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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P 지붕에 오르자 우주선 조종사가 되었다

등록 : 2019-05-23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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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P 개관 5주년 언론에 첫 공개된 옥상 탐방

24~25일 지붕 등 미개방 공간 일반에 최초 공개

지난 9일 오후 <서울&>취재진(왼쪽 둘째)이 서울디자인재단 관계자들의 안내를 받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살림터와 배움터 사이 지붕 위를 걷고 있다.

좁은 철제 사다리를 기다시피 올라 지붕 위로 몸을 내밀었다. 둥그스름한 지붕 위에 서자 미끄러질 것 같은 느낌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지붕을 덮은 각각의 알루미늄 패널마저 평면이 아닌 곡면이어서 아찔함이 더 했다. 서둘러 지붕 한가운데 이어진 쇠줄에 안전벨트의 고리를 걸었다. 그제야 S자를 이루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디디피)의 전체 윤곽이 눈에 들어왔다. 360도 에워싼 고층 빌딩들을 둘러보면서 도시에 불시착한 거대한 우주선의 비행사가 된 듯했다.

서울디자인재단과 오픈하우스서울은 디디피 개관 5주년을 맞아 24일과 25일 이틀 동안 네 차례 진행하는 스페셜 투어에서 지붕 등 미개방 공간을 일반에 최초로 공개한다. 자하 하디드는 디디피 초기 설계안에서 잔디 언덕을 거쳐 지붕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디자인했지만, 알림1관의 전시와 컨벤션을 위해 층고를 더 높이면서 잔디언덕과 단절된 지붕은 지금까지 미지의 공간으로 남게 됐다. 스페셜 투어에서는 지붕뿐 아니라 거대한 돔 안에 기둥이 없는 무주 공간을 실현한 프레임, 육중한 설비 기계로 가득한 기계실, 동맥처럼 이어지는 풍도(바람 통로)까지 디디피의 숨은 공간 곳곳을 탐색하게 된다. 이번 스페셜 투어는 지난 17일 오후 2시 접수 수분 만에 마감될 정도로 관심을 끈다.

<서울&> 취재진은 이에 앞서 지난 9일 오후 서울디자인재단 관계자들의 안내를 받아 지붕 위, 알림관 지붕 하부 공간, 종합상황실, 미래로 상부 등을 돌아봤다. 지붕에 오르기에 앞서 고리가 달린 안전벨트와 안전모를 착용했다. 살림터 지붕으로 올라간 뒤 쇠줄을 따라 배움터 지붕으로 이동했다. 살림터와 배움터 사이는 S자 가운데 가장 급격하게 휘어진 부분이라 세계 최대 규모의 3차원 비정형 건축물인 디디피를 실감하며 걸을 수 있었다.

배움터 지붕 일부와 알림터 지붕 대부분은 알루미늄 패널 대신 잔디밭 같은 녹지대가 덮고 있었다. 지붕 면적의 40%인 9080㎡(2750평)로 단일 건물 녹화 규모로는 아시아 최대다. 섬기린초, 금강기린초, 리플렉섬, 파랑세덤, 땅채송화 등 세덤류가 가득했다. 이진영 서울디자인재단 책임은 “지금은 노란색인 세덤류가 가을이 되면 선명한 붉은 색으로 단풍이 드는 등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연출한다”며 “지붕에 녹지대가 있는 공간의 온도 저감 효과가 알루미늄 패널로 덮인 곳보다 2~5배가량 높다”고 설명했다.

24일 스페셜 투어 ‘새로운 질서의 패러다임, 자하 하디드’를 안내할 이정훈 건축가(조호건축)는 “자하 하디드의 디디피는 최첨단 설계 방식과 시공 방식이 결합한 시대사적 성과물”이라며 “한국의 가장 복잡한 도시의 단면 속에 있는 디디피의 가장 큰 매력은 우리가 만들어온 질서와 앞으로 이끌어갈 질서에 대해 질문을 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평가했다.


