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을 걷다

통쾌한 풍경이 펼쳐지는 삼국시대 역사길

광진구 아차산 고구려 역사길 8㎞

등록 : 2018-06-0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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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나루역 1번 출구에서 출발

아차산 생태공원선 나비가 춤추고

너럭바위 경사면 오르면 고구려정

아차산 3보루

고구려군의 요새, 아차산 보루를 따라 아차산 능선을 걷는다. 동쪽과 남쪽에 한강이 있고 서쪽에는 중랑천이 흐른다. 경기도 구리시와 남양주시, 한강 건너 잠실부터 경기도 하남시까지, 북으로 북한산 남으로 남한산까지, 아차산 능선에서 보이는 통쾌한 풍경에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 길에 ‘아차산 고구려 역사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길은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이 국운을 걸고 차지하려 했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고구려군의 보루가 남아 있는 아차산


망우산, 용마산, 아차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조선시대에는 아차산이라 일렀다. 그곳에 고구려군의 보루(적의 침입을 막거나 적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해 만든 구조물) 20여 기가 있다. 보루는 장수왕 때인 475년 고구려가 한강 유역에 진출하면서 만들어 551년 신라와 백제에 의해 물러날 때까지 썼다.

당시 고구려는 지금의 충청북도 충주시 남한강까지 진출해 남한강이 보이는 산에 산성을 쌓았다. 그게 지금 충주에 남아 있는 ‘장미산성’이다. 장미산성 남쪽 충주고구려비전시관에 있는 ‘충주고구려비’(옛날에는 ‘중원고구려비’라고 했다)가 그 역사를 말해준다.

고구려 세력을 밀어내기 위해 백제의 성왕과 신라의 진흥왕은 나제동맹을 맺고 동맹군을 만들어서 북진한다. 백제와 신라는 한강 유역을 나누어 점령하게 되는데, 이때 신라의 진흥왕이 동맹을 깨고 백제가 점령한 한강 유역을 빼앗는다. 고구려의 온달 장군은 빼앗긴 한강 유역의 땅과 성을 찾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출사표를 던지고 전쟁에 나섰다가 아차산에서 전사했다고 한다.

아차산 남쪽에 있는 ‘아차산성’은 신라가 한강 유역을 점령한 뒤, 7세기에 쌓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차산성의 첫 주인은 백제였다. 396년에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아차산성을 빼앗았다. 475년에 아차산성 아래에서 백제의 개로왕이 죽었다고 전한다. 한 나라의 왕이 죽고, 장군을 비롯한 많은 병사가 죽어간 전장이 아차산이었다.

아차산 보루와 보루를 잇는 능선길

지금의 아차산 능선에 남아 있는 4개의 고구려 보루와 산 아래 한강변의 광나루터 푯돌을 지나 한강을 건너 광나루 한강공원까지 이어지는 약 10㎞의 길에 광진구는 ‘아차산 고구려 역사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코스 중 광진교~광나루 한강공원 구간을 제외한, 삼국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약 8㎞ 구간을 걷는다.

능선으로 이어지는 전망 좋은 길

길은 지하철 5호선 광나루역 1번 출구에서 시작된다. 광장중학교와 광장초등학교를 지나 아차산 아랫마을 골목길을 지나면 ‘아차산 생태공원’이 나온다. 연꽃 피어난 연못 옆을 걸어 작은 꽃이 무리 지어 피어난 꽃밭을 지난다. 수레국화꽃이 만발한 꽃밭에서 나비가 춤을 춘다.

아차산 생태공원 수레국화 꽃밭

아는 만큼 보이고 본 만큼 남는다는 말에 ‘아차산 역사문화 홍보관’에 들러 아차산의 역사에 대해 알아본다. 아차산 종합안내판을 지나 아차산 푯돌 앞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걷는다. 키 큰 나무 아래 포장된 길을 따라간다. 아차산 경관폭포를 구경하고 ‘고구려정’ 이정표를 따라가다가 비탈진 너럭바위 경사면으로 올라간다. 산비탈 전체가 울퉁불퉁한 하나의 너럭바위다. 그 위에 고구려정이 있다.

고구려정

고구려정을 지나 ‘해맞이광장’에 도착하면 시야가 시원하게 트인다. 그곳부터 능선을 따라 ‘아차산 1보루, 5보루, 3보루, 4보루’가 차례로 이어진다. 아차산 4보루가 반환점이다.

‘해맞이공원 전망대’에서 올림픽대교, 대모산, 잠실대교, 우면산, 관악산, 어린이대공원, 남산까지 볼 수 있다. 아차산 1보루에 오르면 남쪽과 남동쪽으로 아차산성과 풍납토성, 몽촌토성이 있던 곳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서쪽으로 중곡동과 중랑천이 보인다. 아차산 5보루가 전망이 가장 좋다. 아차산 3보루는 아차산 일대의 보루 중 가장 크다. 아차산 4보루는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중반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해맞이공원에서 아차산 4보루 사이 아차산 능선에 있는 보루들과 전망 좋은 곳에 서면 경기도 구리시와 남양주시, 한강 건너 잠실부터 경기도 하남시까지, 북한산부터 남한산성이 있는 남한산까지 볼 수 있다. 아차산 능선을 걸으면 삼국시대 각 나라가 왜 이곳을 국운을 걸고 차지하려 했는지 느낄 수 있다.

광나루터와 상부암 석불입상

4보루에서 왔던 길을 되짚어 걷는다. 해맞이광장을 지나 고구려정과 아차산성 방향 갈림길에서 아차산성 방향으로 간다. 아차산성은 현재 공사를 하고 있어서 들어갈 수 없다. 공사 담장 옆에 난 길로 걸으며 산성의 일부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만남의 광장·관리사무소 방향 이정표를 따라가서 소나무숲길을 지나면 만남의 광장이 나온다.

도로 옆 인도를 따라 걷다가 아차산 생태공원이 끝나는 곳에서 왼쪽으로 돌아 걷는다. 워커힐 호텔 남쪽 한강 가에 있는 ‘광나루터 푯돌’과 ‘상부암 석불입상’을 찾아가는 길이다. 광진정보도서관에서 약 170m 거리에 광장동 제2경로당이 있는데, 그 옆 축대 위에 상부암 석불입상이 있다.

이 불상은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광나루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안녕을 빌기 위해 세웠다고 전해진다. 원래는 이 자리에 있던 게 아니라 큰 홍수가 났을 때 떠내려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신라시대 의상대사는 아차산 범굴사(대성암이라고도 한다)에서 수도 생활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으로 볼 때 의상대사가 강을 오가는 사람들의 안녕을 빌기 위해 세운 불상이라는 이야기에 무게가 실린다.

광나루터 푯돌은 광진정보도서관 부근 길가에 있다. 광나루터의 옛 이름은 ‘너븐나루’였다. 서울과 강원도 지방을 이어주던 나루터였다고 한다.

아차산을 뒤로하고 남진하는 고구려군이 강을 건넜던 곳이 산 아래 강가에 있던 이곳 광나루가 아니었을까?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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