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꽃 피는 9월이면 평양냉면 맛 더욱 그리워

장태동 여행 작가의 서울에서 먹는 유명 냉면들

등록 : 2019-09-05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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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로 만든 평양냉면, 물이 차야 제맛

고구마 전분 면에 고명 올린 함흥냉면

조선 시대 양반가 음식이던 진주냉면

매운 냉면의 대명사 낙산냉면까지

여름은 가도 진한 육수 냉면은 남아

‘오장동흥남집’ 회비빔냉면.

냉면으로 유명한 고을인 평양, 함흥, 진주의 냉면이 서울에 모여 있다. 한국전쟁 때 피난 와 서울에 정착한 사람들이 만든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은 고향의 맛을 추억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조선 시대 말부터 광복 후 얼마까지 유명했던 진주냉면을 재현하기 위한 노력으로 탄생한 진주냉면도 서울에서 맛볼 수 있다.

보통 평양냉면과 진주냉면은 물냉면, 함흥냉면은 비빔냉면이다. 이들 냉면으로 이름을 떨치는 식당을 돌아봤다. 같은 음식도 사람마다 느끼는 맛이 다 다르니, 음식의 맛은 사람 수와 같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겠다. 지난주에 냉면집 13곳을 들렀다. 가는 곳마다 맛은 다 달랐고 손님은 많았다. 단골들은 지극히 주관적인 입맛의 공통분모다. 벌써 몇몇 집 냉면 맛이 그리워지니, 두고 온 고향 오래된 추억의 맛을 찾아 오늘도 그 집의 그 냉면을 찾는 사람들 마음을 짐작할 뿐이다.


# 함흥냉면

‘원조함흥냉면집’ 회냉면.

이번에 돌아본 식당 중 함흥냉면 파는 가장 오래된 곳은 중구 ‘오장동흥남집’과 종로구 예지동 ‘원조함흥냉면집’이다. 두 곳 모두 1953년에 문을 열었다.

오장동흥남집은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면에 간재미회무침을 고명으로 올린 회비빔냉면과 쇠고기를 올린 고기비빔냉면, 두 가지 고명을 함께 얹은 섞임냉면으로 유명하다. 냉면이 나오면 식탁에 있는 설탕, 겨자, 양념장, 참기름, 식초 등을 기호에 따라 넣어 먹는다.

원조함흥냉면은 북한 함경남도 신포 사람이 첫 주인이었다. 1972년 지금 주인이 인수했다. 옛 주인은 지금 주인(할머니) 친구의 아버지였다. 식당을 넘겨받을 때 냉면 맛을 내던 부엌 사람들도 그대로 남았다. 그 조리법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고구마 전분으로 면을 만든다. 냉면은 회냉면, 고기냉면, 물냉면이 있는데 회냉면에는 홍어회무침을 고명으로 얹는다.

‘함흥곰보냉면’ 회냉면.

종로구 인의동에는 ‘함흥곰보냉면’이 있다. 1964년에 문을 열었다. 첫 주인은 북한에서 냉면을 만들던 사람이다. 한국전쟁 때 피난 와서 냉면을 만들다가 ‘곰보냉면’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식당을 내게 된 것이다. 곰보냉면이라는 이름은 얼굴에 마마(천연두) 자국이 남아 있었던 주인이 고민 끝에 지은 것이다. 현재 주인이 1987년에 인수해서 지금에 이른다. 고구마 전분으로 면을 만든다.

영등포구 영등포동3가에 ‘함흥냉면’이라는 상호로 1967년부터 냉면을 파는 집이 있다. 함경도 흥남이 고향인 주인이 회냉면, 비빔냉면, 물냉면을 내걸고 장사를 시작했다. 고구마 전분으로 면을 만든다. 비빔냉면의 양념장이 오장동흥남집이나 예지동 원조함흥냉면집보다 진하다.

‘함흥냉면’ 고기비빔냉면.

중구 장충동2가에는 1996년부터 시작한 ‘함흥에 겨울냉면’이 있다. 차림표에 적힌 냉면은 물냉면, 회냉면, 비빔냉면, 쟁반냉면 등이다. 비빔양념장이 진하고 감칠맛이 돈다.

‘함흥에 겨울냉면’ 회냉면

# 평양냉면

지난주 내내 냉면집을 다니며 만난 사람 중 한 명에게 옛날 평안도 가정집에서 냉면 해 먹던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몇몇 가정에 냉면 면발을 뽑는 기구가 있었다. 메밀가루로 면을 만들고 국물을 내서 냉면을 만들어 먹었다. 냉면 국물을 만드는 재료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꿩고기, 동치미 등 다양했다. 그중 한 가지로만 국물을 낼 때도 있고, 여러 가지를 섞어서 국물을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국물 만들 때 썼던 재료를 고명으로 올린다.

