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열사 즐겨찾던 ‘명보다방’ ‘모녀식당’ 그대로

유영호의 우리 동네 어슬렁 산책│동대문시장·청계천 일대

등록 : 2019-12-12 14:18 수정 : 2019-12-12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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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다리·반신상 그를 기억하지만

평화시장 맞은편에 최고급 호텔 건립

우리 사회 빈부격차 상징하는 듯

분신 49년 지났어도 노동 현실은 열악

동대문시장은 300년 오랜 역사 자랑

한양 3대 시장인 배오개장이 출발점

일제 상업 침략 맞서려 광장시장 출범

‘동대문파 이정재’가 주요 무대로 삼아


오늘은 일명 동대문시장 일대를 돌아보고자 한다. 먼저 종로4가 일대는 조선 후기 한양 3대 시장의 하나인 배오개장이 열렸던 곳이다. 배오개는 인의동 112번지 일대에 배나무고개가 있어 불린 이름이며, 한자로 이현(梨峴)이라 했다. 그러니 이곳 동대문시장은 18세기부터 그 역사를 갖고 있다. 사설시장으로 시작한 이곳은 일제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1905년 광장시장주식회사를 설립했고, 그것이 지금의 종로구 예지동에 있는 광장시장이다. 따라서 현대사에서 동대문시장의 시작은 바로 이곳 광장시장이다.

본래 광장시장은 청계천 광교에서 장교 사이를 복개하여 그곳에 지으려 했고, 이름 역시 광교와 장교를 합쳐 광장(廣長)시장이라 지었으나 당시 토목기술로는 어려워 현재의 위치로 옮겨 지은 것이다. 위치를 바꾸며 이름 역시 발음은 그대로 하되 ‘널리 모아 간직하다’라는 뜻을 새로 담아 현재의 ‘광장(廣藏)시장’이 되었다. 현재의 광장시장 건물은 1959년 지어진 것으로 바로 이곳이 폭력조직 동대문파 이정재의 주요 무대였다. 또 현재 종로에서 청계천 방향으로 광장시장 안쪽 먹거리시장 펼쳐진 길은 창경궁 옥류천을 복개한 것이다.

광장시장을 지나 청계천에 다다르면 건너편에는 방산시장이 있지만, 방산시장 위치는 방산동이 아니라 주교동이다. 마치 동대문이 동대문구가 아닌 종로구에 있고, 남영동 대공분실이 남영동이 아닌 갈월동에 있는 것과 같다. 한편 방산동엔 일제강점기와 해방 정국 시기에 경성사범대학이 있었지만 1954년 교사를 동대문구 용두동으로 이전한 뒤 줄곧 주한미군 병참부대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 경기 평택으로 옮겨진 듯 현재는 그곳이 미군기지임을 알리는 모든 표시가 떼어진 상태다.

이곳 미군기지 동쪽 국립중앙의료원 자리는 조선시대 군사기관인 훈련원이 있던 곳이며, 이순신 장군이 무과시험을 봤던 곳이기도 하다. 그 후 일제강점기에 이곳에 경성부민병원이 설립돼 현재의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이어졌다.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청계천 쪽으로 이동하다보면 만나는 통일상가 자리는 일제강점기 경성약학전문학교가 있던 곳이며, 1959년부터 76년까지 서울대 음대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곳 인근의 청계천다리를 전태일교라 이름 짓고 그곳에 그의 반신상을 설치했다.

한편 이곳을 빠져나오면 마주치는 청계천 일대는 우리 현대사에 커다란 획을 그은 역사적인 장소다. 바로 전태일 열사가 자신을 불사르며 화염 속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쳤던 곳이다. 따라서 이곳 다리 이름도 ‘전태일다리’라 짓고 다리 위에는 전태일 반신상을 설치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일했던 ‘평화시장’, 그가 자주 찾던 ‘명보다방’ ‘모녀식당’ 등이 여전히 그 이름 그대로 남아 50년 전의 이곳을 충분히 상상하게 해준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러 세상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그가 숨진 지 49년 지난 지금도 수많은 노동자가 죽어가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전태일 열사의 바보회가 자주 모였다는 명보다방.

청계천을 사이에 두고 평화시장 맞은편에는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를 상징하듯 최고급 호텔인 ‘JW메리어트동대문스퀘어서울’이 2014년 건립되었다. 호텔이 위치한 이 일대 부지는 1899년부터 1969년까지 전차 차고지로 쓰였던 곳으로, 70년 동대문종합시장이 들어섰고, 나머지는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더불어 고속버스터미널로 사용했다. 그러나 77년 터미널 역시 강남으로 완전히 이전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곳을 ‘주차장 시설’로 고시하면서 그저 동대문종합시장 주차장으로만 사용해오다 최근에야 건축이 가능해져 호텔이 들어선 것이다. 동대문종합시장, JW메리어트동대문스퀘어서울 등은 모두 동승그룹 소유다. 동승그룹은 고 정시봉씨가 창업한 회사로 그는 신설동에서 부동산 사업으로 성장한 알짜배기 자산가이다. 무차입경영으로 JW메리어트동대문스퀘어서울 역시 100% 자기 자본으로 지었다고 한다.

이제 동대문패션타운을 돌아보자. 본래 평화시장을 필두로 기성복을 제조하던 동대문의류상가는 1970년대 전국 기성복의 70%를 공급할 만큼 거대했다. 90년대 들어 외국인 관광객 수요가 커지면서 더욱 팽창했다. 이러한 새로운 변화에 따라 90년 아트프라자를 시작으로 디자이너클럽, 우노꼬레 등이 들어섰고, 90년대 후반 밀리오레, 두산타워 등이 새로 진입하면서 한 번 더 팽창했다. 이 의류상가들 위치는 일제강점기 동대문소학교(현대시티아울렛), 경성여자실업학교(두산타워), 고양군청(밀리오레)이 자리 잡았던 곳이다.

한편 동대문역사문화공원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자리는 조선시대 치안을 맡던 하도감과 군사훈련을 담당하던 훈련도감이 있던 곳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후일 일왕에 오르는 히로히토의 결혼 기념으로 1926년 경성운동장이 건설되었다. 그 후 동대문운동장은 한국 스포츠 발전에 기여하다가 2007년 야구장이, 2008년 축구장이 철거됐다.

이렇게 사라진 이곳에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DDP를 건축했다. 그러나 최첨단 재료와 구조로 지어진 이것은 ‘기억의 장소에 기억을 지워버리는 건축의 폭력’이었으며, 결국 2013년 동아일보와 건축전문 잡지 (공간)가 건축가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해방 이후 건축물 중 최악의 건축물’ 20개 가운데 다섯째로 뽑혔다.

글·사진 유영호

<서촌을 걷는다> <한양도성 걸어서 한바퀴> 저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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