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겉돌던 위기 학생들, ‘한 울타리’ 통합 돌봄 시대로

이런 조례! 저런 조례! l 서울특별시교육청 학생맞춤통합지원 조례

등록 : 2026-06-18 11:28

크게 작게

강북구가 모집 중인 느린 학습자 대상 스포츠 활동 포스터. 강북구 제공

최근 서울 자치구들의 ‘느린 학습자’(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지원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 일부 구에 이어 올해도 강북구가 서울시 최초로 느린 학습자 아동들을 위해 클라이밍과 트레킹 등 맞춤형 신체활동 지원에 나섰는가 하면, 강동구 역시 구립도서관을 중심으로 느린 학습자들을 위한 특화 독서 지도 및 사회 적응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지능지수(IQ)가 71에서 84 사이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선에 서 있는 탓에 복지 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됐던 이들을 위해 자치구들이 앞장서서 생활 밀착형 틈새 복지를 발굴하고 있다.

미국 지적·발달장애학회(AAIDD)의 추정 방식을 적용한 통계에 따르면 경계선 지능인은 전체 인구의 약 13~14%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평균적인 한 학급이 25명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교실마다 3~4명의 아이가 인지적·사회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뜻이다.

동네 골목길에서 시작된 이들을 향한 긍정적인 변화의 물결은 이제 학교 담장 안으로 이어질 채비를 마쳤다. 지난 4월28일 서울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한 ‘서울특별시교육청 학생맞춤통합지원 조례’(이소라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의원 대표발의)는 자치구들의 이러한 ‘핀셋 복지’ 트렌드가 공교육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정착되고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제도적 나침반이다. 특히 이번 조례는 지난 3월부터 전국적으로 전격 시행된 중앙정부의 ‘학생맞춤통합지원법’과 발맞춘 후속 자치법규라는 점에서 서울 교육 안전망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교육 현장의 ‘칸막이 해소'와 복합 위기 학생을 위한 통합 지원의 필요성은 서울시의회 내에서 꾸준히 제기돼왔다. 교육위원회 심미경 의원(국민의힘·동대문2) 등도 그간 행정사무감사 등을 통해 기초학력 부진 및 위기 학생을 위한 맞춤형 통합 지원 체계 구축을 지속적으로 촉구해왔다. 이처럼 아이들의 민생을 위해 시의회가 지속적인 관심과 목소리를 낸 결과 이번 조례의 통과는 더욱 값진 결실로 평가받는다.

강동구 해공도서관이 최근 진행한 느린 학습자 대상 프로그램. 강동구 제공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마주하는 위기 학생의 고통은 다양하다. 기초학력이 부족해 학습 부진을 겪는 아이가 교우 관계에서 소외돼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정 내 방임이나 학대라는 환경 탓에 아이의 정서적 불안과 무기력증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느린 학습자들 역시 복합적인 정서·행동 장애를 동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동안 학교 행정은 철저한 ‘칸막이 행정’ 구조였다. 학업 역량은 교육과정이, 학교폭력은 생활지도 부서가, 정서 불안은 상담실(위클래스)이 각각 따로 맡아 처리했다. 복합적인 위기에 처한 아이 한 명을 두고 지원 사업과 부서가 파편화돼 있다보니 정작 아이와 학부모는 학교 안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뺑뺑이를 돌거나 진단서 등 서류를 각 사업 부서에 중복으로 제출해야 하는 낭비까지 발생했다.

이번에 제정된 조례의 핵심은 바로 이 단단한 칸막이를 허물고 학생 한 명을 중심으로 모든 교육 복지 자원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통합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데 있다. 조례에 따라 서울시교육청 하에 ‘학생맞춤통합지원센터’가 지정·운영되며, 학교 안에는 교감과 상담교사, 보건교사, 복지전문가 등이 함께 참여하는 일종의 ‘원스톱 통합 지원 체계’가 마련된다.

위기 징후를 보이는 학생이 발견되면 이 센터와 교내 협의체가 아이의 상태를 다각도로 진단해 학습·복지·건강·심리를 아우르는 맞춤형 패키지 지원을 설계하게 된다.

특히 이 조례의 가치는 학교의 노력과 자치구의 로컬 인프라를 연결하는 ‘지역 사회 연계’를 명시했다는 점이다. 학교 안의 예산과 인력만으로는 복합 위기 학생의 가정환경이나 방과 후 돌봄까지 책임지기 어렵다. 강북구나 강동구처럼 자치구들이 구축해놓은 느린 학습자 지원 센터, 지역 아동 복지 시설, 보건소 등의 자원을 학교 안의 통합 시스템과 실시간으로 연계할 수 있도록 제도가 길을 열어준 것이다.

조례가 통과됨에 따라 이제 공은 7월1일 공식 임기를 시작하는 민선 9기 구청장들과 교육 현장으로 넘어간다. 제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학교와 구청의 유기적인 데이터 공유와 전문 인력(교육복지 전문가) 확충이 필수적이다. 한 사회의 성숙도는 흐릿한 경계선에 서 있는 약자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