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헐적 안거가 필요한 도시인에게 안성맞춤

전현주 기자의 1박 2일 금선사 템플스테이 체험

등록 : 2019-03-14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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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30분 목탁 소리에

산사가 깨어난다

흐르던 냇물도 소리를 낮춘다

10일 새벽 4시께 금선사가 터 잡은 북한산 계곡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풍경.사진 전현주

10일 새벽 4시30분. 북한산 바람에 실려온 목탁 소리가 산사를 깨웠다. 흐르던 냇물도 소리를 낮췄다. 하룻밤 짐을 풀었던 ‘금선사 안심당’ 선방을 나서서 주섬주섬 고무신을 신었다. 200살 나이를 먹은 소나무를 돌아 도량을 거쳐 봄바람이 불어오는 남쪽으로 걸었다. 달빛 아래 저 멀리 보이는 도시는 북악과 인왕, 남산을 꽃잎처럼 둘러 폭 안긴 서울이었다. 일요일 벽두부터 용맹정진 중인 도시가 쉼 없이 깜빡거렸다.

도시인들의 안거, 템플스테이

“부단히 돌고 있는 ‘맷돌’을 생각합니다. 가장자리에 있으면 소요가 크지만, 중심에 있으면 가만한 축을 볼 수 있습니다. 파동을 지켜보는 자리이자, 움직이면서도 움직이지 않는 자리지요. 자신의 마음자리가 지금 어디 있는지요?”


탁탁탁. 새벽 5시30분. 죽비 소리에 눈을 감았다. 금선사 템플스테이 지도법사 선우 스님이 법당으로 모인 이들을 명상 수행으로 안내하는 순간이었다. 안거란 출가한 승려들이 한곳에 모여 수행하는 것을 말하지만, 도시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야말로 이 안거일지 모른다. 익숙한 주거지를 벗어나 나를 바라보는 일이다. 산속 사찰로 템플스테이를 떠나온 이들이 털어놓는 공통된 마음이었다.

“사회생활하다가 만나서 친해진 사이예요. 지난 3, 4년 주말에 만나면 음주로 스트레스를 풀곤 했는데, (웃음) 문득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더라고요.” 9일 오후 입산해 나무 의자에 앉아 한 호흡 고르던 신주현(26), 김지영(28)씨가 녹차 한잔씩 나누며 말했다. 직장인 와인 동호회에서 왔다는 박정석(44)씨도 비슷한 심정을 전했다. “저희는 15명 정도 되는 인원이 동호회 모임도 할 겸 겸사겸사 같이 왔어요. 와인과 사찰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일 수 있지만, 서울 가까이에서 1박 2일 색다른 경험을 하면서도 쉴 수 있는 체험이 템플스테이잖아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서울 사찰 곳곳에서 당일형, 체험형, 휴식형 등으로 나뉜 다양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비용(당일, 1박 기준)은 3만~7만원 사이로, 떠나기 전 문의와 예약은 필수다. 사진 전현주

백두대간 한북정맥에서 내달려온 기운이 북한산을 만들고, 그 가운데 담박한 골짜기에 터 잡은 ‘금선사’는 종로구 구기동에선 ‘숨은 보석 같은 사찰’로 알려져 있다. 불광역 2번 출구에서 버스로 10분가량 갔다가 다시 가파른 계곡을 타고 물 건너 걷는 길은 도보로 간단치 않지만, 방향을 물을 때마다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정확한 지점을 가리키는 이유다. 도심에서 멀지 않은데다 숲과 겸허하게 어우러진 풍경, 근방에 조선 시대 때부터 내려온 기도 성지 ‘목정굴’이 유명하다. 북한산 둘레길과 가까워 약수 마시러 오는 등산객들도 쉬었다 가곤 한다.

3월의 사찰은 곳곳에 봄물이 오르는 중이다. 겨우내 웅크린 목련 새순과 마당을 뒹구는 개 ‘보리’의 밤색 털, 단단한 땅을 뚫고 올라온 풀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곧 완연한 봄이 오면, 금선사로 오르는 산자락 길목부터 꽃향기가 은은히 피어오를 겁니다.” 목탁 소리가 다시 정신을 깨웠다. 먼동이 터 올랐다.

마음을 다잡는 산사의 밤

“이 봄은 누구의 것이던가.” 옛 시의 한 구절 따라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 서울 속 사찰들도 저마다 새봄 맞을 준비가 한창이다. 기자가 북한산을 찾은 9일 오후에는 대기 중 미세먼지로 때아닌 질환을 얻은 이들까지 잇따라 맑은 공기를 찾아 입산하고 있었다.