“하디드 쪽, 각도기로 틀리면 부수고 다녔다”

5년간 ‘산고’ 끝에 낳은 시대사적 성과물

“컨테이너는 서울시·설계자·시공사의 전쟁터”

배움터 지붕 일부는 알루미늄 패널 대신 세덤류가 자라는 정원이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그러나 시대사적 성과물이 나오기까지 치열한 ‘전쟁’이 있었다. 박진배 서울디자인재단공간운영팀장은 “디디피가 완공될 때까지 공사 현장은 서울시와 설계사무소, 시공사의 전쟁터였다”고 기억했다. 디디피를 운영하기 위해 2009년 3월 출범한 서울디자인재단의 건축과장으로 2009년 착공부터 2014년 3월21일 개관할 때까지 5년 동안 공사 현장을 지켰다.

“디디피 건축의 세 주체인 서울시와 설계사무소, 시공사는 이해관계가 다 달랐기 때문에 현장의 컨테이너 안은 5년 내내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이 반복되는 전쟁터였습니다. 서울시는 건설 비용을 줄이면서 공정도 맞춰야 하고, 시공사인 삼성건설은 이 건물을 레퍼런스(기준)로 만들겠다는 의욕은 있었지만 설계자인 자하 하디드 쪽에서 실현할 수 없는 걸 하라고 하니까 미치는 거죠.”

2009년 10월 공원 부분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먼저 문을 열었다. 서울성곽과 동대문역사관, 동대문유구전시장, 동대문운동장기념관, 이벤트홀, 디자인갤러리 등으로 구성된 공원을 만들면서 3주체는 혹독한 실패를 맛봤다. “먼저 개장한 공원부에서 실패 사례를 다 겪었어요. 재료에 대한 실패, 공법에 대한 실패 등 경험을 다 해본 거예요. 노출 콘크리트라든가 유리, 조경, 내장재 등 자하 하디드가 제안한 모든 건축 재료가 처음에 다 안 됐어요. 우리는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것들이 많았어요. 외국에서는 성공한 사례도 있었는데, 한국 실정과 한국 업체의 생산 수준이 대부분 못 따라간 겁니다.”

건물의 안팎 대부분이 곡면과 사면인 설계안을 실현하는 작업은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서울시는 사업의 시작부터 마무리 단계까지 전체 공정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관리하기 위해 설계자가 시공 과정에 참여해 건설 공사가 설계도면과 시방서에 따라 적합하게 진행되고 있는지 감독하는 ‘시에이(CA) 제도’를 도입했다. “시에이 제도 때문에 자하 하디드 쪽 서명이 없으면 다음 공정으로 넘어갈 수 없었어요. 자하 하디드 설계사무소에서 파견한 에디 캔이 현장에서 각도기를 갖고 다니며 조금이라도 틀린 건 부수고 다니는 바람에 공사 관계자들에게 공공의 적이었죠.”

그 치열한 전쟁의 결과, 디디피가 탄생했다. 웬만하면 좋게 말하는 법이 없고 까다롭기로 유명한 자하 하디드가 직접 둘러본 뒤“세계 최고 수준이다. 더할 나위 없이 만족한다”고 할 정도였다. “디디피가 참 운이 좋은 건물입니다. 관에서 하는 공사가 디디피처럼 디자이너에게 힘을 실어준 경우가 없어요. 공사 팀은 한국에서 가장 좋은 팀이 들어왔고, 감리하는 절대 권력을 감리회사에 줬으며, 운영 기관인 서울디자인재단이 그 콘셉트를 계속 이어가고 있으니까요.”

박 팀장은 마지막으로 에디 캔이 건축 과정을 산고의 고통에 비유한 말을 전했다. “아이는 한 사람이 열 달의 고통을 거쳐 낳지만, 건축물은 열 명의 산모가 하나의 아이를 낳는 과정이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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