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람과 삶을 기억하는 것이 미래 자산

인문학자 김경집의 서울인문학 노벨상 수상 작가 한강의 독립서점 폐업이 안타까운 이유

등록 : 2026-07-30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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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가 차린 독립서점 ‘책방 오늘,’의 마지막 영업일인 지난 7일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세계인 기억하는 예술가 창작 공간
우리는 자본의 힘에 밀려나 사라져
돈보다 값진 역사성 우리 미래 자산

쿠바를 여행하는 이들이 꼭 들르는 곳 가운데 하나가 아바나의 카페 ‘플로리디타’라고 한다. 헤밍웨이가 자주 찾던 카페라서 그의 숨결을 느끼고 싶은(혹은 인증샷을 찍고 싶은) 여행객들이 들러보는 필수 코스이다. 그가 묵었던 호텔도 비슷하다고 한다. 헤밍웨이는 그 호텔과 카페에서 ‘노인과 바다’를 썼다.

남프랑스의 작은 도시 아를을 찾는 사람이라면 놓치지 않는 카페도 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아를에 불과 15개월을 머물렀다. 그러나 그곳에서 수많은 명작을 그려냈다. 그중 강렬한 노란색 테라스 조명과 짙푸른 밤하늘이 강한 대비를 이루는 1888년 작 ‘밤의 카페 테라스’의 배경 카페는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며 많은 관광객의 순례지가 되었다. 이름도 ‘카페 반 고흐’로 바꿔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단순한 유명세라는 것만으로는 순례객처럼 찾는 이들의 진지함과 애정을 덮지 못한다. 작품과 작가를 사랑하고 기억하며 그곳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중요한 문화적 자산이다. 그건 단순히 쿠바나 프랑스의 독점적 문화자산을 넘어선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가 여러 해 동안 흔히 서촌의 일부로 불리는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 작은 동네 책방인 ‘책방 오늘,’을 꾸려왔다. 책을 직접 고르고 작가를 초청하여 토론회도 열었으며 낭독회를 하는 등 동네의 문화 사랑방으로 많은 역할을 수행했다. 책방 주인인 작가의 작품 세계도 그 책방에서 빚어지고 배양된 것이 제법 많을 것이다.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에도 그 작은 책방을 여전히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곳은 없다. 지난 7월 초순 그 책방은 문을 닫았다. 잠시 닫았다 다시 여는 게 아니라 아예 사라졌다. 전형적인 젠트리피케이션의 사례이다.

듣기로는 강남의 투자전문 부동산의 중개로 어느 기업이 매입한 뒤 명도(세입자 퇴거)를 요구하면서 거부하면 소송 운운하는 바람에 서점을 계속해서 운영하려던 한강 작가도 결국 포기했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한강 작가의 중요한 역사 하나를 지운 것이다. 그것은 한 작가의 역사 하나에 그치는 게 아니라 한국문학의 큰 자산 하나를 망가뜨린 것이나 다름없다. 속된 말로 줘도 못 먹는 바보 같은 짓이 계속 되풀이된다. 연속성과 현장성이 사라진 뒤 다시 복원 운운하며 기억을 조작하는 것은 제대로 된 문화자산이 아니다.


나는 지금도 ‘가산디지털단지’ 전철역 이름이 불편하다. 예전 ‘가리봉역’의 바뀐 이름이다. 공식적으로는 그곳이 행정상 가산동이며 예전의 수출산업공단의 역할이 아니라 새로운 정보기술(IT) 비즈니스 중심으로 바뀌었기에 역 이름에 ‘가산’과 ‘디지털’을 넣은 것이라지만 최소한 옛 이름을 괄호에 넣는 배려조차 없는 건 불편한 과거를 지우고 싶은 ‘부동산’ 욕망 때문은 아니었을까?

1960년대와 1970년대에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수출 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몫을 차지하던 구로공단과 가리봉공단에서 수많은 어리고 젊은 노동자가 ‘쪽방’에서 모로 누워 자면서 빠듯한 임금조차 아끼고 아껴 고향에 보내 살림에 보태고 남동생들 학비를 지원하여 미래 희망의 원료를 공급했던 일을 기억하고는 있을까?

‘공돌이’니 ‘공순이’니 하는 못된 말로 멸시하고 정작 그들이 쏟은 땀과 피의 결과는 오롯이 독차지하면서 제 뱃속만 불린 자도 많았다. 그 곁에 붙어 떡고물을 누린 자도 많았다. 이제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넘어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공식적으로 만장일치로 선진국으로 인정하는 나라가 되었다. 뿌듯하고 스스로 대견한 일이다. 그러나 정작 그 밑돌을 고였던 이들의 희생과 고통은 다 잊은 듯한 것은 못내 아쉽고 부끄럽다.

서울시는 구로공단과 가리봉공단의 공장을 매입하여 기념관이나 박물관을 조성할 생각을 왜 하지 않았을까? 왜 노동자들의 삶을 기억하고 존중하지 않았을까? 그들의 삶에 공감하거나 감사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구로동의 현대식 빌딩 안에 작게나마 ‘G밸리산업박물관’을 뒤늦게 마련하여 그 당시의 삶을 기억하고 노동자들의 희생을 떠올릴 수 있게 한 것은 다행이지만 ‘현장의 장소성’은 거세된 상태라 밋밋하다. 서울역사박물관에도 약간의 보존과 재현이 있지만 마찬가지다. 이미 우리는 우리 산업화시대의 중요한 역사적 자산을 너무나 쉽게 부동산 가치와 맞바꿨다. 구로동과 가리봉동에 있었던 수많은 공단과 거기에서 일한 노동자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과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뿐 아니라 미래의 자산이기도 하다.

허술하고 외면받던 곳들이던 홍대 앞, 연남동, 성수동, 북촌, 서촌, 익선동 등을 매력적인 곳으로 만든 건 영세하지만 아이디어 반짝였던 젊은 사람들이다. 그 덕분에 사람들이 모여들자 집값과 임대료가 상승했고 그래서 정작 주인공들은 쫓겨나는 게 반복된다. 돈 싫어할 사람 없다. 그러나 돈에 환장해서 가치와 의미를 뭉개고 거세하는 건 상스럽고 부끄럽다. 돈이 전부가 아니다. 머지않아 돈 많은 사람보다 작가 한강을 더 높이 기리고 더 많이 기억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 가서 후회하고 어설프게 공간을 재현하는 따위의 바보짓을 되풀이하지 않게 해야 했다. 역사성을 담는 장소는 단순히 기념하는 곳이 아니라 삶의 영감을 불어넣는 곳이라는 걸 잊지 않으면 좋겠다. 그게 미래자산이다.

김경집(인문학자, 전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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