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도 정도 듬뿍, 가격까지 착해

재래시장의 맛집을 찾아서

등록 : 2019-06-13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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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허허로울 때

시장을 찾는다

왁자지껄 난장의 활력으로

마음을 채운다

용문시장 창성옥 해장국(왼쪽)과 희경이네 비빔냉면(오른쪽).

마음이 허허로울 때면 시장을 찾는다. 왁자지껄 난장의 활력으로 마음을 채운다. 허기가 몰려오면 머릿속에 맴도는 음식들을 하나하나 생각하며 시장 골목을 누빈다. 녹록지 않은 세상살이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풀어내는 시장 선술집은 사랑방이다. 서울시에 있는 재래시장 예닐곱 곳을 돌아보았다.

용산구 용문시장과 동작구 흑석시장


70여 년 역사의 ‘창성옥’이 용문시장 한쪽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용문시장 한 귀퉁이에서 연탄불로 달걀프라이를 부치던 집이다. 그 집 해장국은 사골과 된장으로 국물 맛을 낸다. 소뼈에 선지, 배추가 들어간다. 파가 들어간 양념장은 해장국의 맛을 진하고 풍부하게 한다.

용문시장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희경이네집’이 나온다. 1974년에 처음 문을 연 집이다. 떡볶이, 순대, 잡채, 김밥, 만둣국, 떡국, 순댓국 등을 팔았다. 잡채 한 접시에 50원, 만둣국 한 그릇에 75원 했다. 인근 인형 공장, 가발 공장, 옷 만들고 수선하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단골이었다. 오래전에 사라진 용산 청과물시장도 매상 올리는 데 한몫했다.

희경이네집은 옛 분위기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장판을 깐 긴 식탁, 긴 의자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먹는다. 지금도 순댓국, 냉면, 비빔밥, 국수 등을 판다. 닭발, 꼼장어, 오돌뼈, 제육볶음 등 예나 지금이나 인기 있는 포장마차 안주의 전형을 맛볼 수 있다. 요즘 순댓국에서 보기 드문 오소리감투(돼지 위장)와 곱창도 들어 있다. 옛 순댓국 딱 그 맛이다. 비빔냉면 고명에 오이, 무와 함께 열무김치도 보인다. 거칠면서도 진한 옛 시장냉면 그 맛이다. 맛도 맛이지만 희경이네집 옛 분위기에 마음이 촉촉해진다.

흑석시장 수목식당 라제비.

용산에서 한강대교를 건너면 동작구 흑석동 흑석시장이 있다. 재개발로 재래시장의 규모가 많이 줄었지만 옛 시장 분위기가 남아 있는 곳이 있다. 옛 명성을 이어오고 있는, 가마솥 걸고 순댓국을 파는 몇 집과 ‘수목식당’을 들렀다. 수목식당은 분식집인데, 젊은 사람들은 라제비(라면에 수제비를 넣어 끓인 것), 나이 든 사람들은 칼국수를 좋아하는 편이다. 비빔국수는 별미다. 순대 골목에 있는 한식당은 보리비빔밥과 얼큰한 칼국수를 파는데, 강원도 장칼국수 맛이 비친다. 국수를 다 먹고 밥을 말아 먹는다. 하나로마트 입구 맞은편에서 호떡과 전을 부쳐 파는 할머니는 흑석시장을 지키는 터줏대감 중 한 분이다.

중구 남대문시장과 종로5가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뒷골목 식당들

동대문종합시장 서쪽, 종로와 청계천 사이 좁은 골목은 먹을거리의 보고다. 그 첫머리에 생선구이집들이 즐비하다. 생선 굽는 냄새가 가득한 골목을 지나다보면 닭한마리집들이 이어진다. 닭을 삶아 양념장에 찍어 먹고 국수를 넣어 끓여 먹는다.

골목을 따라 가다 신진시장 곱창집들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나면 ‘○○공구’ ‘○○기계’라는 간판이 길 양쪽에 줄줄이 이어진다. 등산용품과 아웃도어 용품 등을 파는 골목을 지나 도로를 건너면 광장시장이다.

광장시장 마약김밥.

광장시장에서 마약김밥으로 시장기를 달래고 시장 구경을 한다. 빈대떡, 고추장불고기, 떡볶이, 죽, 육회, 순대…. 먹을거리들이 넘쳐나는 골목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그중 칼국수와 만둣국을 파는 골목을 지난다. 설설 끓는 육수 옆 도마에서 칼국수 면발 써는 소리가 경쾌하다.

