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성의 LP 이야기

김민기와 이주원이 인정한 70년대 무명 포크 가수

비운의 가수 윤지영

등록 : 2019-04-11 16:20 수정 : 2019-04-1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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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석 장의 독집 앨범만 발매

김민기 곡이 다수 수록된 2집

기지촌의 원곡 수록돼

고가에 거래되는 희귀 앨범

윤지영 1집 <내 노래에 날개가 있다면> 커버, 1973년, 성음.

가수 ‘윤지영’을 기억하는지? 이름만으로는 여자 가수로 오인할 소지가 있는데, 실제로 동명의 여자 가수가 몇 명 있다. 오늘 소개하려는 윤지영은 70년대에 활동했던 남자 가수다. 활동을 중단한 지 오래인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그가 남긴 음반은 대중가요 LP 수집가들에겐 고가에 거래되는 희귀 앨범으로 대접받는다.

윤지영은 독집 석 장을 남겼다. 1973년 발매한 1집, 1974년 발표한 2집은 한국 포크의 전설 김민기가 관여했고, 1978년 발매한 3집은 ‘따로또같이’의 리더 고 이주원의 작품집이다. 이렇듯 중요 창작자들과 협업하며 의미심장한 앨범을 발표했고, 그의 노래 중엔 리메이크되어 빅히트한 곡도 있기에 그의 존재가 대중의 기억에서 거의 지워진 현실은 재앙에 가깝다. 인터뷰 기사조차 찾기 어려운 윤지영의 희귀 앨범을 소개하려면 조각 정보들을 맞춰나가는 어려운 퍼즐 게임을 벌여야 한다.


윤지영의 대표곡 ‘내 노래에 날개가 있다면’

윤지영의 첫 독집은 1973년 성음제작소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음반은 윤지영을 포함해 김민기·김인배·김성진 등이 창작과 편곡에 참여했다. 번안곡과 ‘봉봉사중창단’의 노래까지 수록된 것은, 무조건 앨범 개념으로 음반을 발매했던 당시 국내 가요계의 관행으로, 짐작하건대 상업적 고려와 더불어 실을 곡이 부족했을 가능성이 크다.

앨범은 첫 곡 ‘내 노래에 날개가 있다면’의 휘파람과 통기타 선율로 문을 연다. 윤지영의 존재를 당대 청년과 청소년들에게 알린 첫 히트곡이자 그의 대표곡이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모티브로 삼아 윤지영이 작사 작곡한 이 노래는 수록곡 중 유일한 그의 창작곡이다. 70~80년대 대중가요에 익숙한 동시대 청자나 70년대 한국 포크송에 관심이 많다면 각종 포크 컴필레이션(편집) 음반을 통해 이 노래를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사실 이 노래는 윤지영의 오리지널 버전보다 ‘나비소녀’로 유명한 김세화 버전이 더 친숙하다. 김세화는 윤지영 1집이 발매된 지 5년 뒤인 1978년에 이 노래를 리메이크해 원작보다 더 큰 히트를 기록했다. 김세화 이전에도 이영식과 한정식이 먼저 리메이크했고 황은미-문재치, 이경화에 이어 고 이주원의 아내인 샹송 가수 전마리도 1991년 자신의 2집에서 이 노래를 프랑스어로 커버해 화제를 모았다. 또한 ‘내 노래에 날개가 있다면’은 1992년 선천적 음치의 열등감을 그렸던 MBC 베스트극장 <뭐뭐>의 드라마 주제가로도 쓰였다.

윤지영의 노래가 수록되었거나 부른 가수들의 앨범 모음.

