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in 예술

학살당한 사람들

국군 양민 학살 담은 연극 연출가 박선희씨

등록 : 2019-02-28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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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역사엔 남성만 드러나고 여성의 목소리는 철저히 숨겨져 있어요.”

연출가 박선희(49)씨는 3월1~10일까지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배소고지 이야기>(진주 극)를 제작한 배경을 이렇게 밝혔다. 배소고지는 전북 임실군 옥정호 인근에 있는 장소로 1951년 3월 국군이 200여 명의 양민을 학살한 곳이다.

극은 지금은 사라져 흔적도 없는 배소고지에서 국군에게 학살당한 양민 중 살아남은 마지막 생존자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다. “당시 강진면 배소마을 위 배소고지에 주둔해 있던 국군은 ‘빨치산에게 밥을 해줬다’는 이유로 피난 가던 사람들에게 무차별로 사격을 퍼부었죠.” 작품의 부제 ‘기억의 연못’은 <배소고지 이야기>가 이렇게 생존자의 기억을 토대로 제작된 작품임을 드러낸다.

공연엔 세 여성이 등장한다. 전쟁 때문에 정신지체 증상으로 입을 닫아버린 입분, 그의 소꿉친구인 순희, 전쟁 당시 여성으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고 죽임을 당했던 소녀가 그들이다. 금강혼식(서양 풍속에서, 결혼 60주년 또는 75주년을 기념해 부부가 다이아몬드로 된 선물을 주고받음)을 하루 앞둔 입분과 소꿉친구인 순희가 매운탕집 마루에 앉아 있는데, 빨치산으로 내몰려 죽은 소녀가 그들 앞에 나타나면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연은 등장인물로 모두 여성을 내세워 한국전쟁을 여성의 목소리로 복기하고, 더 나아가 그 여성들이 전쟁 속에서도 주체적인 삶을 살아내고자 한 모습을 담는다. 이 점에서 이번 공연은 남성의 시각에서 전쟁을 다룬 이전의 많은 공연과 구별된다.

“끝나지 않은 전쟁과 외면당한 기억과 같은 상처를 우리는 충분히 기억하고 있을까요? 어쩌면 그들이 기다린 것은 사람이 아니라 시간일지 모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예전의 시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죠.”

■ 박선희는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동대학원 연극학과 석사를 졸업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정동극장 창작ing 낭독공연 <정동구락부;손탁호텔의 사람들>(2018), <봄을 안고 온 소년>(2018), 연극열전 <킬롤로지>(2018), <라틴 아메리카 프로젝트>(2017), <밀레니엄 소년단>(2017) 등이 있다.


이규승 서울문화재단 홍보팀장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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