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의 감성 자극, 문구점의 회귀

디지털 시대에 ‘힙한’ 곳으로 뜨는 서울의 문구점들

등록 : 2019-02-14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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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진, 연필, 지우개, 책갈피 등

디지털 기기에 밀려난 문구가

속속 책상 위로 복귀

문구점이 작은 미술관으로 변신 중

성수동 ‘포인트 오브 뷰’. 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문구점들이 도시 여행자들의 ‘인기 공간’으로 떠올랐다. 문진(책장이나 종이쪽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눌러두는 물건), 연필, 지우개, 책갈피…. 디지털 기기에 밀려났던 이들이 책상으로 하나 둘 복귀 중이다. 과거 문구점들이 ‘지는 업종’의 대표 주자로 꼽혀왔던 사실이 무색하게, 오늘날 문구점들은 이른바 ‘힙한 것’을 찾는 젊은 손님들에게 호평받는다.

직접 찾아가보니 문구점을 넘어 작은 미술관 같다. 구경만 하는 데 한 시간이 훌쩍 넘어가기도 한다. 연필 전문 문구점 ‘흑심’의 박지희(30) 공동대표는 “처음엔 젊은 손님들이, 지금은 중·장년층 손님들까지 두루 찾아오신다. 아날로그 문구를 아낀다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고 말하며 ‘문구 덕후’들을 두둔했다. 세대가 함께 설렌다는 서울 인기 문구점을 정리했다.


성수동 ‘포인트 오브 뷰’

문구점 ‘포인트 오브 뷰’는 성동구 성수동 길가 건물 2층에 자리잡았다. 가게 문을 연 지 3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평일에도 주말 같은 인기를 누릴 만큼 손님들 발길이 잦다. 독일, 프랑스, 일본 등 바다를 건너온 문구들이 정갈하게 배치된 공간이 돋보인다. 어린 시절부터 문구 덕후로 자랐다는 김재원(38) 대표가 직접 큐레이팅하며 문구 장인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문구점을 찾은 김에 각 제품군 앞에 높인 ‘큐레이션 노트’도 유심히 보자. 물건의 뒷얘기를 조곤조곤 풀어낸다. 연필 브랜드 ‘팔로미노 블랙윙’에서 LP판을 주제로 한정판으로 만든 팔로미노 33 1/3 비닐 연필, 100여 년 동안 수작업을 고집하는 브랜드 ‘에밀리오 브라가’의 노트 등 필기구부터 수첩까지 감각적인 도구들, 옛 추억 물씬 풍기는 스티커와 사무용품 구경에 눈이 즐겁다. 문구류 외에도 디자이너들과 협동작업으로 만든 문진, 도장, 책상 위를 장식할 수 있는 모빌 등 다양한 제품이 있다.

(성동구 연무장길 18 2층)

연남동 ‘흑심’

연남동 ‘흑심’의 문구류. 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단순히 ‘오래된 연필’이라고 말하기보다, 생산 시기나 사연을 소개해드렸을 때 연필의 가치가 더 올라가니까요.” 연필 전문 문구점 ‘흑심’의 박지희(30) 공동대표가 설명했다. 연필 한 자루를 사도 봉투에 정성스레 포장하고 ‘씰’을 붙여준다. 디자인 브랜드를 운영하던 두 대표가 빈티지 연필 포장 디자인에 빠져 하나둘 수집하다가 그 양이 많아지자 2년 전 가게를 열었다. 주 2~3회씩 판매대에 있는 빈티지 연필 구성을 바꾸고 있으며, 다양한 흑연의 감도를 느낄 수 있도록 시필지(메모지)를 두툼히 마련했다.

연남동 ‘흑심’ 전경. 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박 대표는 “모든 연필은 시대상을 담는다”고 말했다. “가령 판매대에 놓인 1930년대 후반~40년대 초반 생산된 미국 필기구 브랜드 딕슨, 제이에스(JS) 스테들러 등 빈티지 연필은 패룰(연필과 지우개를 연결하는 부분)을 금속이 아니라 플라스틱 혹은 두꺼운 종이로 만들었는데, 당시 제2차 세계대전으로 물자가 부족했기 때문이거든요. 이처럼 각 연필이 가진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면 재미있는 사연이 많아요.”

