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을 걷다

낙엽을 밟으며 백제의 옛 왕도길을 걷다

서울 풍납동 토성~서울 몽촌토성 6.5㎞

등록 : 2018-11-15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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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잎 쌓은 옛 토성길은

생활의 편린과 백제 옛이야기가

뒤섞이며 깊은 가을로 들어가는 입구

풍납동 토성 산책길

백제의 옛 왕성길을 걷는다. 단풍잎 쌓인 옛 토성길은 시장 골목을 지나 아파트단지와 주택가 사이로 이어지며 녹색의 띠를 만들었다. 생활의 편린과 백제의 옛이야기가 뒤섞인 이 길은 서울 몽촌토성을 만나 깊은 가을로 들어가는 입구가 된다. 송파구 한성백제왕도길 중 서울 풍납동 토성과 서울 몽촌토성을 이어 걸었다.

몽촌토성 산책길

시장 옆 백제 시대의 옛 토성

송파구 한성백제왕도길은 서울 풍납동 토성~서울 몽촌토성~서울 방이동 고분군~석촌동 고분군으로 이어지는 약 10.7㎞ 코스인데, 이중 서울 풍납동 토성과 서울 몽촌토성을 잇는 약 6.5㎞ 구간을 걸었다. 천호역 10번 출구에서 약 420m 정도 거리에 있는 서울 풍납동 토성 끝에서 출발했다.


서울 풍납동 토성은 백제 초기 한강 유역에 건설한 왕성(王城)이다. 이른바 한성백제 때의 도읍인 하남위례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의 둘레가 4㎞였으나 지금은 약 2.7㎞만 남았다. 흙으로 쌓은 성이 푸른 풀로 뒤덮였다. 그 위에 은행나무 노란 단풍잎과 붉은 단풍잎이 떨어졌다. 떨어진 은행잎이 길을 덮었다. 울긋불긋 물든 낙엽을 밟으며 백제의 옛 성 옆에 난 길을 걷는다.

쌓인 낙엽 덕에 길이 폭신하다. 길은 풍납근린공원 쪽으로 이어진다. 짧은 공원길 끝은 풍납도깨비시장이다. 백제 시대의 옛 유적과 재래시장이 한 공간에 있다. 한눈에 보기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 장터 상인들이나 장 구경 나온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그래왔다는 식으로 아무렇지도 않아 보인다. 백제 시대의 왕성도 그들의 일상 중 하나일 따름이다.

여행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장 사람들의 일상과 백제 시대의 옛 토성은 각각 마음 가는 주제이지만, 그 둘이 한 공간에 버무려진 풍경 앞에서 세상이 낯설어진다. 왁자지껄한 시장 골목을 벗어나 주택가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골목에도 서울 풍납동 토성 안내판이 있다. 지표 아래 1.3m에서 백제 문화층이 발견됐다는 내용이다.

580년 된 은행나무

주택가 푸른 띠, 서울 풍납동 토성길을 걷다

주택가 골목 한쪽에 서울 풍납동 토성 경당지구가 있다. 한성백제 시대에 왕과 귀족 등 최고 상류층이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유물이 출토된 곳이다. 중국과 가야의 도자기도 많이 나왔다. 나라의 제사를 주관했던 신전으로 추정되는 건물터도 발견됐다.

지금 이곳은 마을 사람들의 쉼터다. 두꺼운 겨울옷을 차려입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햇볕 잘 드는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강아지와 산책을 즐기는 젊은이들도 간혹 보인다. 일상이 된 역사의 터전은 그 옆 풍납백제문화공원에도 있다. 백제 사람들이 살던 집터와 내성벽의 일부, 건물터, 당시 도로를 재현했다.

너비 4m 정도 되는 도로가 교차하는, 교차로도 발견됐다. 옛사람들이 다니던 길, 그들의 발자국 위에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발자국이 포개지는 셈이다. 그 길을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느리게 걷는다. 의자에 앉아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도 보인다. 아이와 아빠가 야구를 하는데, 아빠가 더 신났다.

길은 아파트단지와 주택가 사이에 있는 서울 풍납동 토성으로 이어진다. 흙으로 쌓은 옛 성은 푸른 풀밭 낮은 언덕이다. 주택가에 초록색 띠를 만든 옛 성 옆에 오솔길이 났다. 사람들은 그 길에서 산책을 즐긴다. 푸른 언덕에 홀로 앉아 있는 젊은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간편한 생활복 차림인 걸로 보면 가까운 곳에 사는 것 같았다. 쉼터가 된 옛 성은 그렇게 사람들의 숨통을 틔우고 생각의 깊이를 더하는 공간이 되었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나온 젊은 엄마도, 굽은 허리에 장바구니 들고 나선 할머니도, 옛 성 옆 오솔길에 있었다.

풍납백제문화공원

풍납동 토성 경당지구

낙엽을 밟으며 걷는 서울 몽촌토성 산책길

서울 풍납동 토성이 끝나는 곳에서 서울 몽촌토성 입구까지 약 800m 거리는 번잡한 도로 옆 인도를 걷는 구간이다. 올림픽대교 남단 사거리에서 성내교를 건너 바로 우회전한 뒤, 약 70m 정도 가다가 오른쪽으로 돌아 걷는다. 한강으로 흘러드는 성내천을 거슬러 걷는 길이다. 성내교 밑을 지나면 진한 붉은색으로 물든 단풍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단풍 구경 나온 아줌마들도, 머리 하얗게 센 할아버지도 붉은 단풍 그늘에서 휴대전화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누른다.

짧은 단풍터널을 지나 곰말다리를 건너 서울 몽촌토성으로 올라간다. 고갯마루에서 왼쪽으로 난 길로 접어든다. 언덕 위 넓은 풀밭 가장자리에 난 길을 걷는다. 이곳이 한성백제 때 서울 풍납동 토성과 함께 만들어진 몽촌토성이다. 몽촌토성 산책길 오른쪽은 ‘나 홀로 나무’와 580년 된 은행나무가 있는 넓은 풀밭이다. 왼쪽으로 팔각정이 있는 단풍 숲이 굽어 보인다. 단풍 숲 한쪽에 보이는 물길은 토성의 일부였던 해자(성 주위에 둘러 판 못)였다.

구릉 지대에 만들어진 토성의 특성상, 길도 구릉을 따라 오르내리고 굽이돌며 이어진다. 그게 몽촌토성 산책길의 매력이다. 한성백제 시대에 사람들이 살던 집터와 저장 구덩이, 화덕 시설 등을 볼 수 있는 백제집자리전시관을 지난다.

그 주변 길가에 억새꽃이 끝물이다. 낙엽 수북하게 쌓인 길로 일부러 걷는다. 길이 없는 언덕 비탈은 사람이 다닌 흔적 없이 떨어진 낙엽이 고스란히 쌓였다. 언덕을 지나는 길 위에서 서쪽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을 본다. 도착 지점인 한성백제박물관이 코앞인데 낙엽 쌓인 길을 더 걷고 싶었다.

몽촌토성으로 가는 길의 팔각정

낙엽 쌓인 몽촌토성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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