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을 걷다

개화산 키 작은 꽃들과 노을을 보다

강서둘레길 1코스 개화산숲길 4㎞

등록 : 2018-09-13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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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인이 죽은 자리에 꽃 피어 ‘개화산’

맥문동과 쑥부쟁이 발길 붙잡고

푸른 숲, 흰 구름, 붉은 방화대교 너머

해 떨어진 하늘에 주황빛 살아나

강서둘레길 1코스 개화산숲길에서 만난 하늘길 전망대에서 본 풍경. 노을 속으로 비행기가 날아간다.

한강과 김포공항 사이에 해발 124m의 개화산이 있다. 개화산 둘레에 난 길을 한 바퀴 돌며 숲에 피어난 키 작은 꽃들도 보고 전망도 즐긴다. 한강과 북한산 능선을 한눈에 넣는다. 김포공항 넓은 들녘 노을 속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그 풍경이 그윽하다.

키 작은 꽃들을 살피며 약사사에 도착하다


지하철 5호선 방화역에서 약 450m 정도 가면 방화근린공원이 나온다. 방화근린공원으로 들어가서 무대가 있는 작은 광장과 민속놀이마당을 지나면 강서둘레길 1코스 개화산숲길 출발지점을 알리는 아치형 문이 나온다. 문을 통과해서 약사사 방향으로 걷는다.

개화산의 첫 이름은 ‘주룡산’이었다. 신라 시대에 주룡이라는 도인이 이 산에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도인의 이름을 따서 산 이름도 주룡산이라고 했다. 주룡이 죽어 묻힌 자리에서 기이하게 생긴 꽃 한 송이가 피었고, 그 이후 산 이름을 ‘개화산’(開花山)으로 고쳤다고 한다. 이 산 봉수대에서 봉홧불을 피웠다고 해서 조선 시대에는 개화산(開火山)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주룡이 살던 곳에 고려 시대에 절이 들어섰는데, 절 이름을 ‘개화사’라고 했다. 조선 시대에 ‘약사사’로 이름을 바꾸어 지금에 이른다.

초록 숲길 발치에서 빛나는 보랏빛 맥문동꽃과 숲길 밖에 피어난 쑥부쟁이를 보느라 걸음이 느려진다. 아줌마 몇몇이 허리를 굽혀 풀숲에서 무언가를 찾는다. 아마도 도토리를 줍는 모양이다. 산짐승들 양식인 도토리를 줍지 말라고 당부하는 안내 문구가 떠올랐다. 자연을 파헤쳐 도시가 넓어지는 만큼 그곳에 살던 생명들의 터전이 사라진다. 숲길과 숲을 나누는 나무 기둥과 밧줄은 산에 깃들어 사는 생명들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려는 가장 작은 양심의 경계다.

맥문동꽃의 호위를 받으며 숲길을 걸어 약사사에 도착했다. 절 마당에 고려 시대 삼층석탑이 있고, 대웅전 안에 돌을 깎아 만든 고려 시대 불상이 있다. 불상이 만들어졌다고 알려진 고려 시대 후기에도 사람들에게 꽃은 희망이었나보다. 불상의 손에 들린 꽃가지가 새 세상을 이루려는 미륵의 뜻이려니, 희망에 기원하는 서민들의 하루가 오늘도 이곳에서 이어진다. 다만 희망으로 희망을 이야기하지 말기를….

약사사 석불입상

개화산 전망대에서 한강과 북한산 능선을 보다

약사사 담장 옆 오솔길을 따른다. 굽은 줄기 키 큰 나무들이 이룬 숲을 지나면 길 끝이 밝아진다. 그곳으로 나가면 헬기장 표시가 된 넓은 빈터가 나오고, 한쪽에 개화산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 바로 앞은 푸른 숲이다. 숲 너머 한강과 북한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푸른 숲 파란 하늘 흰 구름, 그 풍경을 명랑하게 만드는 건 한강에 놓인 붉은색 방화대교다. 방화대교 아치가 강 건너 노을공원 옆 대덕산 능선을 닮았다. 방화대교 북단 서쪽에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대승을 거둔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이 있다. 동쪽 멀리 서울N타워가 솟은 남산이 보인다.