(마포구 동교로 266 3층)

서교동 ‘오벌’

서교동 ‘오벌’의 빈티지 연필 컬렉션. 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문구점 ‘오벌’은 11년 된 문구점이다.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8번 출구에서 걸어서 10분 남짓, 골목 안 건물 3층에 자리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채광 좋은 유리창 아래 알록달록한 빈티지 연필과 문구류 등이 눈부시게 자리했다. 포스탈코(POSTALCO), 파피에 라보(PAPIER LABO) 등 20여 나라에서 들인 문구류를 판다. 빈티지 연필 가격은 3천원부터 시작해 천차만별이다.

대표 김수랑씨는 “문구 수집가들, 30대부터 40대까지 문구 덕후 남성들, 나아가 단골들이 많이 오는 가게”라고 공간을 설명했다. 김 대표는 “빈티지 연필은 오늘날 생산되는 연필보다 다양한 브랜드와 종류가 있다. 나무 재질부터 흑연의 경도와 감도는 물론, 각인과 포장 디자인까지 만듦새에 깊은 매력이 있다”며 “빈티지 연필을 구경만 하거나 보관만 해두기보다는 직접 써보고 깎아보며 나에게 맞는 연필을 찾아보시라. 빈티지 연필만의 탄성과 묘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팁을 전했다.

(마포구 와우산로29길 3층 48-29)

오벌. 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창전동 ‘올라이트’

“쾅쾅!” 가죽 뚫는 망치 소리가 가게를 채우는 이곳. 기록광을 위한 문구점 ‘올라이트’다. 재단된 소가죽으로 만든 ‘가죽 커버’가 잘나간다. 곧 완성된 가죽 커버를 받은 손님 김은서(20)씨는 “전라남도 영광에서 왔다. 손으로 무언가 적는 걸 좋아하는데, 올해 쓸 다이어리를 사려고 어머니와 함께 서울 여행 중 일부러 찾아왔다”며 활짝 웃었다. 올라이트에서 직접 디자인한 감각적인 노트류, 엽서류, 마스킹 테이프 등도 볼 수 있다.

(마포구 서강로11길 28)

서초동 ‘에이셔너리’

서초동 ‘에이셔너리’ 마스킹 테이프. 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서초구 서초동 동네 골목 안쪽, 아파트 단지에 자리잡은 문구점 ‘에이셔너리’는 종이회사 두성종이가 운영한다. 에이셔너리 정태임 팀장은 “펜 한 자루를 사더라도 ‘행복’한 기억을 담고 가길 바라는 문구점이다. 동화 속 공주님 방에 들어온 듯 설레고 따뜻한 기분을 손님들이 느끼면 좋겠다”며 공간을 소개했다.

아기자기한 분위기 덕분인지 30대 이상의 동네 여성들, 특히 ‘동네 문구점 정서’를 간직한 중·장년층 여성들 발길이 잦다고 한다. “얼마 전엔 ‘나를 위한 선물’을 하고 싶다며, 빨간 만년필을 사가신 중년 여성분과 오래도록 필기구 추억을 나눈 적도 있죠.” 두성종이에서 자체 제작한 마스킹 테이프와 문구류, 국내외에서 모은 고급 필기류와 카드, 그 밖의 온갖 문구류를 판다. 우주에서 사용하는 ‘스페이스 펜’, 탄피로 만든 ‘탄피 볼펜’ 등도 구경할 수 있다.

(서초구 사임당로23길 43)

중구 명동 ‘플라스크’

명동 ‘플라스크’의 문구류. 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명동역 2·3번 출구에서 남산 방향으로 5분 남짓 걸어가면 언덕길 왼편에 초록색 간판을 올린 가게가 나타난다. 복합문화공간인 ‘플라스크’는 총 6층 규모로 문구와 서적, 커피, 생활용품을 두루 판다. 중심 공간인 1층 ‘BOOK&SHOP'에서 일본 브랜드 델포닉스, 그 밖에 동유럽 브랜드 등 국내에서 보기 어려운 외국 브랜드 문구류를 잘 갖췄다.

(중구 퇴계로20길 13)

명동 ‘플라스크’ 전경. 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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