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곳

서울 최고 야경이 펼쳐지는 조선 시대 정자

동작구 용양봉저정

등록 : 2019-03-21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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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봉정 근린공원 조망 명소에서 바라본 한강 야경(위 사진). 용양봉저정(아래 사진). 동작구 제공

도시의 군중 속에서 저마다 목적지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지켜본 적이 있는가. 나는 멈춰 있지만 찰나의 순간에도 세상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한강대교 남쪽 노량진으로 이어지는 동작구의 관문에는 서울의 230년 역사를 함께한 나지막한 언덕 위 누정이 있다. 바로 한강변 유일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조선 시대 정자 ‘용양봉저정’이다.

당시 한강 주변에는 북향으로 강을 내려다보며 경치와 풍류를 즐기는 용도로 만든 누정이 많았다. 용양봉저정도 다른 누정들과 비슷한 건축 형태지만, 쓰임에서는 조금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실학을 꽃피우며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정조는 오늘날 깊은 효심과 애민 정신을 갖춘 군주로 회자된다. 1789년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화성 융릉으로 옮기고, 해마다 참배를 위한 대규모 왕실 행차에 나섰다. 도성을 지나면 마주하게 될 한강을 건너기 위해 실학자 정약용이 배다리를 설계해 놓았다. 정조는 큰 배 80여 척, 작은 배 500여 척을 잇고 긴 널판을 깔아 만든 다리를 건너 다다른 노량행궁 안 용양봉저정에서 점심을 들며 잠시 쉬었다.

주변을 산책하고 한강을 바라보던 정조는 어떤 생각에 잠겼을까?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을 달래고자 나선 길에서 만난 백성들의 삶의 모습과 아버지를 떠올리며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었을 것이다.

그리고 정조는 북쪽에 우뚝 선 산과 흘러드는 한강의 모습이 마치 용이 뛰놀고 봉황이 나는 것 같다 하여, 이곳의 이름을 ‘용양봉저정’이라고 지어주었다. 화성에서 돌아오는 길이 늦어질 때면, 하룻밤 묵기도 하고 혜경궁 홍씨에게 다과를 올리기도 했던 소박한 행궁에는 정조의 효심이 가득 스며들어 있다

1930년 건물터가 일본인 손에 들어가면서 일부가 철거되고, 음식점으로 쓰이는 상처를 안게 되었다. 결국, 조선에서 일제강점기, 6·25 전쟁으로 이어지는 민족의 아픈 역사 속으로 현재 용양봉저정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은 사라지고 말았다.

광복 이후 다시 옛 모습을 찾기 위한 노력이 더해지며, 1972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6호로 보호를 받게 되었다. 2016년부터 동작구에서는 용양봉저정의 역사적 가치를 되살려 조선 시대 왕의 쉼터를 시민의 쉼터로 만들기 위한 사업을 시작했다.


구는 용양봉저정과 인근 근린공원 일대 60여 만㎡를 노들섬과 연계해 문화·관광벨트를 만들 계획이다. 용양봉저정과 주변을 정밀 발굴 조사해 역사문화 광장을 만들고, 왕이 거닐던 산책길은 식생 환경을 보완하여 도시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가족공원으로 재탄생시키고자 한다. 벌써 공원 한편에는 편의시설과 조망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공원을 찾는 이들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쉬었다 갈 수 있다.

근린공원 산책로 정상에는 한국의 매쿼리 포인트가 될 전망대도 만들 예정이다. 오래전부터 한강과 남산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우수한 조망권을 갖춘 곳으로 알려진 탓일까? 이곳은 사진 찍는 이들에게 숨은 명소로 입소문을 타, 한강 야경 촬영지로 유명하다.

작은 돌 하나에도 역사의 향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용양봉저정이 이제 더 많은 사람에게 한강과 서울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준비를 하고 있다. 일상의 소란에서 잠시 떨어져, 서류하는 한강과 도시를 바라보며, 걸어온 길 그리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을 그리는 정조의 시선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윤채빈 동작구청 홍보전산과 언론팀 주무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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