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봉제 일한 70대 할머니 “잘 전시해줘 감사”

서울의 작은 박물관③ 종로구 창신동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등록 : 2019-04-11 15:12 수정 : 2019-04-18 16:25

크게 작게

나만의 스카프 만들기 3천원

아름다운 노동의 역사 한눈에

봉제에 평생 바친 할머니

“손녀 손잡고 찾아오고 싶다”

봉제역사관

이음피움. ‘두 끝을 맞대어 붙이다’라는 뜻의 ‘잇다’와 ‘꽃봉오리 따위가 벌어지다’라는 뜻의 ‘피우다’를 합쳐서 만든 이름이 ‘이음피움’이다. 실로 천과 천을 이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공정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자 하는 뜻을 담았다. 봉제 관련 체험을 하고 봉제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종로구 창신동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을 다녀왔다. 봉제는 아름답다.

다양한 체험거리


“어서 오세요, 어떻게 오셨어요?” “네, 체험활동 해보고 싶어서요.” “방금 학생들이 단체로 체험활동을 하고 가서 좀 어수선하네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종로구 창신동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지하1층 봉제작업실 체험활동 안내자는 흩어진 물품을 정리하면서 체험활동 준비를 한다.

“스탬프 찍기, 시대별 아이콘 의상 꾸미기, 단추 달기, 자수기로 글자 새기기, 캐릭터 스티커 찍기는 언제든 방문하시면 체험해보실 수 있습니다.”

시대별 아이콘 의상 꾸미기는 몇 가지 패턴의 옷 모양 종이에 색을 칠하고 오려 붙여 완성하는 것이다. 단추 달기는 말 그대로 천에 단추를 다는 것이다. 두 가지는 하지 않기로 하고 스탬프를 찍어보고 캐릭터 스티커를 하나 골라 뜨거운 열과 압력으로 압착해서 찍어봤다. 모두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다.

시대별 아이콘 의상 꾸미기

자수기로 천에 글자도 새겨봤다. 천에 새길 글자를 컴퓨터에 입력하고 글자가 새겨질 위치를 조정한 뒤 실행하면 실을 꿴 바늘이 빠르게 움직이며 천에 글자를 새긴다(자기가 가져온 에코백 등에 글자를 새길 수도 있다). 그 과정이 재미있다. 재봉틀 바늘이 빠르게 움직이며 지나가는 대로 글자가 생기는 게 신기하다. 어릴 때 발판을 굴러 가동하는 재봉틀로 바느질하던 엄마가 생각났다.

지난번 향수박물관에서 직접 만든 향수에 ‘길 위에 꿈’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처럼, 이번에 천에 새긴 글자도 ‘길 위에 꿈’이었다. 원래는 석 자 정도를 새길 수 있는데 띄어쓰기를 하지 않고 간신히 칸을 맞췄다.

나만의 스카프를 만드는 체험은 3천원이다. 3천원을 내고 테두리 마무리가 안 된 스카프를 사서 특수미싱으로 스카프의 테두리를 박아 완성하는 것이다. 안내자의 시범을 보고 따라 했다. 보기보다 재미있었다(나만의 스카프 만들기는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오후 1시30분~오후 4시30분에 함).

나만의 스카프 만들기

봉제, 이음과 피움의 아름다운 노동

2018년 4월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이 문을 열었다.

봉제역사관을 개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음피움’이라는 이름의 뜻이 깊어지는 일이 생겼다. 지금도 봉제 일을 하는 70대 어르신 한 분이 이곳에 손녀를 꼭 데리고 오고 싶다고 부탁을 했던 것이다. 손녀와 함께 봉제역사관 이곳저곳을 돌아보는 그분 얼굴에는 웃음과 행복한 표정이 가득했다고 한다.

그분은 청계천 판자촌과 평화시장을 거쳐 지금의 창신동까지 한평생 봉제의 삶을 살아오신 분이었다. 봉제역사관을 다 돌아본 뒤, 부끄러워 숨기고 싶어 했던 자신의 일을 이렇게 뜻깊고 예쁘게 전시해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인사하셨다 한다.

단추 달기 체험 도구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으로 올라가는 창신동 골목은 그 자체가 살아 있는 박물관이라고 생각해도 되겠다. 봉제역사관 자료에 따르면 창신동에는 천여 개의 봉제공장이 있다. 봉제 산업의 종류도 의류 완제품을 생산하는 봉제 업체, 의류 제작을 위해 부분별로 옷본을 만들거나 옷본을 바탕으로 시제품을 만드는 업체, 옷본에 따라 재단기를 이용해서 원단을 재단하고 납품하는 업체, 의류 완제품 판매를 위해 실밥 등을 짧게 자르거나 다림질, 포장 작업을 하는 업체 등 다양하다.

창신동 골목 다세대·다가구 주택에 들어선 작은 공장, 그 작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들에 의해 천과 천이 가느다란 실로 이어져 완제품으로 탄생하는 봉제의 역사는 이어지고 있었다.

가위와 재봉틀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2층은 봉제역사관이다. 청계천, 평화시장, 창신동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봉제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다.

봉제역사관 자료에 따르면 한국전쟁 이후 사람들이 청계천 변에 판자촌을 이루어 살면서, 미군들의 옷을 재가공하거나 거리에 재봉틀을 두고 옷을 만들어 팔았다. 청계천 화재 이후 판자촌과 노점상은 밀려나고 1962년 평화시장이 들어섰다. 1970년대부터 봉제공장들이 창신동으로 옮겨오기 시작했다.

전시장 가운데에는 낡은 재봉틀이 전시됐다. 1957년 이후 아이디얼미싱, 라이온, 파고다, 부라더 등 재봉틀의 옛 역사를 알아볼 수 있다. 손잡이를 손으로 돌려 작동하는 재봉틀, 발판을 밟아 작동하는 재봉틀은 추억의 한 장면이다. 재봉틀이 있는 집에서는 직접 옷을 만들어 입기도 했다.

봉제 마스터 기념관에 전시된 사진

3층은 봉제 마스터 기념관이다. 10명의 ‘봉제인’들 이야기와 그들이 쓰던 도구 등을 통해 ‘봉제’라는 분야를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들은 가위를 가장 먼저, 가장 뜻깊게 이야기했다.

재봉 마스터 김도영이 남긴 ‘긴 시간 저 자신을 갈아내서 작고 보잘것없는 모양이지만, 제구실을 톡톡히 해내는 가위가 자랑스럽다’는 말, 재단 마스터 최승훈이 남긴 ‘나에게 재단가위는 10대부터 지금까지 함께한 동반자다’라는 말, 그리고 숨 쉴 수 있는 공기와 같은 존재라는 말.

4층 바느질 카페로 올라갔다. 직접 커피를 내려 먹을 수 있는 작은 쉼터다. 차 한잔 하며 지하 1층부터 한층 한층 올라오며 체험하고 보고 듣고 알게 된 것들을 다시 생각해본다.

손녀와 함께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을 찾아오고 싶다던 70대 어르신이 남긴 한마디 말이 생각났다. ‘부끄러워 숨기고 싶어 했던 자신의 일을 이렇게 뜻깊고 예쁘게 전시해줘서 너무 감사하다.’

바느질 카페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