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국숫집, 50년 다방…이제 ‘찐트로’가게 시대

전유안 객원기자가 추천하는 서울 서남권 ‘뉴트로’ 가게들

등록 : 2019-11-21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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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구 ‘평택쌀상회’

국수 써는 큰 칼 등 소품 구경 재미

영등포구 ‘상진다방’

영화에서 볼 법한 괘종시계 ‘똑딱똑딱’

구로구 ‘혜성미용실’

“오래가는 파마 최고” 동네 여인 극찬

강서구 ‘자성당약국’

50년 단골, 수다 떨다 마음까지 치료


한강 아래 서쪽, 서울 서남권에 자리한 가게들은 ‘찐 뉴트로’라 불린다. ‘찐’은 연출이 아닌 ‘진짜’를 강조한 요즘 세대 말이다. 도시계획에서 번번이 변두리로 밀려나는 동안 이 일대 가게들은 온전하게 나이를 먹었다. 특히 30~40년 된 오래된 다방, 미용실, 잡화점 등이 소소한 동네 일상과 엮여 지역주민과 상생하는 모습이 쉽게 보인다. 유행 좇아 연출된 ‘뉴트로’(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말) 대신 삶이 묻어나는 ‘진짜 뉴트로’를 찾는다면 지금 여기를 걸어볼 필요가 있다.


금천구

‘평택쌀상회’(1988), ‘금복상회’(1978)

평택쌀상회

시흥동 ‘평택쌀상회’는 쌀 대신 국수가 유명하다. 기계 대신 햇살과 바람으로 천천히 건조한 국수가 쫄깃한 식감으로 입소문을 타더니, 다른 동네에서 들어온 주문이 밀릴 만큼 대표 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30년 외길로 국수를 뽑아온 이기석(67), 신명자 부부는 1988년 가게 문을 열었을 때부터 반죽, 건조, 포장에 이르는 모든 공정을 손으로 한다. 썩둑썩둑 국수를 써는 칼과 낡은 궤짝, 국수를 말리는 ‘신호대’ 나무까지 옛 집기들을 그대로 쓴다. 밀가루로 뽑는 일반국수 말고도 보리국수, 쑥국수, 호박국수 등 알록달록한 건면이 천지다. 매달 밀가루 100여 포대를 쓴다. 한 포대 20㎏이니 적어도 2t 무게의 면발이 쉴 새 없이 갖가지 국수가 돼 손님들에 의해 소비된다. 이 묵직하고 힘겨운 공정을 관찰하면 앞으로 국수 한 가닥 흘리는 일도 도리에 어긋날 것 같다. “물론 쉽지 않죠. 돈 좀 더 벌고 싶다고 공정을 생략하면 손님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니까요.” (금천구 독산로40길 27-5 | 02-895-4825 | 08:00-20:00 | 1호선 금천구청역에서 도보 20분)

금복상회

독산동 남부시장 골목 어귀로 가면 ‘금복상회’가 있다. 40여 년 동안 봉제부속품을 팔아왔다. ‘명찰, 실, 작크, 단추’라 쓰인 칠 벗겨진 입간판을 찾아 문을 열고 들어서본다. 한 시절을 풍미한 독일산 ‘큐큐기계’와 일본산 ‘나나인치’ 등 오래된 재봉틀이 당당히 방문객을 맞는다. 김금철(70) 사장은 “내 이름에서 ‘금’, 아내 이름에서 ‘복’을 따 가게 문을 열었다”며 청춘을 바친 공간을 애틋하게 쳐다봤다. 3천원이면 빈티지하고 멋스러운 나만의 명찰도 새겨볼 수 있다. (금천구 시흥대로146길 33 | 02-863-9127 | 08:00~18:00 | 1호선 독산역에서 도보 25분)

영등포구

‘상진다방’(1970년대), ‘삼우치킨센타’(1977)

