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의 단풍이라면 멀리 갈 것 없다

가을에 물든 서울 공원 세 곳…노들나루·선유도·서서울호수공원

등록 : 2018-11-08 14:46 수정 : 2018-11-08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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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면서

공중에서 반짝이는 단풍잎

눈길 닿는 곳마다 온통 단풍

가장 깊은 가을을 만나러 가자

선유도공원과 양화한강공원을 잇는 선유교에서 본 풍경

나무에 매달린 단풍잎, 떨어져 길에 쌓인 단풍잎,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면서 공중에서 반짝이는 단풍잎, 눈길 닿는 곳마다 온통 단풍이다. 단풍이 절정을 지났다지만 가을은 지금이 가장 깊다. 서울의 공원 세 곳에서 깊은 가을을 만났다.

태종 이방원도 놀다 간 노들강변


1412년 조선의 세 번째 임금 태종 이방원은 수양버들 낭창거리고 푸른 물결 일렁이는 한강 노들강변에 판을 펼치고 놀았다. 일제강점기에 유행했던 신민요 ‘노들강변’의 노랫말에도 노들강변의 백사장과 수양버들이 등장한다. 그 풍경에 등장하는 곳이 한강대교 남단 서쪽이다. 그곳에 일제강점기부터 2001년까지 정수장이 있었다.

지금 그곳은 노들나루공원에서 사육신공원으로 이어지는 곳이다. 사육신공원은 삼촌인 세조에게 임금 자리를 빼앗긴 단종의 복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신하들이 묻힌 곳이다. 노들나루공원에서 사육신공원으로 이어지는 길은 걷기에도 좋고 보기에도 좋은 늦가을 풍경으로 가득하다.

서서울호수공원. 옛 정수장 시설물에 물든 단풍나무들

지하철 9호선 노들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노들나루공원이다. 이곳에는 조선 시대 노들나루 터가 있었다는 안내판이 있다. 노들나루에는 수양버들이 많았다. 그 품에 백로들이 날아들어 ‘노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노들나루공원에서 사육신공원으로 가는 여러 갈래 길 중 노들나루공원 서쪽 작은 아파트 단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파트 단지 옆 정자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띈다. 개발로 인해 죽을 뻔한 나무를 살려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다. 나무 밑동 안이 비었다.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쓴 흔적인 듯 굵은 줄기가 비틀렸다. 그 힘으로 피워낸 잎에 단풍 물이 들었다.

그 나무 뒤로 난 길을 따르면 사육신공원에 이른다. 사육신공원으로 가는 계단 밑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단풍의 장막이다. 한강과 북한산을 한눈에 넣을 수 있는 전망대 앞에서 숨을 고른다.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김문기, 단종의 복위를 계획하다 죽은 신하들의 무덤으로 가는 길, 사람의 손길 타지 않은 감나무 가지에 앉은 까치가 까치밥을 연신 쪼아댄다. 갈잎이 우수수 바람에 떨어진다. 한가로워서 비장한 풍경이다.

사육신 묘

사육 신공원 감나 무에 앉은 까치가 감을 쪼아 먹고 있다

한강에 뜬 ‘단풍 섬’ 선유도

선유도는 섬이 아니었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는 ‘선유봉’(仙遊峯)이라 했다. 일제강점기에 큰 홍수가 진 뒤 섬이 됐다. 그리고 그곳은 채석장으로 변했다. 1965년 양화대교가 생기고, 이후 정수장이 들어서면서 신선들이 놀았다던 선유봉 풍경은 사라졌다.

그곳이 공원으로 꾸며져서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온 지 꽤 됐다.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알려지기 시작해서 웨딩촬영지, 그리고 이른바 ‘인증샷’ 명소로까지…. 사람들을 처음 반기는 것은 벚나무 단풍이다. 늦게 핀 코스모스도 그 옆 작은 밭에 가득하다. 떨어지는 단풍잎을 활짝 핀 코스모스꽃들이 받아낸다.