개화산숲길.

조선 시대 사람 겸재 정선도 이런 풍경을 보았나보다. 그가 본 풍경이 그의 그림에 담겼다. 신라 시대 사람 주룡이 9월9일에 동자 두세 명과 함께 올라 경치를 즐기며 술을 마셨다는 곳도 이곳이 아닐까?

4㎞ 남짓 되는 개화산숲길, 조금 더 머물러도 좋겠다 싶었다. 그치지 않는 바람을 맞으며 경치를 즐기는 사이 전망대에 사람들이 와서 머물고 또 각자 길로 나선다.

봉수대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원래 봉수대는 봉수대 모형을 만들어놓은 지금 자리에서 약 250m 정도 떨어진 군부대 인근에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개화산 봉수대는 서쪽으로 김포현 북성산과 응하고 동쪽으로 남산 제5봉수와 응한다”는 내용이 전한다.

봉수대 앞 빈터에서 숲길로 향한다. 봉수정 옆을 지나 숲으로 들어간다. 길옆에 참호가 있다. 개화산 군부대 훈련장이 있던 곳이다. 개화산은 한국전쟁 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개화산에 방어진을 치고 인민군 6사단과 벌인 전투에서 1100여 명이 전사했다.

하늘길 전망대에서 보는 김포공항과 노을

참호가 있는 길을 뒤로하고 조금 걷다보면 ‘아라뱃길 전망대’가 나온다. 푸른 숲 너머 아라뱃길 한쪽에 정박해 있는 작은 요트들이 보인다. 풍경 귀퉁이에 한강이 걸쳤다. 일산 킨텍스 건물은 위치를 가늠하는 지표다. 데크길을 따라가면 ‘마을보호수’라고 적힌 이정표가 나온다. 마을보호수까지 130m라고 적혔다. 원래 코스에서 벗어나 ‘마을보호수’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보호수는 거대하고 오래되기 마련인데 이곳 보호수는 평범하다. 안내문에 따르면 수령을 알 수 없는 고목이 이곳에 있었는데 한국전쟁 때 불타 죽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는데 불타 죽은 나무 자리에서 새 나무가 자라났다고 한다. 그 나무가 자라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보호수를 보고 다시 돌아와서 가던 방향으로 간다. 숲속에 거대한 바위가 절벽처럼 솟은 풍경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신선바위’ 또는 ‘신선대’라고 한다. 길에서 보이는 신선바위가 그럴싸하다. 김포공항도 보인다. 신선바위 위에 서면 김포공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신선바위. 거대한 바위가 마치 절벽이 솟은 것 같은 모습이다.

신선바위를 지나 ‘하늘길 전망대’에 도착했다. 시야가 넓게 트였다. 김포공항과 강서구 개화동·과해동 일대 들녘이 넓게 펼쳐졌다. 비행기들이 굉음을 내며 활주로를 달리다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그대로 다 본다. 넓은 평야에 우뚝 솟은 산은 인천 계양산이다. 그 뒤로 천마산 산줄기가 희미하게 보인다. 계양산 옆으로 아라뱃길 물길과 다리가 보이고, 차들이 바쁜 일상처럼 오간다.

아라뱃길 전망대에서 본 풍경. 아라뱃길 요트를 볼 수 있다.

해가 떨어지는 곳 하늘에서 주황빛이 살아난다. 낮게 깔려 그윽한 그 빛이 ‘메트로 9호선 김포차량기지’ 수십 갈래 철로에서 반짝인다. 먼 산 능선 위에 걸친 구름 사이로 해가 들어간다. 프리즘을 통과한 빛처럼 울긋불긋 산란하는 햇빛 속으로 김포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날아간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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