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누구에게 살기 좋은 도시인가?

이광수의 진보를 위한 투자 화려한 스카이라인 대신 ‘임대료’를 택한 뉴욕 그리고 서울

등록 : 2026-01-2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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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남산타워에서 바라본 서초구와 강남 일대의 아파트 모습.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서울의 미래는
투기 개발 판치는
더 비싼 도시 아니고
계속 살 수 있는 도시"

재미 삼아 인공지능(AI)에 물었다. 전세계 최고 도시는 어디인가? 기준에 따라 답은 달라질 수 있지만 미국 뉴욕이 세계 최고 도시라는 답이 돌아왔다. 큰 반론 없이 뉴욕은 글로벌 금융과 문화의 중심지, ‘세계의 수도’라는 표현이 가장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도시다. 그런데 답변의 마지막 문장이 눈길을 끌었다. 질문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전세계 최고 도시는 어디인가가 아니라, 누구에게 살기 좋은 도시인가를 묻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누구에게 살기 좋은 도시인가?”

좋은 답은 좋은 질문에서 나온다. 우리는 오랫동안 최고의 도시만을 물어왔다. 인구가 얼마나 많은지, 성장률은 높은지, 경제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를 따졌다. 하지만 그 질문만으로는 진짜 도시의 삶을 설명할 수 없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누구에게 살기 좋은 도시인가?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서울의 풍경은 다르게 보인다. 서울에서는 최근 재건축과 재개발이 빠른 속도로 추진되고 있다. 오세훈 시장은 연일 도시 경쟁력과 고층 개발을 강조한다. 강북 대개조, 초고층 스카이라인, 달라질 서울의 이미지가 뉴스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렇게 변하면 서울은 최고의 도시가 될 수 있을까? 질문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이 변화는 과연 누구에게 살기 좋은 도시로 가는 길일까?

같은 질문을 뉴욕에 던지면 최근의 변화는 비교적 분명한 방향을 가리킨다. 뉴욕시장에 당선된 조란 맘다니는 선거 과정에서부터 집요하게 물었다. 뉴욕은 누구를 위한 도시인가? 맘다니 공약의 중심에는 화려한 스카이라인도, 금융 중심지로서의 위상 강화도 없었다. 뉴욕을 누구를 위한 도시로 만들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지속 가능한 도시로 유지할 것인가가 모든 정책의 출발점이었다.


맘다니의 주택 정책 공약은 명확했다. 첫째, 임대료 상승을 시장에만 맡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임대료 규제와 공공 인프라의 대규모 확충을 전면에 내세웠다. 뉴욕은 오랫동안 집이 있는 사람과 집값 때문에 떠나야 하는 사람이 갈라지는 도시였다. 그는 이 균열을 정책의 중심 문제로 삼았다. 둘째, 도심 한복판에 더 많은 공공주택을 공급하겠다고 했다. 외곽으로 밀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일자리와 교육, 교통이 있는 곳에 더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접근이다. 셋째, 개발이익이 소수 개발업자에게만 돌아가는 구조를 손보겠다고 했다. 개발은 하되, 그 이익이 세입자와 지역 주민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이런 정책이 가능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뉴욕 시민이 더 비싼 도시보다 계속 살 수 있는 도시를 원했기 때문이다. 뉴욕은 세계 최고 도시라는 타이틀을 넘어, 누구에게 살기 좋은 도시인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정치가 그 질문에 답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서울은 세계 최고 도시 중 하나다. 인구 규모와 경제력, 문화적 영향력에서 세계를 대표하는 도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질문을 바꾸는 순간 불편한 현실이 드러난다. 서울은 누구에게 살기 좋은 도시인가? 재건축은 집값을 끌어올리고, 재개발은 기존 거주민을 밀어낸다. 새 아파트는 늘지만 서울에서 계속 살 수 있는 사람은 줄어든다. 청년과 신혼부부, 중산층 아래의 가구에 서울은 점점 ‘사는 도시’가 아니라 ‘살 수 없는 도시’가 되고 있다. 직장은 서울에 있지만 집은 멀어지고, 출퇴근 시간은 길어지며 주거비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뉴욕의 선택은 서울에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개발을 멈추자는 이야기도, 성장을 포기하자는 주장도 아니다. 다만 개발의 목표가 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더 비싼 도시가 아니라 더 오래 살 수 있는 도시. 투자와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생활 공간으로서의 도시, 그리고 지속 가능한 도시다.

서울도 가능할까? 출발점은 분명하다. 바로 질문이다. 최고의 도시를 묻는 대신 누구에게 살기 좋은 도시인지 물어야 한다. 질문이 바뀌면 정책 방향도 달라진다.

서울과 뉴욕 중 어디에서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우리는 도시를 무엇으로 보느냐는 물음이다. 경쟁에서 이긴 도시로 볼 것인가, 아니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 볼 것인가? 이름 있는 건축가들이 모여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바꾸고 더 화려한 도시를 만들어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누구나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들 수 없다.

뉴욕은 지금 집이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그 도시에 머물러 살아야 하는 사람을 기준에 놓고 도시의 미래를 다시 그리고 있다. 그렇다면 서울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를 막론한 서울시장 후보군은 지하도로를 깔고, 개발을 앞세우며, 더 크고 더 높은 아파트를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다시 질문해야 한다. 그 서울은 과연 누구를 위한 도시인가? 그리고 그런 선택이 정말 우리가 살고 싶은 도시로 이어질 것인가?

이광수 ‘진보를 위한 주식투자’저자·투자분석가

이광수 ‘진보를 위한 주식투자’

저자·투자분석가

korea.analyst@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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