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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숙인이 하룻밤 깔고 잘 종이박스를 가지고 잠자리를 찾아 거리를 헤매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주거 사각지대 더 넓어져”
“고시원, 찜질방에서 하루 버텨”
“핀란드 하우징 퍼스트 교훈” 서울 도심에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나 로스앤젤레스처럼 길 위에 텐트를 치고 사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서울역 광장이나 지하철 주변에 노숙인이 있지만 외국 대도시와는 풍경이 다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한국엔 노숙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서울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조용한 건 주거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다.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대안적 주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쪽방촌 한 평 남짓한 공간에 사는 이가 수만 명이고, 창문 없는 고시원에서 월30만~50만원을 내고 버티며, 찜질방과 피시(PC)방은 사실상 집을 잃은 이들의 마지막 피난처다. 이들은 거리에 눕지 않았을 뿐 집이 있는 게 아니다. 유엔 주거권 위원회나 유럽의 노숙 정의 기준인 ETHOS(European Typology of Homelessness)는 안정적이고 적절한 주거를 갖추지 못한 상태를 광범위하게 ‘노숙’으로 분류한다. 그 기준을 적용하면 서울의 ‘보이지 않는 노숙인' 수는 공식 통계의 수십 배에 이를 수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문제가 없는 게 아니다. 오히려 문제가 깊숙이 숨어 있다는 뜻이다. 노숙인은 사회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지원의 손길이 닿기도 한다. 노숙인 지원 단체들은 거리를 순찰하며 밥과 옷을 나누고, 쉼터로 연결하려 한다. 거리의 노숙인은 ‘보이기' 때문에 행정도, 언론도, 시민도 어느 정도 인식한다. 그러나 고시원 한쪽에서, 찜질방 구석에서, 쪽방 한 평 안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들은 아무도 보지 못한다. 이들은 공식적으로 ‘주소'가 있다는 이유로 노숙인 지원 대상에서도 빠지는 경우가 많다. 2020년 이후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이 사각지대는 더 넓어지고 있다. 월세를 감당 못해 고시원으로, 고시원에서 밀려 찜질방으로, 그리고 결국 거리로 나오는 경로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24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는 현실을 숫자로 보여준다. 전체 노숙인 1만2725명 가운데 거리 노숙인은 1349명(10.6%)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시설(52.3%)과 쪽방(37.1%)에 머문다. 절반이 수도권에 몰려 있고 서울에는 742명이 생활한다. 이들의 거리 생활 기간은 평균 51.4개월로 4년이 넘는다. 일시적 위기가 아니라 구조적 고착이다. 숫자 너머에는 사람이 있다. 50대 중반의 전직 건설 노동자, 이혼 후 보증금을 모두 잃은 60대 여성, 취업에 거듭 실패하며 고시원 방값조차 밀린 30대 청년. 노숙은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대부분 오랜 시간 쌓인 실직, 질병, 관계의 단절이 층층이 쌓인 결과다. 추락의 마지막 순간에야 비로소 ‘노숙인'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해법의 실마리는 핀란드에서 찾을 수 있다. 2000년대 초 핀란드의 노숙인 비율은 인구 대비 한국의 15배에 달했다. 처음엔 ‘계단식 정책'을 썼다. 음주를 줄이면 쉼터, 치료를 마치면 호스텔, 취업에 성공해야 비로소 집을 주는 방식이었다. 실패했다. 일반 시민도 지키기 어려운 조건을 가장 취약한 사람에게 먼저 요구하는 모순이었기 때문이다. 2007년 핀란드는 발상을 뒤집었다. ‘하우징 퍼스트’(Housing First), 조건 없이 먼저 집을 주는 정책이다. 독립된 아파트를 먼저 제공하고, 안정된 공간에서 치료와 재활, 자립을 돕는다. 치료에 실패해도 집에서 내쫓지 않는다. 결과는 분명했다. 8년 만에 노숙인 수가 40% 줄었고, 지금 핀란드는 유럽에서 노숙인이 가장 적은 나라다. 집을 주는 게 오히려 세금을 아끼는 길이었다. 비영리기관 와이(Y)재단에 따르면, 이 정책으로 노숙인 1인당 연간 약 2천만원의 사회적 비용이 절감됐다. 한국에서도 하우징 퍼스트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일부 지방 자치단체에서 시범사업이 진행됐고,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예산 부족과 님비 현상, 무엇보다 정치적 무관심이라는 벽 앞에서 번번이 속도를 잃었다. 집을 먼저 준다는 발상이 ‘특혜'처럼 느껴지는 사회적 정서도 걸림돌이다. 그러나 응급실과 경찰, 법원을 반복적으로 오가는 노숙인 한 명에게 드는 사회적 비용은 아파트 임대료보다 훨씬 크다. 감정이 아니라 숫자로 봐도 먼저 집을 주는 것이 합리적이다. 노숙의 원인이 실직(35.8%), 이혼과 가족 해체(12.6%), 사업 실패(11.2%)라는 사실은 노숙이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결과임을 보여준다. 노숙인의 71.3%가 신용불량 상태이고, 65살 이상 노인 비율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 이들에게 먼저 필요한 건 조건과 규칙이 아니라 안정된 집이다. 서울시장 선거가 본격화하고 있다. 집값을 올려주겠다는 재건축 공약, 인프라 투자 약속이 넘쳐날 것이다. 그러나 어느 후보도 노숙인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쪽방촌을 언급하지 않는다. 고시원 한 평에서 하루를 버티는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도시의 품격은 앞서 달리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뒤처진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로 결정된다. 서울이 진정한 세계도시를 자처하려면 스카이라인이 아니라 골목 안쪽을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정치가 외면하는 곳에 오히려 정치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정치다.
