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서울은 끝났다

이광수의 진보를 위한 투자 자산가치냐 다양성이냐…‘950만 명’ 서울이 던지는 도시 경쟁력을 위한 선택

등록 : 2026-04-23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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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한국은행 앞 사거리에 늘어선 광역버스들. 한겨레 자료사진

불패 신화 무너뜨리는 수요 절벽
청년과 서민이 떠나면 미래 없어
인구 950만 명 붕괴, 예고된 위기

얼마 전 마포구 공덕동에서 20년째 살던 친구가 경기도 파주로 이사했다. 전세 만기가 돌아왔는데 집주인이 보증금을 크게 올려달라 했다고 한다. 그는 필자에게 “아직 서울에서 일하는데 서울에 살 수가 없다”고 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서울 인구는 이미 950만 명 선 아래로 떨어졌다. ‘천만 서울'은 이제 과거형이다. 언론은 이 숫자를 도시 쇠퇴의 신호로 읽는다. 하지만 숫자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떠난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다. 부자들이 떠난 게 아니다. 청년이 떠나고, 신혼부부가 떠나고, 평생 이 도시에서 일하며 살아온 서민들이 밀려나고 있다.

서울은 여전히 한국 경제의 엔진이지만, 그 엔진을 돌리는 사람들이 점점 서울 바깥에서 출퇴근하는 역설적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도시는 커졌는데 정작 그 도시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의 범위는 좁아지고 있다.

주거 비용이 결정적 원인이라는 건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가격 문제만 들여다보면 본질을 놓친다. 더 근본적인 변화는 저렴한 주거지 자체가 이 도시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세대·다가구 밀집지역, 낡고 비좁지만 월세 30만원으로 버틸 수 있었던 골목들. 그곳이 브랜드 아파트 단지로 바뀌면서 서울 진입의 ‘사다리 맨 아래칸'이 소멸하고 있다. 지역에서 온 청년이, 이제 막 사회에 나온 직장인이 첫발을 디딜 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과거의 서울은 달랐다. 구로, 봉천, 상계동의 낡은 주거지는 열악하긴 했어도 누군가의 출발점이 돼주었다. 거기서 돈을 모아 전세를 얻고, 다시 내 집 마련의 꿈을 키우는 경로가 존재했다. 지금은 그 경로 자체가 끊겼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저가 주택 재고가 대거 사라졌고, 그 자리를 채운 고가 아파트의 분양가는 애초에 서민의 선택지밖에 있었다. 서울에 주택 공급이 늘었다고 해서 서민이 살 수 있는 집이 늘어난 건 아니다. 공급의 양과 공급의 질은 다른 문제다.

저렴한 주거지의 소멸은 골목 상권과도 맞닿아 있다. 특정 지역에 자본이 유입되고 임대료가 오르면, 그 동네의 분위기를 오랫동안 만들어온 소상공인과 세입자들이 먼저 밀려난다. 홍대 앞이 그랬고, 성수동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도시의 매력을 만든 사람들이 정작 그 매력의 값을 치르지 못해 쫓겨나는 아이러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어디서나 똑같이 생긴 프랜차이즈 간판으로 채워진다. 상업 공간에서 시작된 임대료 상승은 시간이 지나면 주거 비용에도 전이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동네를 바꾸는 게 아니라, 그 동네에 살던 사람을 바꾼다.

인구 유출이 만들어내는 경제적 비효율도 간과할 수 없다. 서울에서 밀려난 인구가 경기도 외곽으로 집적되면서, 수도권 광역 교통망은 만성 포화 상태에 놓여 있다. 새벽 첫차부터 자리가 없는 광역버스, 환승역마다 들어서는 인파. 왕복 세 시간 통근은 개인의 시간과 건강을 소모하는 일이고, 국가 전체로 보면 엄청난 사회적 낭비다. 장거리 통근자는 퇴근 후 지역 상권에서 소비할 여력이 없다. 파주로 밤 10시에 귀가하는 사람이 동네 식당에 들를 수 있겠는가? 서울은 이제 낮에는 사람이 북적이고 밤에는 여행객만 남는 도시, 생산은 하되 생활은 허락하지 않는 도시로 변해가고 있다. 인구 감소는 단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내부의 경제적 순환을 갉아먹는 문제이기도 하다.

해법이 없는 건 아니다. 방향 자체는 명확하다. 공공주택 비중을 대폭 높이고, 전면 철거 방식의 개발보다 기존 서민 주거지를 손보며 주거비를 관리하는 보존형 재생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역 공동체가 부동산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토지신탁 모델이나 사회적 주택 방식도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됐다. 서울 내 유휴 부지를 청년과 서민층을 위한 주거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속도를 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결국 정치적 의지다. 서울의 주택이 자산 증식 수단으로 기능하는 구조가 유지되는 한, 집값 안정보다 집값 상승을 원하는 유권자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공공성을 강화하는 정책은 번번이 ‘재산권 침해'라는 반발에 부딪히고, 선거 앞에서 흐지부지된다. 서울이 어떤 도시여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먼저 필요한 이유다. 자산 가치를 극대화하는 도시인가, 다양한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도시인가? 이 두 가지는 공존하기 어렵다. 적어도 지금의 서울은 그 선택에서 전자 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그 결과가 930만 명이라는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파주로 이사한 친구는 요즘 새벽 6시 버스를 탄다. 회사는 여전히 서울 중구에 있다. 두 시간 남짓 버스를 타고 출근해서, 두시간 남짓 버스를 타고 돌아온다. 그는 서울에서 일하고, 돈을 쓰고, 서울 경제를 떠받치지만 서울에 살지는 못한다.

도시의 경쟁력은 결국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밀도와 다양성에서 나온다. 청년이 있고, 노인이 있고, 예술가가 있고, 노동자가 있어야 도시는 살아 있다. 서울이 고소득 전문직과 자산가만 감당할 수 있는 도시로 굳어진다면, 우리가 잃는 것은 인구통계 숫자가 아니라 도시의 생명력 그 자체다.

이광수 ‘진보를 위한 주식투자’저자·투자분석가

이광수 ‘진보를 위한 주식투자’

저자·투자분석가

korea.analyst@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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