. 만들기 어렵고 장기간 숙성해야 좋은 술이 되는 특성 탓에 오래 묵은 좋은 바이주는 항용 권력자나 부호에게 바쳐졌다. 주고받는 과정이 늘 아름다울 수만은 없다. 사람의 속셈이야 어떻든 술은 그런 과정을 통해 이름에 날개를 단다.

구이저우 지방의 명주 마오타이는 1935년 대장정 때 츠수이하(赤水河)를 건너려고 생고생한 홍군 병사들에게 주민들이 위로의 술로 ‘바치면서’ 마오쩌둥 등 공산당 지도부의 호감을 샀다. 마오타이는 신중국 성립 후 저우언라이 등 공산당 지도자들이 국제 행사 때마다 연회 주로 내놓으면서 중국을 대표하는 술이 됐다. 오늘날 마오타이가 수많은 경쟁자의 비난과 질시를 아랑곳하지 않고 ‘국주’를 자칭하는 데는 이런 빽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난날 이야기. 요즘 중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술은 마오타이가 아니라 몽지람(夢之藍)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가장 사랑하는 술”이라고 하는데, 그가 외치는 ‘중국몽’과 이미지가 겹치기 때문이란 게 정설이다. 몽지람은 하늘보다 넓고 푸른 사나이의 꿈을 뜻한다고 한다. 위대한 중국의 부흥을 외치는 사나이 시진핑의 가슴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한 술 이름이 어디에 있을까.


2011년 설립된 양하주창의 도기 술 저장고는 세계 최대 규모로, 보관량이 최대 약 1t에 이르는 도기 3만여 개가 있다.

중국 장쑤(江蘇)성 성도 난징(南京)에서 북쪽으로 3시간 정도 차를 달리면 쑤첸(宿遷)시가 나온다. 쑤첸은 2개 구와 3개 현이 있는데 그중 쓰양(泗陽)현과 쓰훙(泗洪)현 두 현이 예로부터 바이주 산지로 유명했다. 쓰양의 양하대곡(洋河大曲), 쓰훙의 쌍구대곡(雙溝大曲)은 경쟁이 치열했는데, 장쑤성 정부가 ‘소주’(蘇酒·장쑤 지역 술의 통칭)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두 회사를 합병해 강소양하주창고분유한공사(소주집단)라는 초대형 회사를 만들었다. 이 강소양하주업의 양하주창에서 나오는 대표적인 술이 양하대곡이고, 최고급 브랜드가 바로 몽지람이다. 몽지람은 천(天)지람, 해(海)지람과 함께 ‘양하남색경전(藍色經典)’ 시리즈의 최상위 등급이다. 특별히 몽지람은 다시 M3, M6, M9로 등급이 올라간다.

양하대곡 술병은 남색 일색이다. 경쟁자로 삼는 마오타이, 우량예 등의 붉은색이나 흰색 이미지와 차별화되기 위해 중국 사람들이 귀인의 색으로 여기는 남색을 브랜드 색으로 삼았다.

양하주창 최고 브랜드 ‘몽지람M9’

 양하주창을 방문했을 때 부사장급 간부가 몽지람 잔을 권하며 작명 배경을 설명해준다. “바다와 하늘이 모두 푸르고, 사람의 원대한 꿈도 청운(靑雲)이라고 하지 않는가. 바다처럼 넓고 푸른 해지람, 하늘처럼 넓고 푸른 천지람, 바다보다 하늘보다 넓고 푸른 사나이의 꿈 몽지람….” 몽지람M9로 건배를 외칠 수 있다면 당신도 시진핑급이다.

양하주창의 초대형 포장물류라인. 8개 라인이 매 라인당 1시간에 6천 병을 포장할 수 있다. 중국 바이주 업계 최초의 자동 입체 창고이다.

양하주창이 자리한 곳은 쑤첸시 양허진(洋河鎭). 버스에서 내리자 술 냄새가 마을 공기의 일부 같다. 양하주창은 총면적이 4.5㎢에 이르고 직원이 1만5천 명(쌍구주창을 합치면 10㎢, 총 3만여 명)이나 된다. 강소양하주업의 매출 규모는 마오타이, 우량예와 더불어 3강 체제를 이룬다. 포장물류장의 최대 출고 능력이 1초당 13.3병이라고 하니 어마어마한 규모다.

쑤첸시 항우고리의 항우상. 쑤첸은 술과 함께 의 영웅 항우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쑤첸은 고대에는 하상(下相)이라 불렸으며 초패왕 항우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요즘 쑤첸시는 항우 마케팅에 열심이다. 항우고리(故里)를 짓고 그 앞에 거대한 항우상을 세워 관광객을 부르고 있다. 하지만 많은 중국인에게 쑤첸은 여전히 술의 고장이다. 그곳에 양허진이 있기 때문이다. 양허는 고대로부터 군사 요충지. 옛 중국 지명에서 진(鎭)은 군대 주둔 지역을 말하고, 술은 군대의 주요 보급품이다. 좋은 술 생산지 지명에 진이 많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양허의 술맛이 좋은 이유로 이 지역 사람들은 ‘3하(河)2호(湖)1습(濕)’을 첫손에 꼽는다. 쑤첸 지방은 화이하, 징항대운하, 고황하가 흐르고, 훙쩌호와 뤄마호라는 2개의 큰 호수와 장쑤성 최대 담수습지인 훙쩌호 습지가 있다. 장쑤성 정부는 특히 훙쩌호 습지가 스코틀랜드 위스키, 프랑스 코냑 브랜디 생산지와 더불어 ‘세계 3대 명주 습지산구’라며 환경보호구역으로 지정해놓고 있다. 이 훙쩌호의 샤차오(下草)만에서 술 취한 원숭이 화석이 발굴된 일은 아주 유명하다. 중국 학자들은 이 발견을 통해 훙쩌호 습지대가 “중국에서 처음 발견된 천연 양조 환경을 갖춘 자연주(自然酒) 발생지”라고 주장한다. 양허진은 이 훙쩌호 북서쪽에 있다.