주거 사각지대 더 넓어져”
“고시원, 찜질방에서 하루 버텨”
“핀란드 하우징 퍼스트 교훈” 서울 도심에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나 로스앤젤레스처럼 길 위에 텐트를 치고 사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서울역 광장이나 지하철 주변에 노숙인이 있지만 외국 대도시와는 풍경이 다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한국엔 노숙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서울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조용한 건 주거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다.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대안적 주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쪽방촌 한 평 남짓한 공간에 사는 이가 수만 명이고, 창문 없는 고시원에서 월30만~50만원을 내고 버티며, 찜질방과 피시(PC)방은 사실상 집을 잃은 이들의 마지막 피난처다. 이들은 거리에 눕지 않았을 뿐 집이 있는 게 아니다. 유엔 주거권 위원회나 유럽의 노숙 정의 기준인 ETHOS(European Typology of Homelessness)는 안정적이고 적절한 주거를 갖추지 못한 상태를 광범위하게 ‘노숙’으로 분류한다. 그 기준을 적용하면 서울의 ‘보이지 않는 노숙인' 수는 공식 통계의 수십 배에 이를 수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문제가 없는 게 아니다. 오히려 문제가 깊숙이 숨어 있다는 뜻이다. 노숙인은 사회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지원의 손길이 닿기도 한다. 노숙인 지원 단체들은 거리를 순찰하며 밥과 옷을 나누고, 쉼터로 연결하려 한다. 거리의 노숙인은 ‘보이기' 때문에 행정도, 언론도, 시민도 어느 정도 인식한다. 그러나 고시원 한쪽에서, 찜질방 구석에서, 쪽방 한 평 안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들은 아무도 보지 못한다. 이들은 공식적으로 ‘주소'가 있다는 이유로 노숙인 지원 대상에서도 빠지는 경우가 많다. 2020년 이후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이 사각지대는 더 넓어지고 있다. 월세를 감당 못해 고시원으로, 고시원에서 밀려 찜질방으로, 그리고 결국 거리로 나오는 경로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24년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는 현실을 숫자로 보여준다. 전체 노숙인 1만2725명 가운데 거리 노숙인은 1349명(10.6%)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시설(52.3%)과 쪽방(37.1%)에 머문다. 절반이 수도권에 몰려 있고 서울에는 742명이 생활한다. 이들의 거리 생활 기간은 평균 51.4개월로 4년이 넘는다. 일시적 위기가 아니라 구조적 고착이다. 숫자 너머에는 사람이 있다. 50대 중반의 전직 건설 노동자, 이혼 후 보증금을 모두 잃은 60대 여성, 취업에 거듭 실패하며 고시원 방값조차 밀린 30대 청년. 노숙은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대부분 오랜 시간 쌓인 실직, 질병, 관계의 단절이 층층이 쌓인 결과다. 추락의 마지막 순간에야 비로소 ‘노숙인'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해법의 실마리는 핀란드에서 찾을 수 있다. 2000년대 초 핀란드의 노숙인 비율은 인구 대비 한국의 15배에 달했다. 처음엔 ‘계단식 정책'을 썼다. 음주를 줄이면 쉼터, 치료를 마치면 호스텔, 취업에 성공해야 비로소 집을 주는 방식이었다. 실패했다. 일반 시민도 지키기 어려운 조건을 가장 취약한 사람에게 먼저 요구하는 모순이었기 때문이다. 2007년 핀란드는 발상을 뒤집었다. ‘하우징 퍼스트’(Housing First), 조건 없이 먼저 집을 주는 정책이다. 독립된 아파트를 먼저 제공하고, 안정된 공간에서 치료와 재활, 자립을 돕는다. 치료에 실패해도 집에서 내쫓지 않는다. 결과는 분명했다. 8년 만에 노숙인 수가 40% 줄었고, 지금 핀란드는 유럽에서 노숙인이 가장 적은 나라다. 집을 주는 게 오히려 세금을 아끼는 길이었다. 비영리기관 와이(Y)재단에 따르면, 이 정책으로 노숙인 1인당 연간 약 2천만원의 사회적 비용이 절감됐다. 한국에서도 하우징 퍼스트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고 있다. 일부 지방 자치단체에서 시범사업이 진행됐고,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예산 부족과 님비 현상, 무엇보다 정치적 무관심이라는 벽 앞에서 번번이 속도를 잃었다. 집을 먼저 준다는 발상이 ‘특혜'처럼 느껴지는 사회적 정서도 걸림돌이다. 그러나 응급실과 경찰, 법원을 반복적으로 오가는 노숙인 한 명에게 드는 사회적 비용은 아파트 임대료보다 훨씬 크다. 감정이 아니라 숫자로 봐도 먼저 집을 주는 것이 합리적이다. 노숙의 원인이 실직(35.8%), 이혼과 가족 해체(12.6%), 사업 실패(11.2%)라는 사실은 노숙이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결과임을 보여준다. 노숙인의 71.3%가 신용불량 상태이고, 65살 이상 노인 비율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 이들에게 먼저 필요한 건 조건과 규칙이 아니라 안정된 집이다. 서울시장 선거가 본격화하고 있다. 집값을 올려주겠다는 재건축 공약, 인프라 투자 약속이 넘쳐날 것이다. 그러나 어느 후보도 노숙인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쪽방촌을 언급하지 않는다. 고시원 한 평에서 하루를 버티는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도시의 품격은 앞서 달리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뒤처진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로 결정된다. 서울이 진정한 세계도시를 자처하려면 스카이라인이 아니라 골목 안쪽을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정치가 외면하는 곳에 오히려 정치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정치다.
이광수 ‘진보를 위한 주식투자’ 저자·투자분석가
이광수 ‘진보를 위한 주식투자’
저자·투자분석가
korea.analyst@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