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아름다운 단풍에 마지막 가을 더 빛나다

서울의 단풍 명소 ② 가을 풍경이 아름다운 길·숲·산

등록 : 2019-11-07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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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별을 닮았던 절정의 붉은 잎

혼신을 다해 떠나는 가을 배웅하고

땅 위에 떨어져선 사람 발길 붙잡아

마음속에 차곡차곡 그리움을 쌓는다

불광천 단풍.

절정의 단풍을 보았다. 행운이었다. 아직 초가을 색으로 물든 나무도 있고, 늦가을처럼 몇 잎 남지 않은 곳도 있었다. 겨울 문턱으로 들어서는 입동이 8일이니, 단풍을 찾아 나서는 발길이 바쁘다. 하늘을 가린 숲으로, 하늘과 맞닿은 산마루로, 여울 반짝이는 물가의 단풍길로 걷고 또 걸었다. 가을, 참 빨리도 간다.

물가의 단풍길

안양천 둑길에서 본 안양천 둔치. 핑크뮬리그라스가 피었다.


지하철 1호선 구일역부터 신정교 사이 안양천 둑길을 걸었다. 구일역 1번 출입구로 나와서 돌아서서 걷다보면 안양천 둑길이 나온다. 길은 고척교 밑을 지나 다시 둑 위로 이어진다. 아직 푸른 나무와 단풍 물든 나무가 섞여 있다. 길 양옆에 줄지어 선 나무가 터널을 만든다. 나무 사이로 개울을 본다. 여울에 부서져 산란하는 햇빛이 눈부시다. 냇가 핑크뮬리그라스는 분홍색으로 빛나고 억새는 바람에 일렁인다.

광나루 한강공원으로 가는 성내천 둑길.

올림픽공원 팔각정에서 성내천을 따라 걷는다. 길가 풀밭이 울긋불긋하다. 떨어진 단풍잎이 풀밭에 가득하다. 하늘의 별무리가 땅에 떨어져 빛나는 것 같다. 나무에 매달린 단풍잎보다 떨어진 잎이 더 빛난다. 성내교 밑을 지나 걷다가 둑길을 만나면 뒤로 돌아서 성내교 쪽으로 걷는다. 성내교를 건너 반대편 둑길 입구에서 왼쪽으로 돌아 걷는다. 그 길이 광나루한강공원으로 가는 성내천 둑길이다. 약 1㎞ 정도 이어진다. 나무에 매달린 단풍잎보다 길에 떨어진 잎이 더 많다. 지고 나서 더 빛나는 순간도 있다.

양재 시민의 숲과 그 부근 양재천에도 가을색이 가득하다. 여의천과 양재천이 만나는 지점 부근에 코스모스가 작은 무리를 이루어 피었다. 영동1교 밑을 지나 영동2교 방향으로 가다보면 꽃무리가 사람들을 맞이한다. 꽃 이름을 알리는 팻말에 ‘백일홍’이라고 적혔다. 배롱나무에서 피어나는 백일홍이 아니다. 이름이 같은 다른 꽃이다. 백일홍 꽃무리 옆 양재천 물 건너 둔치에 줄지어 자란 커다란 나무가 중후한 갈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도시의 건물들은 양재천의 가을 밖에 우두커니 서 있다.

발길을 돌려 양재 시민의 숲으로 향했다. 숲의 단풍은 그 빛을 발산하지 않고 침잠한다. 그 숲을 거니는 사람의 걸음을 느리게 하고, 단풍 그늘 아래 앉게 한다. 멈추게 하고 생각하게 한다. 단풍 빛이 자꾸만 마음으로 들어와 차분하게 쌓이는 느낌이다.


단풍 숲으로 들어가 가을 산을 보다

문수봉에서 바라본 백운대와 인수봉

평창동 삼성아파트 앞에서 출발해서 문수봉에 올라 구기동으로 내려오는 약 6~7㎞ 정도 산행길에 나섰다. 북한산 평창동 출입소를 통과해서 숲으로 들어간다. 동령폭포를 지나고 대성문을 통과해 대남문에 이른다. 단풍은 군락을 이루지 못하고 여기저기 떨어져서 피었다. 문수봉에 오르면 시야가 완전히 트인다. 멀리 백운대와 인수봉이 보인다. 눈길을 돌리면 사모바위, 비봉, 향로봉, 족두리봉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시 대남문 쪽으로 내려와 구기동 쪽으로 내려간다. 약 2.5㎞ 하산길이 지루해질 무렵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가 인사한다. 단풍나무가 혼신을 다해 마지막 남은 가을을 빨갛게 물들이며 배웅하는 것 같았다.