문래철강단지에 있는 ‘상진다방’은 최근 문래동으로 몰린 청년 예술가들이 재빠르게 찾아낸 ‘뉴트로’ 공간이다. 커다란 괘종시계, 매끌매끌하게 닳은 인조가죽 소파, 빈티지한 무늬의 커피잔까지. 1960~70년대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인테리어와 집기들이 여전히 쓰인다. 계란노른자 띄운 쌍화차와 달달한 다방커피가 잘나간다. 종종 신진 작가들의 전시공간으로도 사용된다. (영등포구 도림로133길 9 | 02-2677-3554 | 07:30~18:00 | 2호선 문래역에서 도보 10분)

삼우치킨센타

화려한 브랜드 치킨 시대, 대림동 ‘삼우치킨센타’는 42년 동안 옛 맛 그대로 살린 통닭을 낸다. ‘후라이드’와 ‘전기통닭구이’ 둘 중 하나 골라 주문하면 케첩 가득 뿌린 양배추 샐러드와 무절임이 나온다. 크기도 큼직한 살점을 한입 베어 물면 바삭한 식감이 제대로다. (영등포구 시흥대로 671 | 02-844-9292 | 13:00~01:00 | 2호선 신대방역에서 도보 10분)

구로구

‘혜성미용실’(1979), 관악구 ‘미림분식’(1988)

혜성미용실

“탈칵” 가스에 불꽃이 오르면 집게 모양의 인두가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머리카락에 ‘불맛’ 얹어 파마하는 오류동 ‘혜성미용실’은 1979년에 문을 열었다. 장선심(64) 사장에 대한 동네 여인들 평이 두터운데 “여기서 파마를 하면 보기도 좋은데 파마도 상당히 오래가기 때문”이다. 장 씨가 답했다. “아이롱(드라이) 20원 할 때 문을 열었으니 40년 세월도 금방이네요.” (구로구 고척로6길 42 | 02-2682-9359 | 08:00~20:00 | 1호선 오류동역에서 도보 10분)

미림분식

88년부터 근처 미림여고 학생들이 수없이 드나들었던 신림동 ‘미림분식’은 한 냄비 크게 내는 ‘즉석떡볶이’가 유명하다. 30년 동안 가게 집기를 크게 바꾸지 않은 덕에 추억을 찾는 졸업생들 발길도 잦다. 엄마가 된 학생이 다시 아이 손을 잡고 오는 풍경도 일상이다. 고추장·짜장 양념 중 하나를 선택해 한 대접 끓여 먹고, 진한 국물에 김치와 밥까지 볶아 먹는다. (관악구 호암로 553 | 02-888-8567 | 11:30~21:30 | 신림역 정류장에서 버스 15분)

강서구

‘공항칼국수’(1979), ‘자성당약국’(1969)

김포공항 가까이 있는 공항동 ‘공항칼국수’는 공항을 들고 나는 손님들로 늘 북적댄다. 대를 이은 손맛이 입소문을 탄 지 꽤 지나 벽엔 손님들의 방문 인증 글이 가득하다. 가장 인기 있는 ‘버섯칼국수’는 언뜻 보기에 얼큰한 국물, 탱탱한 면발, 버섯과 미나리가 전부인데, 기본이 탄탄해 한겨울엔 뜨거운 국물을 찾는 손님들로 자리 잡기도 힘들다. (강서구 공항대로 18-1 | 02-2664-9748 | 09:00~22:00 | 9호선 공항시장역에서 도보 5분)

공항동 자성당약국은 1969년에 문을 열었다. 올해가 개업 50주년이다. 김영자(76) 약사는 주변이 온통 논밭이던 마을이 작은 도시로 변모하는 50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며 동네 사람들의 병고와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단골들과 함께 나이를 먹는 동안 정이 들어, 이사 간 손님들도 다시 찾아오곤 한다. 사랑방 같은 약국에서 마음껏 수다를 나누는 손님들은 마음까지 치료받고 떠나곤 한다. (강서구 방화대로21길 76 | 02-2662-0555 | 09:30~21:00 | 9호선 공항시장역에서 도보 10분)

글·사진 전유안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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