희귀한 비틀스의 커버곡이 수록된 앨범

1집에 수록된 비틀스 번안곡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틀스 관련 노래는 저작권 관리가 철저해 국내에서 번안곡의 수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회상’의 원곡은 비틀즈의 초기 곡 'ALL MY LOVING'이다. 비틀즈의 활동 초기인 1963년 'With The Beatles' 앨범에 수록된 이 팝송은 국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내 마음 나도 몰라’도 비틀스 커버곡이다. 원곡은 비틀스의 명곡 ‘섬싱’(something)이다. 이들 번안곡에서 윤지영은 포크송을 노래할 때의 담백한 창법과는 다른, 감정 처리가 화려한 창법을 구사한 점이 흥미롭다.

사실상 김민기의 작품집인 2집

윤지영 2집 <고향 가는 길> , 1974년, 오아시스레코드.

1집에서 김민기의 창작곡 ‘친구’와 ‘잘가요’를 노래한 윤지영은 2집을 사실상 김민기 작품집으로 구성했다. 1974년 오아시스레코드에서 제작한 2집 <고향 가는 길>이 전설적인 포크 명반으로 회자되는 이유는 ‘금지의 대명사’였던 김민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유통되지 못하고 사장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2집은 70년대 포크의 전형을 보여주는 앨범은 아니다. 윤지영은 심플한 통기타 연주보다 오케스트라를 이용한 풀 세션의 스케일 큰 음악을 선호한 가수였다. 그런 점에서 숨겨진 70년대 스타일의 담백한 포크 명반을 기대하는 이들에게는 가요풍의 노래가 살짝 아쉬울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2집은 매력 있다. 이 음반에는 넉 장으로 구성된 김민기 앨범(1993년)에 수록된 노래들의 첫 버전이 대거 담겨 있기 때문이다. 총 12곡 중 윤지영이 작곡한 ‘내 노래에 날개가 있다면’ ‘초겨울’, 가곡 ‘선구자’를 뺀 나머지는 모두 김민기 곡이다. 김민기는 ‘내나라 내겨레’에서 직접 육성 녹음에도 참여했다. ‘산’은 김민기 곡 ‘가뭄’의 첫 버전이다. 김민기의 목소리로 친숙한 ‘바다’ ‘강변에서’도 이 앨범에 먼저 실렸다. 명곡 ‘가을 편지’는 최양숙이 1971년에 처음으로 불렀고, 남자 가수로는 윤지영이 이 앨범을 만들며 가장 먼저 녹음했다.

1집에 실렸던 ‘황혼’은 심의에 걸려 2집에 다시 실렸다. 이 노래는 김민기의 블루스 포크 걸작 ‘기지촌’의 첫 버전이다. 윤지영은 인터뷰에서 “당시 음반사에서 음반을 기획하면서 김민기에게 곡을 맡기고 돈도 미리 줬지만 신곡을 만들어오지 않아 서울 이태원에 여관방을 잡아 김민기를 감금하다시피 해 만든 노래”라고 밝혔다. 노래를 만들기로 약속한 마지막 날. 화장실에서 한참의 시간을 보내고 나온 김민기는 이태원 여관 주변의 풍경을 담아 가사와 악보를 적어내려갔다. 김민기의 ‘기지촌’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 노래는 1979년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가 불법 테이프로 녹음해 대학가에 알려졌고, 1993년 3집 앨범 <김민기3>에서 한영애가 원형을 복원해 널리 알려졌다.

윤지영 2집이 사장된 이유는 검열로 추측된다. 모든 수록곡에 크레디트를 표기하지 않았고 가사도 우리가 아는 것과 달리 순화되어 있는 점은 검열을 통과하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윤지영 3집 <윤지영 노래모음>, 1978년, 지구레코드.

1978년 발매한 윤지영의 3집에 참여한 고 이주원이 “정말 노래를 잘하는 친구”라고 추켜세웠듯, 그는 가사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시원한 음색의 창법을 구사한다. 이주원은 1979년 따로또같이 1집에서 윤지영 곡 ‘초겨울’을 녹음하며 친분을 이어갔다. 최근 대중적 조명을 받지 못한 채 활동을 마감한 비운의 70년대 가수 윤지영의 1집은 LP, 2집은 CD로 재발매되었다.

글·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ㅣ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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