평양냉면을 파는 식당 중 가장 오래된 곳은 평안도 사람이 1946년에 문을 연 중구 주교동 ‘우래옥’이다. 소고기로 국물을 만든다. 다른 식당 평양냉면보다 육수가 진하다. 메밀과 고구마 전분을 섞어서 면을 만든다. 고춧가루가 아닌 고추 간 것과 겨자, 식초를 기호에 따라 넣어 먹는다.

‘우래옥’ 전통평양냉면

중구 충무로14길 ‘을지면옥’과 중구 필동3가 ‘필동면옥’의 주인은 한 집안이다. 그래서 그런지 평양냉면 맛도 비슷하다.(개인적으로는 필동면옥 육수가 조금 진하게 느껴졌다.) 평양냉면 애호가이자 식당을 운영하는 지인의 조언을 얻어 을지면옥에서는 돼지고기 편육도 함께 먹었다. 그의 조언은 적중했다. 냉면 국물은 돼지고기와 소고기로 만든다. 아무것도 넣지 않고 처음 나온 그대로 먹는 게 입에 맞았다. 면도 직접 뽑는데, 메밀과 고구마 전분을 섞어 만든다. 햇메밀로 면을 만들고 물이 차야 제맛이 나니 평양냉면의 제철은 겨울이란다.

‘필동면옥’ 냉면(평양냉면).

중구 장충동 ‘평양면옥’은 평양에서 ‘대동면옥’을 운영하던 집안에서 문을 열었다. 다른 식당에서 평양냉면을 먹을 때와 다르게 이집 평양냉면은 식초와 겨자를 넣어 먹는 게 입에 맞았다.

50년 가까운 역사의 마포구 염리동 ‘을밀대’도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집이다. 냉면 국물이 다른 식당보다 옅다.(국물 맛이 을밀대, 을지면옥, 필동면옥, 평양면옥, 우래옥 순으로 뒤로 갈수록 진하게 느껴졌다.) 국물에 살얼음이 떠 있는데, 너무 차가우면 국물 맛이 덜 느껴진다. 살얼음이 녹을 때까지 천천히 맛을 즐기며 먹는다. 국물은 소고기, 채소 등을 넣고 만든다. 면은 메밀과 고구마 전분을 섞어서 뽑는다.

‘평양면옥’ 냉면(평양냉면).

# 진주냉면

오래전 진주를 여행할 때 진주냉면을 처음 맛봤다. 진주냉면의 역사는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주냉면은 조선 시대 양반가에서 해 먹던 특별한 음식이기도 했으며, 일제강점기 때에는 기방 음식으로 유명했다고 전한다. 해방 이후에도 진주냉면의 맥은 이어졌고, 진주 옥봉동 주변 기방으로 냉면을 배달하는 것을 봤다는 사람도 있었다.

1930년대 진주 중앙시장에 여러 냉면집이 있었는데, 그중 한 식당에서 냉면 만드는 기술을 배운 고 하거홍씨가 1945년에 ‘부산식육식당’을 차리고 진주냉면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그리고 고 하거홍씨의 장남인 하연규씨와 부인 박군자씨가 연 식당이 전국 체인점인 ‘박군자 진주냉면’이다. 그리고 고 하거홍씨의 딸인 하연옥씨도 ‘하연옥 냉면’의 문을 열었다.

박군자 진주냉면에서 소개하는 진주냉면의 유래에는 고 하거홍씨가 진주 교방에서 만들던 진주냉면의 원형을 알고 있다고 적혀 있다. 서울에서는 송파구 방이동에 있는 ‘박군자 진주냉면 송파점’에서 그 맛을 볼 수 있다.

박군자 진주냉면 송파점에서 물냉면을 맛봤다. 달걀 지단과 육전이 고명이다. 멸치와 다시마 등 여러 해산물과 소 사골을 넣고 육수를 우린다고 한다. 평양냉면과 아주 다른 맛이다. 국물 맛이 상대적으로 깔끔하다.

‘박군자 진주냉면’ 물냉면.

평양냉면도, 함흥냉면도, 진주냉면도 아닌 냉면이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서울에서 맥을 잇고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매운 냉면으로 소문난 종로구 창신1동의 ‘낙산냉면’이다. 매운맛을 얼큰이, 낙산냉면, 덜 매운 냉면, 순한 냉면 등 네 단계로 나눴다. 매운맛은 청양고춧가루의 양으로 조절한다. 밀가루와 메밀, 감자녹말 등으로 면을 만든다. 채 썬 오이가 듬뿍 들어간다. 낙산 산기슭 동네에서 시작해 2007년에 지금 자리로 옮겼다.

주변에 있는 ‘깃대봉냉면’도 매운 냉면으로 이름난 집이다. 매운맛을 여섯 단계로 나누었다.

‘낙산냉면’ 낙산냉면.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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