그 뒤로 은행나무 노란 단풍길이 이어지고, 갖은 나무가 피워낸 단풍잎들이 울긋불긋 짧은 단풍 터널을 만들었다. 누구도 그 길을 그냥 지나지 못한다. 순서를 기다리며 사진을 찍는다. 떨어지는 단풍잎은 머리에, 어깨에, 가방에 앉아 사람들을 물들인다.

1978년부터 2000년까지 쓰였던 거대한 빗물 방류 밸브가 풀밭에 놓여 있다. 한때는 제 역할을 다했을 그 시설물에 녹이 잔뜩 슬었다. 그 녹도 단풍 숲에 둘러싸여 있으니 단풍인가 싶다. 선유도공원 전망 데크는 예부터 유명한 한강가 수양버들 풍경을 굽어볼 수 있는 곳이다. 흙모래 강기슭을 지나가던 한강 물결이 괜히 강기슭을 툭툭 치고 지나간다.

옛 정수장 시설물을 그대로 남겨놓은 곳에 억새꽃이 반짝이고, 담쟁이덩굴이 제멋대로 그림 한 폭을 남겼다. 제대로 물들지 않은 살구나무 잎은 색 바랜 초록으로 떨어진다. 또 다른 은행나무길은 나무에 매달린 잎과 길에 떨어진 잎, 그리고 우수수 떨어지며 공중에서 흩날리는 잎으로 뒤덮여 온통 노랗게 빛난다.

선유도와 양화한강공원을 잇는 선유교를 건넌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풍경 속에서는 여의도 빌딩 숲도 여운으로 남는다. 다리 건너 양화한공공원으로 내려가면 다 타들어가고도 꽃을 떨구지 못한 장미 꽃밭과 코스모스 꽃밭이 입동 지난 계절에 쓸쓸하다.

선유도공원.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은행잎

호수에 비친 단풍 그림자

신월정수장으로 쓰이다가 2009년 공원이 된 서서울호수공원에도 단풍이 진하게 물들었다. 정수장이었던 시절 관사가 있었던 곳은 ‘열린 풀밭’이라는 이름이 붙은 넓은 풀밭이 됐다. 그 옆은 옛 정수장 시설물로 꾸민 재생정원이다. 웃자란 억새도, 정갈한 단풍나무도 하나로 어울린 재생정원을 지나 능골산책길 이정표를 따른다. 능골산책길은 능골산 정상 방향과 서서울호수공원 후문 방향으로 나뉘는데, 서서울호수공원 후문 방향 이정표를 따른다.

하늘을 가린 숲길 끝에 햇볕이 들어 막처럼 가린 단풍나무 잎들이 훤하다. 그 길 초입 옆으로 난 숲길을 따르면 작은 축구장이 나온다. 그 축구장을 지나 숲길로 접어들면 다시 서서울호수공원 후문 방향 이정표가 나온다.

능골산 남쪽에 난 산기슭 길에서 산의 남쪽 비탈이 만든 숲을 보고 걷는다. 그 숲에 가을색이 짙다. 단풍 물든 숲 위로 비행기가 낮게 떠서 지난다. 착륙하려는 비행기도 절정 지난 단풍도 한껏 긴장한 채 빛난다. 숲은 단풍으로 기슭의 작은 억새밭을 품었다. 풀밭 위 외따로 선 나무에도 단풍 물은 잔뜩 들었는데, 홀로라서 더 선명하다. 그 길에서 보는 수더분한 풍경이 이 가을에 또렷해지는 건, 제멋대로 물든 단풍색 때문이다.

그 길 앞에 있는 풍경은 옛 정수장 시설물의 기둥과 일부 벽면을 남겨 만든 공간이다. 붉고 노란 단풍잎과 담쟁이덩굴이 콘크리트 기둥에 가시처럼 돋아 있는 녹슨 철근과 어울려 색다른 풍경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굽어보는 눈길에 단풍 물든 나무들, 파란 하늘 하얀 구름, 하늘을 나는 비행기까지 담아 비추는 작은 호수가 들어온다. 호수에 비친 가을은 실제보다 더 가을 같다.

서서울호수공원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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