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보신각 종소리를 마음으로 듣는 날

인문학자 김경집의 서울인문학 서울 한복판에 세워진 그 이름의 의미를 새긴다

등록 : 2026-07-0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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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재야의 종소리 행사에서 타종 행사에 참석한 이들이 함께 보신각 종을 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서른세 번 새벽 종소리의 뜻은 ‘약속’
가짜뉴스 시대 두려운 시선으로 봐야
인의예지보다 더 무거운 이름은 ‘신’

이번 호부터 ‘이광수의 진보를 위한 투자’와 번갈아 새 연재 ‘김경집의 서울인문학’을 싣습니다. 인문학자 김경집 전 가톨릭대 교수는 서울시민의 인문학적 소양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이야기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눈 수술 후 3개월마다 안과에 가기 위해 종각역에서 하차한다. ‘종각’은 보신각(普信閣)을 지칭하는 말이다. 조선 시대에는 인정(人定: 밤 10시께 28번 종을 쳐서 성문을 닫고 통행금지를 알림)과 파루(罷漏: 새벽 4시 33번 종을 쳐서 성문을 열고 통행금지 해제를 알림)뿐 아니라 도성에 큰불이 나면 긴급상황을 알리는 역할을 했던 종이다. 태조 4년(1395년)부터 시행된 중요한 일이었다. 지금은 섣달 그믐날 자정에 새해를 여는 신년 타종 행사 때 울리는 것으로 그 역할이 바뀌었지만.

성문을 여닫을 때 울리는 종소리가 도성에 퍼질 때 사람들은 단순히 그것이 시각을 알리는 신호쯤으로 여겼겠지만 살펴보면 좀 더 깊은 의미가 깃들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은 철저히 유교의 가르침으로 세워진 나라였다. 궁궐이며 도성의 문들도 모두 그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도성의 문은 이른바 음양오행과 오상지덕(五常之德), 즉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의 이념을 담아 이름 지었다.

어짊(仁)은 온화함과 통하는 봄의 의미로 동대문인 흥인지문(興仁之門)에, 예(禮)는 화려하게 드러내는 뜻으로 남대문인 숭례문(崇禮門)에, 의(義)는 엄정함에 해당하는 가을의 의미로 서대문인 돈의문(敦義門)에, 지(智)는 지자요수(知者樂水)의 뜻과 지혜는 차갑다는 뜻으로 겨울에 해당하여 북대문인 숙정문(肅靖門)에 담았다. 숙정문은 본디 숙청문(肅淸門)으로 지혜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을 담았으나 중종반정 이후 숙정문으로 개명했다. 그래서 지혜의 역할은 숙종 때 한양도성을 보완하기 위해 탕춘대성을 쌓으면서 홍지문(弘智門)을 축성한 것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그리고 ‘믿음(信)’을 도성 중심 보신각에 담았다.


어질고, 의로우며, 예를 따르고, 지혜로운 덕목으로 도성의 문을 세운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그 한복판에 믿음을 세운건 더 뜻깊다 할 수 있다. 올바른 정치와 안정된 사회는 군주가 백성을 믿고 백성이 군주를 믿는 데서 마련된다. 그러니까 보신각의 종소리는 단순히 도성의 문을 여닫는 의미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종소리를 들을 때마다 군주는 백성에 대한 믿음을 돈독하게 힘써야 한다는 것을 각성하고 백성은 군주와 나라에 대한 충성스러운 믿음을 돈독하게 해야 한다는 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세울 수 없다(無信不立)는 걸 늘 마음속에 새길 수 있다. 보신각의 종소리는 그걸 상징한다. 그게 비단 과거의 낡은 체제에서만 통하는 것일까?

지금은 정보의 과잉상태가 문제일 만큼 온갖 쓰레기 정보가 흘러넘친다. 이른바 정크포메이션(junkformation: 쓰레기를 뜻하는 junk와 정보를 뜻하는 information을 합성한 신조어)은 예사로운 일이 되었다. 그래서 그릇된 정보를 걸러낼 수 있는 판단력이 요구된다. 폴 케네디가 강조하는 익스포메이션(exformation: 밖에서 안으로 들어와(in) 형성하는(form) 것이 아니라 쓰레기 정보를 밖으로(ex) 배출한다는 뜻으로 합성한 신조어)은 그런 배경에서 나온 말이다. 문제는 정보의 진위를 판단할 수 있으려면 검증과 사유의 과정이 필수인데 그게 귀찮으니 내게 필요하고 입맛에 맞는 것만 취사선택한다. 그게 반복되면 인지부조화를 넘어 확증편향에 빠지게 된다. 그 상태가 되면 백약이 무효가 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반목과 갈등은 이런 과정을 통해 악화된다. 이제는 아예 생각이나 추론조차 건너뛰고 무조건 기계에 묻는다. 인공지능 시대가 편리함과 더불어 쏟아낼 수 있는 독소는 그렇게 배양된다.

묻고 캐며 따지는 과정이 생략된 지식과 정보는 약이 아니라 독이 되기 쉽다. 무조건 믿는 건 신뢰가 아니라 맹신에 불과하다. 믿음이 가장 강조되는 영역이 종교일 것인데 종교조차 묻고 캐며 따지는 과정이 불필요하고 도발적인 것이 아니라 참된 신앙으로 가는 정도(正道)라는 걸 망각한다. 하물며 종교보다 믿음이 약한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등의 영역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 그릇된 정보에 오염된 상태로 강화된 믿음이 공고해지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도 해결이 어렵다. 지금 우리의 극단적인 신념의 대립과 갈등은 참된 믿음의 영역이라기보다 아집과 독선의 패악이다. 그리고 그것을 뒤에서 조장하고 이용하려는 세력의 음모가 깔려 있다.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거짓 정보를 생산하고 퍼나르는 일이 다반사인 사회는 멍들고 썩는다. 편향된 뉴스를 전달하는 언론사도 냉정하게 반성할 일이다. 그 회오리 광풍에 젊은 세대가 가세하는 걸 두려운 시선으로 봐야 한다. 상대를 뭉개기에만 급급할게 아니라 귀와 마음을 열고 먼저 들으려 해야 한다. 갈등과 반목, 거짓과 음모를 씻어내기 위해서는 그게 선행되어야 한다. 거기에서 다시 믿음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종을 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의 귀를 열면 그 종소리는 여전히 우리에게 퍼진다. 안과에 갈 때마다 지나는 종각 보신각의 깊은 뜻을, 보이지 않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하철 종각역을 지날 때마다, 버스나 승용차로 종로를 지날 때마다 그 뜻을 잠깐이라도 새겨보면 좋지 않을까? 인의예지도 소중하지만 공동체에서는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뜻으로 서울 한복판에 그 이름을 담았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김경집(인문학자·전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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