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히로부미가 쓴 ‘정초석’ 남아 역사 의미 되물어

유영호의 우리 동네 어슬렁 산책ㅣ소공동 일대

등록 : 2019-10-17 14:47 수정 : 2019-10-18 14:36

크게 작게

안중근 의사 하얼빈 저격 3개월 전

신축된 한국은행 본점 건물 벽에

이토가 직접 쓴 ‘정초’란 단어 그대로

‘치욕 역사 되풀이 말자’ 경고하는 듯

조선 태종 둘째딸 경정공주 출가 뒤

조선호텔 자리 살아 ‘소공주동’ 불려

화교촌 가리려 플라자호텔 세운 뒤

화교 아픈 역사도 기억의 뒤안길로


조선 태종은 둘째 딸 경정공주를 개국공신 조준의 아들 조대림에게 출가시키면서 지금의 조선호텔 자리에 아담한 집까지 지어주었다. 이 집이 작은공주댁, 소공주댁으로 불리면서 이 마을 이름 역시 소공주동, 소공동으로 불렸다. 또 다른 이름인 남별궁은 1593년 10월 선조가 피란 갔다 돌아온 이후 자주 이곳에 나가 명나라 장수와 관원들을 접견하고 요담하였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임진왜란 때 중국 사신이 머물던 태평관이 소실된 후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이 집에 머문 이래 중국 사신들의 숙소나 연회장으로 쓰였다고 한다.

지금은 이러한 조선시대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졌다. 다만 대한제국 환구단의 흔적 일부, 그리고 주로 일제강점기의 흔적과 박정희 시대 도시 개발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오늘은 이러한 소공동을 거닐어보기로 한다. 그 출발은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에서 시작해보자.

을지로입구역에서 소공동 방향으로는 롯데호텔과 롯데백화점 등 롯데그룹의 상징 같은 고층빌딩들이 들어서 있다. 소위 소공동 롯데타운은 롯데그룹이란 재벌이 탄생하면서 1970년 신격호 회장과 박정희 대통령의 만남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본래 롯데호텔 자리에는 당시 국내 최고 호텔인 반도호텔이 있었는데 이 호텔 건립과 관련해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진다. 일제강점기 흥남질소비료공장과 압록강 수풍댐 등을 소유한 당시 최대 거부 노구치 시타가우(1873~1944)가 조선철도호텔에 갔다가 허름한 작업복 차림 탓에 문전박대를 당하자 바로 옆에 4층의 그것보다 높은 8층 건물을 지어 자기 사무실을 5층에 두고 조선철도호텔을 내려다보며 업무를 보았다고 한다.

한편 롯데백화점 자리에는 일제강점기 식민지 착취를 위한 금융기관인 조선식산은행이 있었고, 이것이 해방 후 한국산업은행으로 바뀌었다. 또 그 뒤편에는 총독부도서관이 해방 후 국립중앙도서관으로 사용되다 1973년 남산어린이회관으로 이전하였다. 그런데 당시 롯데백화점이 허가 나는 과정은 불법을 합법으로 만든 기막힌 사연이 있다. 1970년대 말 강북억제정책에 따라 도심에는 백화점을 허가해줄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백화점 대신 쇼핑센터로 허가해준 것이다. 그래서 법인명은 ‘롯데백화점’이 아니라 ‘롯데쇼핑’이다.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의 전형이다. 또 롯데영플라자는 미도파백화점을 인수한 것인데, 미도파백화점 역시 일제강점기에 있던 조지야백화점 건물을 대농그룹이 인수하여 미도파백화점으로 연 곳이다.

롯데영플라자 남쪽에 있는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은 1908년 일본 제일은행의 경성지점으로 신축되었지만 1년 뒤 창설된 한국은행이 인수하면서 한국은행이 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2년 뒤에는 한국은행이 조선은행으로 개칭되면서 일제강점기 내내 조선은행 본점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니 해방 뒤 다시 한국은행이란 이름을 되찾은 셈이다. 건축 시기상 이 건물 정초석에는 ‘정초’(定礎)라는 글씨와 함께 ‘명치 42년(1909년) 7월11일 공작 이토 히로부미’라고 당시 조선통감 이토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토가 안중근 의사에게 같은 해 10월26일 하얼빈에서 저격당하기 3개월여 전 일이다. 현재 이토 히로부미 이름은 사라졌지만, 이토 히로부미가 쓴 ‘정초’라는 글자는 그대로 남아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역사는 기억하지 않으면 되풀이된다’고 경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토 히로부미의 이름이 새겨졌던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정초석.

이 건물 뒤편에는 한국은행 본관이 있는데 이 자리는 본래 현 서울대 치과대학이 1969년까지 있었던 곳이다. 1921년 세브란스의전이 치과의전 설립을 추진하자 이를 저지하고 관립 주도로 경성치과의학교를 먼저 설립하고 수업은 경성의전 부속병원에서 하다가 1929년 이곳에 독립건물을 신축한 것이다. 이것이 해방 후 의과대학과 치과대학이 나뉘는 전통이 되었다고 한다.

또 한국은행 본관 뒤편 공터는 부영그룹이 고층호텔을 건설하려는 곳이다. 이곳은 본래 1898년 대한제국 시기 고종이 유럽식 주택을 구입해 영빈관으로 사용했던 대관정이 있던 자리다. 하지만 불과 몇 년 뒤 러일전쟁으로 일본군사령관 하세가와가 사용했고, 일제강점기에는 현 남산도서관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경성부립도서관으로 쓰였다. 이뿐만 아니라 소공동은 일제강점기 그 지명조차 ‘하세가와마치’로 바뀌었다.

여기서 롯데영플라자 방향으로 조금 가면 주차타워가 있는데 이곳은 미군정 시기 조선공산당본부가 있던 곳이며, 군정청이 공산당 세력을 탄압하는 계기가 되었던 정판사 사건이 발생한 곳이기도 하다. 조선공산당은 1925년 중국요리점 아서원 2층에서 창립되었지만 그 건물은 사라지고 현재 롯데호텔이 들어서 있다. 정확한 위치는 환구단과 담을 맞대고 있는 롯데호텔 본관 서쪽 날개의 남반부이다.

다시 서울시민광장 쪽으로 걸으면 플라자호텔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건물은 건립 과정에 재미동포들의 뜻밖의 민원으로 시작된,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연이 있다. 이곳 소공동 일대는 당시 서울에서 가장 큰 화교촌이었다. 그런데 1966년 미국 존슨 대통령 방한 때 환영행사를 이곳 시청 앞 광장에서 열었는데 카메라가 이 일대를 비추는 과정에서 소공동 슬럼가가 노출되었고, 이를 위성티브이를 통해 관람한 재미동포 10만 명이 재개발 민원을 청와대에 제기한 것이다. 그 후 화교들에게는 화교회관 등 새로운 차이나타운을 조성하겠다는 거짓말로 그들의 토지를 모두 강제수용하고 플라자호텔이 들어선 것이다. 결국 이런 거짓말에 사과를 표하기 위해 당시 양택식 서울시장이 대만을 방문하기까지 했던 일화가 있다.

글·사진 유영호 <서촌을 걷는다>·<한양도성 걸어서 한바퀴> 저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