양허는 예부터 명주의 고향으로 중국인들의 선망을 받아왔다. 명나라 시인 추집(鄒緝)이 양허의 풍경을 읊은 시가 있다.

“백양하 아래 봄물 푸르면(白洋河下春水碧)/ 백양하로 술 사러 오는 상인 많다네(白洋河中多沽客)/ 봄바람 부는 2월이면 버들가지 돋는데(春風二月柳條新)/ 마음 급한 나그네 발걸음 천리길이네(却念行人千里隔)/ 술 사는 사람은 해마다 오가야 하지만(行客年年任往來)/ 그곳 사람들에겐 늘 양하 술이 있다네(居人自在洋河曲)”

외지 사람은 양하 술을 사러 먼 길을 다녀야 하는데 양허진 사람들은 언제나 양하 술을 마실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시 내용만으로도 당시 양허진의 주업이 얼마나 번성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양하대곡은 본래 농향형 바이주로 분류되었지만 2003년 몽지람을 출시하면서 자신의 향형을 ‘면유(綿柔)형’으로 규정하고 중국 당국의 공인까지 받는다. “관습적인 바이주 향형 분류를 타파하고 처음으로 면유형 바이주를 개창했다”는 것이 21세기 양하대곡의 큰 자랑이다. 면유는 솜처럼 부드럽다는 말이다. 진한 향기의 술맛이 부드럽게 목구멍을 넘어가고 뒷맛도 오래 이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양허에서 면유형 바이주를 생산하기까지 유지해온 몇 가지 전통이 있다. 우선 여름에 술을 발효·저장하지 않고 겨울에 누룩을 만들지 않는다. 양허에서는 5월부터 9월까지 4개월 동안만 술을 만들고 가을부터 저장한다. 따라서 양허의 좋은 술은 모두 봄과 가을에 나온다. 양조공법의 핵심은 “저온 입교, 저온 발효, 저온 배합”의 3저. 처음 저장 구덩이에 들어갈 때, 발효시킬 때, 배합할 때 모두 그에 알맞은 저온 상태를 유지한다. 저온 조건은 미생물의 생장과 효소 활성 최적화에 유리하다. 마치 죽을 끓일 때 “약한 불에 서서히 푹 끓이는 게 영양에 좋은 것”과 같은 원리라는 설명이다. 양허의 지하저장고는 1778년 청나라 건륭제 때 틀이 만들어졌다. 2천여 개 저장 도기 중 가장 오래된 것은 600년이나 되고 전체의 평균 수령이 100년을 넘는다. 오랫동안 “계승과 자연재배를 반복하다보니 구덩이의 흙 1g당 수백 종의 미생물이 수천억 개씩 존재”한다. 양하대곡은 원주는 보통 3년 이상, 가공된 조미술은 최소 5년 이상 보관한다. 완성품을 내놓을 때는 다음 세 검증 과정을 거친다. 첫째 전문가 200명의 시음, 둘째 직원 1만 명의 시음, 셋째 전국 각지 지점 고객 수만 명의 평가가 그것이다.

수백 년이 넘도록 변함없이 술 산업이 번성하는 양허진에 지금껏 전해져오는 양하 술 찬가를 들어보자.

“향기는 말을 내리게 하고(聞香下馬)/ 맛은 수레를 멈추게 하네(知味停車)/ 술맛이 하늘을 찌르니(酒味沖天)/ 새들이 그 향기에 봉황이 되고(飛鳥聞香化鳳)/ 술지게미 강으로 흘러드니(糟糠入水)/ 물고기가 맛을 보고 용이 되네(遊魚得味成龍)/ 복된 샘 술 바다에 맑은 향기 아름다우니(福泉酒海淸香美)/ 그 술맛 강남의 제일가로다(味占江南第一家)”

양하대곡은 2016년부터 우리나라에도 수입되고 있다. 독점 수입 상인 남경무역 유호성 대표는 “중국 장쑤성을 대표하는 양하대곡은 중국인들이 꼽는 8대 명주의 하나”라며 “수입 역사는 짧지만 매년 2배 이상 판매가 늘고 있다”고 소개한다. 바이주 애호가들은 대개 자기가 좋아하는 술을 4대 명주, 8대 명주식으로 자랑하는데, 중국 술의 역사와 현대 판도를 정리해놓은 <중화주전>(中華酒典·충칭출판사)이란 책에는 현대 바이주의 12대 명주가 열거돼 있다. 모두 ‘중국 바이주 기행’ 1회 때 소개한 17대 바이주에 들어 있는 술이다. 참고로 이 12대 명주를 가나다순으로 나열하면 검남춘, 고정공주, 낭주, 노주노교, 동주, 마오타이, 분주, 서봉주, 양하대곡, 우량예, 전흥대곡(수정방), 타패곡주이다. 명주를 줄 세우는 것은 결례다. 어깨를 나란히 하게 하는 것이 마땅한 예우일 것이다. <1부 끝>

글·사진 이인우 선임기자 iwl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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