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추억 묻어나와 살아 있는 박물관이 되다

종로구 돈의문박물관마을

등록 : 2019-07-2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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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위기 마을에 갖가지 ‘기억’ 전시

여관은 예술가 작품 전시 공간 되고

칼국숫집 간판, 아직도 손님 맞는 듯

전자오락실·만화방엔 늘 사람 몰려

돈의문박물관마을 내 한옥 골목. 아무것도 없는 한옥 골목 그 자체가 박물관이다

전자오락실 갤러그의 추억, 만화방의 추억, 사방치기 골목의 추억 등 어린 시절 해 지는 줄 모르고 친구들과 놀던 추억이 있는 어른이라면 돈의문박물관마을에 가서 추억 놀이에 푹 빠져보시길….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지금 막 추억을 만들어가는 아이들과 함께 놀기 좋은 박물관이다.

박물관이 된 마을


여기 박물관이 된 마을이 있다.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2가, 이른바 ‘새문안 동네’. 한양도성의 서쪽 문인 돈의문은 1396년 건립 이후 20년이 채 안 돼 폐쇄되었다가 다시 지어졌다. 이때부터 돈의문은 새로 지은 문이라는 뜻의 ‘새문’(新門)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돈의문 안쪽 동네도 새문안 동네가 되었다.

1960~1970년대 새문안 동네는 한옥 주택가였다. 1970년대 이후 주변에 병원과 교육청 등이 들어서고 직장인들이 많아지자 한옥 주택가에 식당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새문안 동네는 주택가에서 식당 골목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점심시간이면 새문안 동네 골목에 있는 식당들은 만원이었다. 칼국수, 곰탕, 추어탕, 삼계탕, 순두부, 중국 음식, 고기구이, 파스타 등 식당마다 특화된 음식으로 손님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2003년 돈의문 뉴타운 지역으로 선정된 새문안 동네는 전면 철거될 위기에 빠지는데,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돈의문박물관마을로 다시 태어났다. 새문안 동네에서 살던 사람들, 동네 골목 식당 단골들이 추억을 찾아 박물관이 된 마을을 찾는다. 골목의 추억이 있는 사람들이 현실에 재현된 옛 풍경을 찾아 이곳을 찾는다.

그 골목에 있던 ‘서대문여관’은 주로 기업이나 공공기관에 교육받으러 온 사람들이 숙소로 이용했다. 지금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되어 기발한 상상력과 예술의 향기 짙은 공간이 되었다.

큰 나무 아래 지붕 낮은 집, 낙엽 쌓인 마당이 고즈넉했던 ‘LP BAR’는 현재 생활사 전시관이 되어 1960~1980년대 일반 가정집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을이 된 박물관

사람들이 살던 옛 골목에는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골목의 추억은 마을 전체를 살아 있는 박물관으로 만든다. 주말이면 수천 명이 찾아오는 이곳은 그래서 또 다른 의미의 마을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옛 클럽을 본따 만든 곳. 어른들이 기념사진을 많이 찍는 곳이기도 하다.
마을에 남아 있던 생활의 편린들이 전시관에 전시됐다. 칼국수를 맛있게 끓여내던 ‘문화칼국수’의 간판과 칼국수 사진이 아직도 손님을 맞이하는 듯하다. ‘한양삼계탕집’ 장부에 적힌 빼곡한 숫자들은 음식을 먹은 날짜와 가격이다. ‘한정 식당’에서 사용하던 금전등록기도 보인다. 손님들에게 영수증을 끊어주고 일일 매출 금액을 정산하던 기계다. 1994년부터 2013년까지 이탈리안 레스토랑 ‘비스’에서 사용하던 메뉴판과 그릇도 보인다. 서대문여관의 방 번호, ‘신라장’ 여관의 방 열쇠와 전화기도 있다. 이런 전시품들을 볼 수 있는 돈의문 전시관은 새문안 동네에서 유명했던 레스토랑 ‘아지오’와 한정 식당 건물이다.

전시관에서 단연 눈에 띄는 건 홍파동 건물 모형이다. 홍파동의 골목과 집들을 그대로 축소해서 모형을 만든 것인데, 동네 골목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와 뛰어노는 아이들, 개와 고양이, 나무들도 재현했다.

100년이 넘은 골목에 있던, 1930년대에 지은 목조주택은 180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 골목 놀이의 변천사를 알아볼 수 있는 곳이 됐다. 1930년대 중반에 아이들은 성냥집기라는 놀이를 하고 놀았다. 성냥 15개를 꺼내놓고 서로 번갈아서 한 번에 세 개까지 가져갈 수 있는데, 마지막 한 개를 집는 차례가 되는 사람이 지는 놀이다. 두꺼운 종이에 계란을 끼워넣을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을 낸 뒤 거기에 계란을 끼워 넣고 종이를 붙여 팽이를 만들어 놀던 추억의 기록도 있다. 건물 안 바닥에는 사방치기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누구나 놀 수 있다. 작은 방은 앉아서 놀 수 있는 공간이다.

돈의문 전시장에 있는 홍파동 골목 모형.

추억의 오락실, 그리고 아이들의 체험 공간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추억의 오락실이다. 전자오락실이라는 간판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공간을 그대로 재현했다. 갤러그와 테트리스, 오락실 게임의 추억이 있는 어른이라면 전자오락실에서 마음 놓고 추억 속으로 빠져봐도 좋겠다. 그 옛날 마지막 남은 동전 한 닢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게, 이곳에서 모든 오락은 공짜다. 오락실 위층은 만화방이다. 누구나 마음 놓고 만화를 볼 수 있다.

1960~1970년대 이발소를 재현한 ‘삼거리 이용원’도 아이들 손잡고 온 엄마 아빠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어릴 적 이발소 의자에 앉으면 머리가 의자 등판 아래에 묻히기 때문에 팔걸이에 나무판을 올려놓고 그 위에 앉았다. ‘착착착’거리며 가위가 지나간 자리는 어느새 깨끗하고 단정하게 머리가 깎여 있었다. 양철로 만든 ‘조루’에 물을 담아 머리를 감고 나면 어찌나 시원했던지…. 엄마 손잡고 이발소를 나서면 지나가는 바람에 머리가 시원하고 비누 향기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이발소의 옛 추억을 더듬으며 ‘새문안 극장’으로 발길을 향한다. 우리나라 영화사를 정리한 1층을 돌아보고 2층으로 올라가서 영화를 본다. 요일별, 시간대별로 영화가 상영되는데, 만화영화와 추억의 옛 영화들을 볼 수 있다.

옛 이발소를 재현한 곳.

“뻥이요”라는 소리와 함께 튀밥이 튀겨지는 골목 벽화도 재미있다. 시민갤러리는 시민 수집가를 선정해 그들이 수집한 물품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공유된 개인의 추억은 그 시절을 말해주는 살아 있는 역사다.

독립운동가의 집은 1919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전시관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독립운동가도 볼 수 있다.

한옥과 한옥 골목으로 조성된 곳은 체험활동(유료)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화전을 만들어보고 차도 마실 수 있는 곳, 부채 캘리그라피 등 미술 체험, 새 인형 만들기, 자수공예, 한지공예 등을 체험할 수 있다. 그곳에 있는 ‘명인갤러리’에서 우리 한복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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