관악산 단풍도 유명하다. 여러 등산로 가운데 서울대 정문 옆 등산로 입구에서 출발해 거북바위를 지나 삼막사까지 다녀오는 약 4.4㎞ 길을 선택했다. 출발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오는 호수공원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로 올라간다. 숲으로 들어서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을 가린 붉은 단풍나무를 만났다. 붉은 물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다. 노랗게 물든 단풍길이 이어진다. ‘울긋불긋 꽃대궐’보다 화려하다. 화려한 단풍길은 정체 구간이다.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기도 한다. 몇 번의 오르막을 지나 거북바위에 도착했다. 삼막사까지는 약 600m 남았다. 삼막사 커다란 고목에 노랗고 빨간 단풍이 들었다. 화려하면서도 장중하다. 절 마당 단풍 그늘에 앉아 산 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아무 생각 없이 흘러간다.

N서울타워 맞은편 전망대에서 본 풍경.

남산 단풍길은 예로부터 이름난 명소다. 남산 정상에서 남산공원 남측 순환도로를 지나 남산 야외식물원에 도착해서 식물원 곳곳을 돌아보는 약 4㎞ 길을 걸었다. 남산 정상은 곳곳이 전망이 좋다. 전망이 지루해질 때까지 풍경을 즐긴 뒤에 길로 접어들었다. 한양도성 성곽 위에 단풍잎이 떨어졌다. 가을과 옛 성곽이 제법 잘 어울린다. 나무에 매달린 잎이 바람에 나부낄 때마다 햇빛이 산란한다. 무슨 여울 같다. 남산공원 남측 순환도로의 단풍을 만끽하며 야외식물원에 도착했다. 단풍 아닌 곳이 없으니 남산의 가을은 명불허전이다.


단풍 물든 길을 걷다

단풍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덕수궁 돌담길’이다. 덕수궁 정문인 대한문에서 출발해 궁궐의 돌담을 오른쪽에 두고 걷는 길은 해마다 걸어도 새로운 은행나무 단풍길이다. 궁궐의 돌담과 은행나무 노란 단풍은 고풍스럽게 잘 어울린다. 정동 제일교회의 붉은 벽돌과 소박한 창이 노랗게 물든 길에서 돋보인다. 음악인 이영훈의 노래비가 그 길 한쪽에 있다. ‘덕수궁 돌담길에 아직 남아 있어요~’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는다. 종착지는 옛 러시아 공사관 건물이다.

옛 러시아 공사관 건물.

동작구 동작충효길 1·2·3코스에도 가을이 가득하다. 동작역에서 출발해 한강 둔치에 내려앉은 가을 분위기를 만끽하는 길이 3코스다. 원래 3코스는 노량진역에서 끝나지만 중간에 노들역에서 동작충효길 1코스 고구동산길로 접어든다. 1코스는 고구동산과 서달산에 피어난 단풍을 즐기며 걷는 길이다. 1코스가 끝나면서 바로 동작충효길 2코스 현충원길이 연결된다. 현충원 담장을 따라 걸어서 동작역에 도착한다. 사실상 여기서 길은 끝나지만 약 500m 정도 떨어진 현충원에 들러 숙연하게 물든 가을 풍경 속을 거닐어보는 것도 좋겠다.

마포구 월드컵공원의 메타세쿼이아길, 하늘공원, 평화의 공원을 이어 걸었다. 이 코스대로 길을 걸으려면 당산역 7·8번 출입구 부근 당산역·삼성래미안아파트 버스정류장에서 9707번 버스를 타고 난지한강공원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는 게 좋다. 버스에서 내려 버스 진행 방향 반대로 조금만 걸으면 메타세쿼이아길 입구가 나온다. 하늘 높이 자란 메타세쿼이아와 이태리포플러 나무가 성벽 같다. 그 사이로 난 소실점이 보이는 흙길을 걷는다.

마포구 난지생명길 1코스. 형광빛으로 물든 단풍.

길은 하늘공원으로 이어진다. 하늘 아래 펼쳐진 넓은 억새밭이 온통 흰빛이다. 일렁이는 억새꽃 흰 물결 저 멀리 북한산의 자태가 희미하게 겹쳐진다. 하늘공원을 가장 크게 한 바퀴 도는 길을 다 걷고 평화의 공원으로 가는 계단으로 내려간다. 계단 위에서 평화의 공원이 한눈에 보인다. 울긋불긋 마지막 단풍이 불타오른다.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평화의 공원으로 들어가는 돌다리를 건넌다. 구불거리는 흙길을 따라 걷다보면 미루나무와 수양버들이 단풍 물든 나무와 어울린 풍경이 나타난다. 평화의 공원에서 나와 월드컵경기장으로 가는 길 주차장 부근 단풍나무 몇 그루가 도드라진다. 잎이 형광빛으로 물들었다. 그 아래 서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가을은 이렇게 의외의 장소에서 가장 빛날 때도 있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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