광장시장 서쪽 이른바 ‘시계 골목’에는 오래된 함흥냉면집이 있다. 골목 구경을 하며 도착한 세운상가, 그 서쪽 좁은 골목 식당 앞에 50년이 넘었다는 간판이 보인다. 닭도리탕으로 유명한 ‘계림식당’이다. 마늘 맛이 진하기로 소문났다. 국물과 마늘 맛의 조화가 예사롭지 않다. 그 국물에 국수를 삶아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 골목에 대구탕, 순댓국, 삼겹살 등을 파는 식당들이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채 어깨를 맞대고 있다.

남대문시장.

남대문시장에는 갈치조림 골목, 칼국수와 보리밥 골목 등 유명한 음식 골목이 있다. 갈치조림 골목에 1962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식당 ‘닭진미’(옛 강원집)집이 있다. 닭곰탕이 유명하다. 양은냄비에 끓여 나온다. 기호에 따라 먹는 방법이 다르지만 닭고기를 결대로 찢은 뒤 냄비에 밥을 말아 먹는다. 식당 한쪽에서는 손님상에 올릴 닭고기를 손질하고 있다.

마포구의 두 시장과 강북구 수유시장

마포구 망원동 망원시장은 시장 골목 분위기가 젊고 밝고 활기차다. 시장 상인회에 따르면 망원시장은 70년대에 형성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옛 성산시장으로 가는 길목에 생겨난 시장이었다. 지금의 망원역에서 망원시장을 오가는 길목에 시장이 생기는 것과 같은 셈이다. TV 유명 프로그램에 소개된 뒤 널리 알려졌다.

망원시장 크로켓(왼쪽)과 닭곰탕(오른쪽).

망원시장의 먹을거리 중 콩나물비빔밥, 닭곰탕을 맛보았다. ‘고향집’은 저렴한 가격에 한 끼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오후 2시30분에도 식당에 자리가 없다. 혼자 앉은 자리에 겸상을 했다. 상을 나눠준 그 사람은 칼국수를 먹고 있었다. 칼국수도 콩나물비빔밥도 2500원이다. 밥을 담고 콩나물을 올린 큰 사발을 받았다. 기호에 따라 식탁에 있는 고추장과 양념간장을 넣어 비벼 먹는다. 아삭거리며 씹히는 콩나물과 밥, 양념간장과 고추장이 어울린 맛에 한 그릇 뚝딱이다.

닭곰탕집 간판 자리에 ‘혜성유통’이라고 적혔다. 닭곰탕이 5천원이다. 국물 한 모금 쭉 들이켜는데 한약 먹는 기분이다. 식당 벽 한쪽에 황기, 엄나무, 오가목, 천궁 등을 넣고 국물을 만든다는 글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 크로켓(‘고로케’)을 파는 상점이다. 원조야채, 매콤야채, 고구마카레, 김치, 잡채, 감자 크로켓 등 종류가 다양하다. 크로켓과 꽈배기, 도넛 몇 개 등 다해서 열댓 개를 샀는데 6500원이 나왔다.

아현시장.

마포구 아현동 아현시장은 전(부침개) 골목이 유명했다. 전집 대여섯 곳이 시장 초입과 골목 안쪽에 있었는데 지금은 세 집밖에 없다. 그 세 집이 전 골목의 옛 명성을 잇고 있다. 그중 한 집 ‘늘푸른식당’을 찾은 것은 가뭄 끝에 고마운 비가 오던 날이었다. 비 내리는 소리와 전 부치는 소리가 화음처럼 어울린다. 식탁마다 주고받는 말 속에 사연들도 참 많다.

아현시장 전집.

사랑방 같은 시장 선술집은 강북구 수유동 수유시장에도 있다. 시장 안에 아예 ‘선술집 골목’이라는 간판을 단 골목이 있다. 그 안에 포장마차 같은 여섯 집이 줄줄이 이어져 있다. 떡볶이 같은 분식을 팔다가 선술집으로 종목을 바꾼 곳이다. 옆 사람들과 긴 의자를 나눠 앉는다. 눈앞 냄비에서 홍어찜이 완성된다.

수유시장은 다른 시장에 비해 홍어 요리를 파는 곳이 많다. 시장 구경을 할 때 홍어무침 파는 아줌마가 집어준 홍어무침 맛이 입안에 맴돈다. 돼지 껍데기로 대신하며 소주 한잔 따른다. 옆에 앉은 아저씨도 건너편 아줌마도 어느새 말동무가 됐다. 어둠이 내리는 사이 선술집 불빛이 밝아진다.

수유시장에서 유명한 만둣집.

수유시장에서 유명한 해장국(왼쪽)과 홍어무침(오른쪽).

수유시장.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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