금선사에서는 보통 오후 3시에 입산해 다음날 오전 11시께 회향하는 느긋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첫날 한 시간가량 절간 예절을 배우는 시간이 있어 템플스테이에 첫발을 들이거나 다양한 종교를 가진 이들도 부담 없이 입문할 수 있다. 이어 저녁 공양과 타종 체험, 저녁 예불, 108배, 108염주 만들기 등이 물 흐르듯 이어지며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고 자신의 호흡을 관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저녁 8시30분이면 휴식과 취침을 위한 준비를 한다. 산사의 밤은 따뜻하고, 짐승들은 여기저기 널브러진다. 산중 깊은 침묵은 오히려 계절의 소리에 귀 기울이도록 해준다.

108배와 저녁 예불. 사진 전현주

둘째 날 새벽 예불을 마치면 발우 공양과 ‘울력’(여러 사람이 힘을 합해 일함), 숲속의 명상, 스님과 대화하는 ‘다담 시간’이 이어진다. 새벽 6시 반께 발우 공양을 하러 법당을 나서는 행렬은 자못 정갈하기까지 하다. “여럿이 함께 먹다보면 내 습관을 알게 되지요. 예부터 차분하게 잘 먹는 습관은 만복을 부르는 습관으로 꼽아왔습니다.” 모처럼 내가 가진 감각에 집중해 수저를 드는 일은 어색했다. 침묵 속에서 어울려 밥을 먹으니 밥알 씹는 소리와 굽은 어깨까지 새삼 불편하던 것이다. 그 모든 자각 또한 ‘쉼’의 과정이라 했다.

새벽 6시30분 발우 공양 가는 길. 사진 전현주

그릇을 비우면 숭늉과 단무지로 그릇을 닦는다. 사진 전현주

“봄기운 머금고, 각자 지닌 꽃을 피우시길”

“각자 가지고 있는 꽃이 있는데, 남의 눈치를 보면 그 뿌리가 자라지 않아요. 지금 이 순간 나에게 내려야 합니다”

아침 9시. 선우 스님이 지리산 하동에서 보내온 봄물 가득 머금은 작설찻잎을 우렸다. 스님과 함께 10여 명씩 둘러앉아 차 한잔 나누며 얘기하는 다담 시간은 금선사를 다녀간 이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대표 프로그램’이다.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청춘들의 고민을 모으니, 인간관계의 버거움과 타인과 비교하는 데서 오는 열등감, 선택의 갈림길에 선 두려움 등이 교차됐다. “그렇다고 굴속으로 들어가버리면 시야가 좁아지고 두려움이 더 커지지요.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이래저래 시도하면서 체득하는 겁니다. 여행을 가든 높은 산에 오르든 넓은 풍광을 보며 마음자리를 키워나가는 것이지요.”

쉼이 필요해 홀로 왔다는 대학생 조은서(24)씨는 “시간이 빨리 가서 아쉬웠다. 쉬는 김에 더 머물고 싶었다. 속세의 때를 벗어내려니 하룻밤도 모자라더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새벽 범종 소리에 혼탁한 정신이 ‘씻겨나가는’ 듯했다는 김아무개씨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 과정을 느끼는 것도 위로가 된다. 좀 길게 휴가를 받을 수 있으면 일주일 정도 세상 소요를 피해 머물다 가고 싶다”고 했다.

금선사 경관. 사진 전현주

은둔은 세상을 등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라 한다. 도시인들의 자발적 은둔이자 잠깐의 쉼이 소중한 이유다. 연인을 잃고 고통을 잊고자 소진한 채 몇 년 동안 닦달하며 살아왔다는 한 참가자의 빈 잔에 옆 사람들이 작설차를 채워줬다. 서로에게 ‘도반’이 되어주던 때 선우 스님이 다시금 찻잎을 우렸다. “신의를 다했고 진심을 다했다면 스스로 자양분이 쌓일 겁니다. 삶은 환희만 있지 않고, 영원한 건 없더군요. 흐르는 물을 바라봅시다. 지금 만난 물, 모든 관계와 삶과 사물은 현재가 소중해지죠. 발효와 숙성의 시간 동안 고통은 지나가고 새로운 바람이 곧 불어올 겁니다.”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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